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 전 싱가포르의 온라인 매체에 ‘한국의 유튜버가 싱가포르의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매우 사려깊게 소개했다‘는 기사가 소개됐다. 찾아보니 한국인 유튜버는 맞는데 채널은 영어로 운영하고 있었고, 한국 곳곳의 길거리 음식 먹방기와 한식 레시피가 올라와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 유튜버라면 팬시한 곳을 다닐 법 한데,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기사에 소개된 싱가포르에서도 노포나 호커센터 음식만 골라서 먹고 다녔다. 현지 문화가 반영된 음식을 선호하는 음식 유튜버처럼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건 구독자 수였다. 채널 개설 시점이 2020년인데 불과 3년만에 무려 350만 명이 넘는 글로벌 구독자를 모았다. 왠만한 한국 유명 연예인들도 도달하기 어려운 수치다. 게다가 최근 미국에서 아예 서울로 건너와 독특한 한식당을 냈다는 걸 알게 됐다. 즉, 자신이 열정을 가진 분야에 대한 유튜브 채널을 성장시켰고, 그 커뮤니티(팬베이스)를 비즈니스로 연결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문화적 정체성이 푸드 콘텐츠 비즈니스로 연결될 때
공식 홈페이지의 프로필에 의하면, 티나는 14살 때 미국의 기숙학교로 유학을 가면서 한국의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다. 학교는 코네티컷의 시골에 위치해 있어 한식당을 다니기에 너무 멀었고, 음식 향수병에 시달리던 그녀는 할머니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한식 요리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체득한 한식 레시피에 본인만의 스타일을 넣어 연재하게 된다.
유튜브에서는 레시피보다 ‘한국 현지인처럼 즐기는’ 한국 음식이 점차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조회수를 얻기 시작한 초기 영상이 광장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제주도로 이어지는 길거리 음식 투어 영상이다. 물론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살아온 유튜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서울은, 완전한 한국인인 내게는 다소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노포에서의 술 한 잔이나 남대문 시장 왕만두 같은 미식 경험이, 이방인의 시선에서는 신선한 체험으로 재탄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크리에이터의 스토리나 콘텐츠와 크게 차별화될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진짜 전환점은 그 다음 단계부터다.
그녀의 채널이 단순한 콘텐츠에서 하나의 커뮤니티로 전환되는 순간은, 그녀의 개인적인 삶의 결단과 교차된다.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길거리 음식을 탐험하던 그녀는, 자신의 꿈을 위해 서울에 집을 얻고 한식당 오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그녀는 ‘자신이 미국과 한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고, 친구 하나 없는 한국 생활이 너무 외롭다’는 솔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미국에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계 미국인이 쓴 책 ‘H 마트에서 울다’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해당 영상에는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이중 국적자, 또는 입양아 등이 남긴 수많은 댓글이 이어진다. 다시 말해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체성, 그로 인한 취약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전략은 구독자들과 감정적으로 연결될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그녀의 시선으로 한국과 서울을 꾸준히 바라보며 응원하던 구독자들은, 언젠가 서울에 간다면 ‘목적지’로 그녀의 식당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마침내 그녀는 몇달 전 서울 경리단길에 퓨전 한식당을 오픈했다. 미국인 남자친구와 함께 연 식당임에도, 철저하게 한국적인(그러나 기존 한정식 집에서는 본 적 없는) 메뉴로 짜여져 있다. 본인이 열정을 보여온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고급스러운 퀴진으로 재해석한 메뉴로 보인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여행자라면 일종의 ‘독특한 한식 체험 코스’로 인식할 법 했다. 코스로 나오는 요리마다 그에 맞는 한국의 전통주를 페어링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식당의 메뉴 아이디어나 운영 방식을 보면서,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곳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영어가 유창한 직원들, 전통 한식이 아닌 ‘현재의’ 한국 문화를 유난히 강조한 메뉴들을 볼 때, 메인 타깃층은 본인처럼 한국인이지만 한국을 잘 모르는 이방인, 또는 영미권에서 온 미식 여행자로 보인다. 이는 메뉴 테이스팅 행사 때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틱톡커들을 부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틱톡의 소셜미디어 점유율이 1%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즉 한국향 마케팅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현재 유튜브 구독자만 350만 명이 넘는데, 이 중 1%만 한국에 여행을 와도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 영미권 젊은 층은 주로 ‘틱톡’을 통해 여행을 계획한다. 8월 25일 CNN은 틱톡으로만 여행 정보를 찾아서 테네리페 여행을 다녀온 여행기를 기사로 게재했을 정도다. 결국 위의 유튜버처럼 글로벌 소비자를 상대로 마케팅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이 시장을 선점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사례를 통해 한국과 한국 음식은 미국 유튜브 업계에서 꽤나 ‘잘팔리는’ 소재라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미국에서 120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초대형 푸드 채널 ‘First we feast’는 한국계 여성 셰프의 고정 코너를 두고 있으며, ‘Snacked’라는 고정 코너에도 케이팝 셀럽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또한 이 채널은 팬데믹 직후 가장 먼저 방한해서 광장시장 먹방을 촬영하고 돌아갔다. 근데 한국인이 한국에서 운영하는 한국 식문화 채널 중에, 글로벌 시청층을 확보한 사례는 얼마나 될까? 그나마 떠오르는 게 ‘영국남자’ 채널인데,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이라는 점에서는 위 사례와 다를 바가 없다.
마치며
푸드 투어리즘 산업은 전 세계가 모두 뛰어들어 경쟁하는, 가장 뜨거운 관광 시장이다. 글로벌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 여행자의 80%가 여행 준비 과정에서 맛집 검색을 한다고 할 정도다. (관련 기사) 한식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역대급으로 높아졌지만, ‘한국인(현지인)’의 정체성을 글로벌 비즈니스에 제대로 활용하는 이들은 한국(또는 업계) 밖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앞으론 더 많아질 것이다. 또한 영미권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10~30대 여행자들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크리에이터의 정보를 통해 여행 코스와 일정을 짜고, 실시간으로 다시 틱톡 리뷰를 하며 그들만의 정보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미 관광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비즈니스 모델은 점차 크리에이터 경제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는 국경이나 언어의 장벽이 너무나 낮아졌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팬을 형성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매번 얘기하는 점이지만, 이제부터 여행/관광 분야에서 요구되는 역량은 산업(또는 학문)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육성되거나 발굴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위 사례 역시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한국 음식을 다루던 크리에이터가 글로벌 팬베이스를 기반으로 푸드 투어리즘 기반의 비즈니스를 전개하게 된 사례다.
개인적으로는 관광과 유관 콘텐츠를 제공하는 메인 플레이어들이 완전히 바뀌는 과도기에 있다고 보고 있으며, 크리에이터 경제와 관광산업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