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국가에서 열리는 ‘트래블 마트’는 자국의 여행산업 활성화를 위한 교역 행사다. 즉 자국의 주요 여행상품 공급자들이 부스를 차리고, 전세계 바이어(여행사)를 모집해 양쪽을 서로 만나게 해주는 전시 및 교역 행사를 의미한다.
트래블 마트에서 미디어는 주인공이 아닌 부차적인 역할로, 전반적인 행사 스케치와 기자회견 커버리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기사를 자국에 송고한다. 따라서 이러한 비즈니스 행사 취재는 뉴스를 생산할 인력과 유통 시스템을 가진 레거시 미디어(신문, 잡지, 방송)에게만 주어져 왔으며, 그마저도 국가별 자리가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미디어는 자국의 소비력/인구/시장규모를 등에 업고 현재까지도 엄청나게 독점적인 취재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여행 미디어에 대한 문제의식, 미디어를 만들다
2017년 북유럽 트래블 페어를 시작으로 수많은 국가의 관광 교역 행사를 다니면서, 나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무늬만 미디어‘를 많이 마주했다. 그 나라에서 아무런 매체력과 인지도가 없지만, 업계 소식을 전달하는 전문 미디어로 포지셔닝해 취재를 독점하는 미디어들이 제법 많다. 즉 전 세계 트래블 마트에서 매년 선보여지는 새로운 여행 상품과 소식들은 미디어와 바이어를 거쳐 뉴스기사와 여행상품으로 가공되기 때문에, 최종 소비자에게는 직접 가닿지 못하는 구조다.
나 역시 ‘종이’ 매거진 출신이지만, 냉정하게 살펴보자. 2024년에 그 어떤 여행 소비자가 레거시 미디어에서 영감을 얻어서 여행 계획을 짜거나 목적지를 결정한단 말인가? 국내에서 가장 광범위한 관광 통계를 제공하는 컨슈머 인사이트의 2024년 4월 보고서를 보면, 어느 쪽에 실제 영향력이 있는지는 너무 명확한 그림이 나온다.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유튜브다. 유튜브는 SNS와는 별도 항목으로 측정되고 있으며, 여행이 아닌 일반 뉴스 소비에서도 기성 매체를 위협할 정도로 독자적인 유통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 총선과 같은 국가적 이벤트에서도 유튜브가 레거시의 이슈 선점력을 압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렇게 미디어의 소비 구조가 변하고 있는데, 여행업계에서 미디어를 정의하는 틀은 왜 예전 그대로인걸까? 혹시 이렇게 고착화된 구조가 수십 년간 독점해온 ‘고인 물’들의 먹잇감(?)으로 변질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지점에 대한 문제의식은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팬데믹 이전까지는 레거시(업계 매거진)의 힘을 빌려 컨트리뷰터(외부 기고자)로 참여해 취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15년간 운영해 온 여행 블로그도 업계에서는 공인된 미디어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권의 여행산업 책을 쓴 후, 블로그를 넘어 미디어의 형식과 틀을 갖춘 콘텐츠 비즈니스의 모델을 그리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저물 무렵인 2022년 11월, 히치하이커는 개인사업자명에서 ‘닷컴’의 타이틀이 되었고, 이어서 유튜브 채널과 뉴스레터를 갖춘 옴니 미디어 형태로 확장하게 되었다.
유튜브는 어떤 ‘미디어’가 될 수 있을까? 미디어-바이어란?
히치하이커TV가 한국에 2팀만 할당된 공식 미디어 중 하나로 태국 트래블 마트에 가게 되면서 가장 주력한 지점은, ‘유튜브 미디어’로서의 차별화다. 태국은 대표적인 ‘자유여행’ 목적지다. 즉 다수의 소비자가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 여행을 예약하기 때문에 어디가 요즘 뜨는 여행지인지, 멋진 신상 호텔은 어딘지 궁금해 하는 나라라는 얘기다. 즉 B2B 행사인 트래블 마트지만, B2C 기반의 유튜브 미디어가 가진 고유의 역할 역시 명확한 셈이다.
나는 프리/포스트 투어 등 주어진 모든 일정에 참여해 이 지역을 여행하려는 소비자(시청자)가 궁금해 할 것은 모두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이 로우데이터를 4만 명의 구독자들과 월 20만 명의 방문자들이 소비하기 좋은 콘텐츠로 가공해 여행지 별로 연재하고 있다. 관광청이 섬세하게 설계한 투어 일정들은 일반 여행자들이 아직 소개하지 않은 콘텐츠가 대부분이라, 미디어 입장에서도 차별화된 여행 콘텐츠를 확보할 기회가 된다. 또한 레거시 미디어와 달리 구매 링크를 직접 소개함으로써 모두가 윈윈이 될 수 있는 그림을 만든다.
이번 취재를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은, 소비자들도 전문적인 여행 뉴스 콘텐츠를 소비할 준비가 얼마든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행 박람회라고 하면 비즈니스 온리 이벤트 같지만, 소비자들도 양질의 여행 정보에는 관심을 갖는다. 또한 현장에서 만나본 여행 공급자들(호텔, 투어 등)도 더이상 바이어를 통한 여행 상품화에만 세일즈를 의지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좋은 공급자의 존재를 인지하면, 바로 예약이 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일본의 한 관광 교역행사 공고를 보니 미디어를 둘로 나누어 미디어와 ‘미디어 바이어’로 나누어 놨다. 미디어 바이어란 산업 취재 외에도 양질의 공급자를 직접 소개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자유여행 시대의 새로운 미디어 영역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전 세계의 주요 트래블 마트가 바이어에 가까운 미디어를 좀더 뽑아서 현지 공급자들과 만나고 취재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치며
카오락 프리 투어에서 만난 중국 미디어 팀에게 물어보니 5명 중 2명이 KOL, 즉 웨이보 인플루언서 자격으로 온 것이었다. 무려 238만명의 팔로워를 가진 중국의 유명 KOL은 내게, ‘전 중국에서 그리 큰 인플루언서가 아니에요’라고 말해서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손에 카메라 대신 액션캠을 쥐고 있었다. 변화가 더딘 여행업계에서도 미디어의 기준은 레거시에서 뉴 미디어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다. 앞으로 이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1인 기업이지만 내 사업을 사업부 별로 나누었을 때, ‘미디어 사업부’는 아직까지는 투자의 영역이다. ‘교육 사업부’가 본업인 입장에서, 해외 취재는 내가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매출 기회를 ‘부재중’으로 포기하게 만드는, 커다란 기회비용이란 얘기다. 그래서 콘텐츠 제작비용은 주지도 않으면서 ‘취재 기회는 준다’는 식의 시혜적 태도를 가진 업계를 마주할 때면, 솔직히 실소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내 채널에서는 직접 취재보다 자체 제작 콘텐츠의 조회수가 훨씬 높다. 돈을 벌고자 한다면 해외를 안가는 게 맞다.
그럼에도 미디어의 구조를 구축하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직접 취재를 하려는 이유는, 외주에 가까운 교육 사업 의존도를 줄이고 콘텐츠 레퍼런스를 넓혀 관련 사업을 탄탄하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다. 또한 여행업계의 크고 작은 문제의식을 조명하고 업계와 소비자를 동시간대로 가장 트렌디하게 연결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선점한 직업적 영역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는 책 ‘여행의 미래’,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 여행 강의와 유튜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여행’의 매력과 필요성을 알리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데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부터 더 많은 나라, 더 많은 기회와 만날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