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풀리면서 지자체의 관광부서도 무척 바쁜 시즌입니다. 저도 4월 5일 충북 관광 활성화 정책 포럼에 패널로 참석해 체류관광에 대한 트렌드와 방향성을 전달했고요. 내일도 서울시 관광 부서를 대상으로 한 강연이 있습니다. 여전히 국내의 관광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점은, 한국의 관광 개발과 마케팅의 초점이 유형의 랜드마크나 장소(관광지)에만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전 세계 관광 마케팅의 초점은 더욱 빠르게 무형의 가치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핀란드는 무려 ‘행복’을 관광자원으로 내세웁니다.
행복 마스터 클래스 여는 핀란드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행복 지수에서, 6년째 1위를 지키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핀란드인데요. 핀란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이라는 가치를 매력적인 국가 브랜딩으로 활용하려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를 실제 정책에 반영한 최근 사례가 바로 핀란드 관광청의 ‘행복 마스터클래스’ 입니다.
2023년 3월, 핀란드 관광청은 행복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고 싶은 참가자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모집했습니다. 선발된 소수 인원은 오는 6월부터 열리는 행복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할 수 있으며, 여행의 경비는 전액 핀란드가 지원합니다. 행복 마스터클래스에서는 무엇을 배울까요? 레이크랜드에 위치한 한적한 휴양 리조트에 묵으면서, 핀란드인들이 음식을 만들고 실내 인테리어에 신경을 기울이고 주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법을 체험하게 됩니다. 물론 이 체험의 혜택은 전 세계에서 뽑힌 소수의 인원만 받겠지만, 누구나 핀란드에 여행을 온다면 어렵지 않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4월 1일 “핀란드 행복의 비밀은, 이 정도로 충분함을 아는 것“이라는 기사에서 핀란드인의 행복은 늘 웃고 즐거운 감정적인 가치가 아니라, 현재에 ‘만족’하는 마음이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통해 자신의 노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이 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가 보존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무료로 열려있는 풍부한 자연은, 핀란드인들이 입을 모아 자신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합니다. 한국이 왜 이 순위에서 올해도 57위인지, 왜 우리는 행복으로 관광 마케팅을 하기 어려운지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여행자들이 목적지 선택에서 중요시하는 것
핀란드의 행복 마케팅은 관광 분야에서 좀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관광 마케팅은, 유형의 관광 자원만으로는 거의 차별점이 없습니다. 모든 나라에 유명한 산과 바다, 전망대와 박물관 하나씩은 다 있죠.
게다가 MZ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층 여행자들은 해당 국가나 지역이 내세우는 ‘추천 명소’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여행의 목적이 ‘관광’이 아닌 지가 꽤 됐거든요.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현지어 구사에 능숙하고, 가급적이면 여행으로 떠난 지역에서 그들의 삶에 대해 직접 현지인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삶의 일부를 체험하길 원합니다. 이들이 나이를 먹고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가 된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액티비티와 무형의 자원, 현지 라이프를 체험하러 떠납니다. 특히 제 주변에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행복한 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이겠죠. 해당 국가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가, 느긋하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가의 여부는 여행자의 눈에도 그대로 보입니다.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 관광청은 ‘코펜하겐 로컬이 직접 말해주는 코펜하겐의 삶’을 하나의 관광 콘텐츠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행복을 뜻하는 휘게도 핀란드와 똑같이 ‘지금에 만족한다’는 감정을 의미하는데요. 코펜하겐의 한 푸드 라이터가 기고한 글 중에는 ‘최근에는 휘게를 넘어 faellesspisning(communal eating,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이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핀란드 못지 않게 행복지수가 높기로 유명한 덴마크도 이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지인들을 조명하는 관광 마케팅은 이제 세계적 추세입니다.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차용중인 방식이고요.
아무리 한국이 BTS를 배출한 나라라지만, 케이팝 스타들의 명성에 어울리지도 않는 기획과 결과물로 길거리 여기저기 팻말이나 세워두는 관광 마케팅에서 이제는 벗어날 시간입니다. 외국인들도 한국에 살고 있는 ‘로컬 피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지를(또는 왜 이 부유한 나라에서 모두가 불행하다고 느끼는지를) 궁금해 할테니까요. 2022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에어비앤비에 검색된 여행지 4위인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현지 라이프를 체험한다며 광장시장에만 모여드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무형의 자원을 내세워야 할지 고민해볼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