지난 11월 1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IT 컨퍼런스 ‘웹 서밋(web summit)’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행사장 주변은 또 다른 이유로 북적였는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포르투갈 정부가 새롭게 선보이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은 저렴한 생활 물가와 풍부한 문화자원 때문에 원격 근무자와 디지털 유목민이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이미 관광객과 단기체류자가 넘쳐나는 나라에서, 현지인들이 더이상 이들을 반기지 않게 된 것인데요. 급격한 부동산의 상승으로 현지인들이 도심 지역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포르투갈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2년 3월 기준 한 연구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도시 3위에 올랐습니다.(네, 서울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랭킹에서 6위를 차지했어요.) 그런데도 포르투갈 정부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를 통해 더 많은 전 세계 원격근무자를 유치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며 포르투갈을 방문했는데 분노 어린 현지인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 또는 나의 에어비앤비 투숙이 현지인의 거주권을 밀어내는 현상이 만들어지는 셈인데요. 이러한 사회적 위기는 어디서부터 촉발된 것일까요?
첫번째 원인은 포르투갈이 지난 50여년 간 취해온, 외국인 친화적인 부동산 정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민주화와 탈식민화가 시작된 1970년대 중반부터 포르투갈은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하기 보다는 저부가가치 산업인 관광에 초점을 맞춘 개발 정책을 실시합니다. 덕분에 포르투갈은 200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경제 대침체로 국가 재정이 흔들리던 시기에도 관광만큼은 호황을 누렸습니다.
이에 포르투갈 정부는 28만 유로 상당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EU 거주권을 부여하는 골든 비자라는 제도를 시행하기에 이릅니다. 또한 유럽 부동산 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비영주권 프로그램도 내놓는데, 두 제도 모두 부유한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각종 탈세나 생활비 절감 등을 목적으로 한 체류에 활용됩니다. 또한 이러한 정책은 부동산 구매를 촉진하여 가격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론도 있습니다. 골든 비자가 시행된 지난 8년간 이를 취득한 외국인은 불과 8000여 명에 불과하며, 이 숫자는 부동산 가격을 좌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골든 비자 제도는 폐지 검토 중. 기사)
두번째 원인은 고르지 않은 세금 구조에 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외국인은 20%, 내국인은 40% 정도 세금을 냅니다. 현지인들이 외국인에게 적대적인 스탠스를 갖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데요. 물론 이는 레딧에서 다수의 미국인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자국민이 올바른 정치인과 정책을 선별하지 못한 문제도 있습니다. 현재 집권당은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가 공약에 있었다고 하네요.
세번째 원인이 가장 결정적이라고 보이는데요. 과잉 관광과 에어비앤비의 높은 단기임대 수익이 완벽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다수는 에어비앤비를 사용해 간편하게 체류 숙소를 예약하지만, 관광 임대를 주로 하는 에어비앤비의 1박 당 금액은 현지 렌트비에 비해 매우 높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에어비앤비 운영을 압도적으로 선호하죠. 이것이 현지인이 거주 목적의 집에서 밀려나는 문제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입니다. 포르투갈 뿐 아니라 멕시코시티도 팬데믹 기간에 막대한 현금유동성을 확보한 미국인들의 밀려드는 생활 체류로 인해 물가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습니다.
hitchhickr’s insight
세번째 원인만을 놓고 본다면, 단지 편의성이 높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디지털 노마드(단기 체류자, 한달살기), 또는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호스트를 탓할 일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거주가 아닌 체류 관광 목적으로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자 입장에서, 에어비앤비 류의 숙박 플랫폼 외에는 숙소 목적의 집을 구할 대안이 딱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여행자가 현지인과 비슷한 렌트비(월세)로 집을 빌리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현재 EU가 추진 중인 ‘에어비앤비와 같은 단기 임대 플랫폼이 도시에서 운영되는 방식을 규제하는 이니셔티브‘가 단계적으로 발동하면서 서서히 해결 지점을 찾아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소득 격차를 악용하는 무분별한 해외 체류, 이를 무비판적으로 소개하는 여행 콘텐츠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히치하이커닷컴은 과잉 관광과 디지털 노마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계속 주목하면서, 여행자 입장에서 좀더 저렴하고 윤리적으로 예약할 수 있는 세계 각국의 숙박시설 및 서비스를 시리즈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참고기사: https://jacobin.com/2022/09/lisbon-portugal-rents-speculation-airb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