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대중화된 원격근무의 흐름 속에서, 기존에는 특별한 삶의 방식이라고 여겨졌던 ‘디지털 노마드’는 이제 친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노마드는 단순히 원격근무를 넘어서서,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로운 소득 구조를 만들고 여행하며 일하는 삶을 택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노마드 리스트와 같은 커뮤니티를 구축해 저비용으로 오래 머물 수 있는 장소를 탐색하곤 하죠.
특히 선진국인 영미권에서는 자국의 비싼 생활비를 피해 저개발 국가로 옮겨가서 사는 행위를 지리적 차익 거래라는 일종의 재테크 팁으로 공유할 정도입니다. (이 부분은 차후 따로 다뤄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연합의 디지털 노마드가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어디일까요? 치앙마이? 우붓? 바르셀로나?
오늘은, ‘불가리아’의 한 작은 마을이 유럽 최대 규모의 디지털 노마드 성지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외국인의 큰 비전, 작은 마을을 바꾸다
지난 달인 11월 23일, 독일의 공영방송 DW는 ‘불가리아, 디지털 유목민의 허브가 되다’라는 기사를 통해 불가리아에 유럽 디지털 노마드가 몰려드는 현상을 소개했습니다. 독일에서 이 소식을 크게 다룬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 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독일인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겠네요.
2016년, 독일의 소프트웨어 디자이너인 마티아스 자이틀러(Matthias Zeitler)는 불가리아의 작은 마을 반스코(Bansko)에 공동 작업 공간인 ‘코워킹 반스코’를 열었습니다. 사실 반스코는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여름에는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인구 9천 명의 극소도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마티아스는 반스코에서 여러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해요.
일단 유럽의 원격근무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인은 저렴한 거주 비용이었습니다. 월 200유로 선에서 독립된 주거 시설을 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스코 자체가 스키 도시여서 자연 환경과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고요. 수도 소피아와도 차량 2시간 거리여서 도시 생활도 병행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영어가 통한다는 점도 장점으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삶의 가장 큰 고정비용인 주거비가 크게 절약된다는 점입니다.
마티아스는 별볼일없던 산촌 마을 반스코가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포지셔닝하기 위해서는 소셜미디어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별도의 마케팅은 따로 필요없었던 것이, 애초에 디지털 노마드 중에는 여행 콘텐츠를 주 수입원으로 제작하는 이들이 많거든요. 반스코를 찾아온 이들은 앞다투어 유튜브와 블로그에 이곳의 장점을 알렸습니다.
팬데믹으로 원격근무와 워케이션 등이 대중화되면서 마티아스의 ‘코워킹 반스코’는 4곳으로 확장했습니다. 유사한 시설이 더 생겨나면서, 반스코는 현재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1인당 공동 작업 공간이 가장 많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코워킹 반스코에는 매월 100~120명의 회원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용 요금: 월 129 유로부터 시작)
조직화되는 커뮤니티, 노마드 페스트
2020년,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춘 와중에도 원격근무 수요는 더 커졌습니다. 마티아스는 반스코에 디지털 노마드들이 교류하는 축제를 만들어서, 유럽 전역의 원격근무자들이 반스코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로 합니다.
그렇게 열린 반스코 노마드 페스트(Bansko Nomad Fest) 1회차에는 약 100명이 참석했고, 2021년에는 300명이 반스코를 찾았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무려 550명분의 티켓이 매진되면서 반스코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참고로 2023년에는 750명 규모로 기획하고 있다고 하네요.
노마드 페스트에서는 더 성공적인 노마드로 살아가기 위한 각종 팁과 노하우를 공유합니다. 오전에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방법, 온라인 비즈니스 생성 및 관리, 디지털 노마드의 성공 사례 등을 나누는 컨퍼런스 토크, 워크숍 및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집니다. 오후와 저녁에는 하이킹, 래프팅, 산악 자전거 타기, 스피드 데이트, 와인 투어, 언컨퍼런스 세션 및 네트워킹 모임과 같은 액티비티 중심의 프로그램이 이어집니다.
hitchhickr’s say..
반스코의 사례를 깊이있게 살펴보면서, 여러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우선 유럽을 포함한 각 대륙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여행/관광/워케이션 분야 최신 뉴스들이 한국에서는 전혀 유통되고 있지 않네요. 내년에는 직접 취재를 통해 이 분야의 현상들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하고요.
한국은 워케이션 데스티네이션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가와 주거비용을 상쇄할 만한 매력이나 조건이 있어야 할텐데요. 인구 9천 명에 불과한 반스코의 성공 사례를 볼 때, 서울과 같은 대도시보다는 지역 소도시들이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장기 체류 & 워케이션 여행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 본 내용은 국내에는 보도되거나 소개된 적이 없습니다. 인용시 히치하이커닷컴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