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이 숨기고 있는 거대한 구조적 이면
여행지와 카페를 열심히 돌며 최상의 사진을 건져올리는 ‘사진 노동’을 하는 이들은 주로 누구일까? 그들은 디지털 자아를 만들어내는데 왜 이토록 큰 에너지를 쓰는 걸까? 최근 출간된 <인생샷 뒤의 여자들>, 그리고 이 책의 원문이 된 서울대 석사 논문을 모두 읽었다. 이 책과 연구는 인생샷에 커다란 의미 부여와 에너지를 쓰는 계층이 왜 20대 여성에게 유독 집중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며, 사회적 원인에 포커스를 맞춘다.
3년여 팬데믹 기간 동안, 나는 여행산업 안팎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교육하면서 ‘인증샷 문화’가 여행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장년층 남성군이 주류인 전통 여행업자들은 사진이 왜 본인의 사업에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2030 여성은 ‘사진을 위한 목적지’를 선택한다는 것을, 패키지 여행은 그들이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심해하며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그 사이 같은 또래들이 직접 만든 혁신적인 여행사와 공동구매가 활성화되고, 포토그래퍼를 넘어 영상 감독까지 동행하는 20대 전용 여행 상품이 속속 모객을 마감시키고 있다. 물론 젊은 층에겐 자유여행이 기본이지만, 굳이 상품을 이용한다면 이런 상품을 선택한다.
그러나 여행업계에서 인증샷의 중요성을 늘 주장해온 나조차도, ‘왜’는 잘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설득이 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이 책과 논문이 내린 결론이 너무나 궁금했다. 저자가 내린 진단은 ‘그만큼 20대 여성들이 놓여있는 사회적, 구조적 환경이 취약해서’다.
물론 어느 시절이나 20대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 가장 취약한 성인 계층이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오프라인과 온라인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된 지금의 환경에서 ‘인생샷’의 역할은 실로 막대한 중요성을 갖는다. 특히 여행은 가장 좋은 ‘배경’이지만 너무 비싼 경험재여서, 평소에는 카페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즉 여행과 멋진 카페, 예쁜 옷이 그나마 가용 가능한 ‘소확행’이라는 것이다. “대학 진학이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고 평생 집 다운 집에서 살 수 있을 지도 불투명한” 지금의 사회 구조에서 외모 위주의 인생샷은 ‘접근이 쉽고 피드백이 즉각적인 인정 자원’으로 작동한다고 진단했다. 단순히 젊은 층의 놀이 문화나 소셜미디어의 디지털 자산화로만 해석했을 때는 잘 풀리지 않던 대목이, 좀더 선명하게 설명이 된다.
이 책과는 별개로, 소셜미디어 전용 사진을 코칭 및 촬영해주고 수십 만원의 비용을 받는 직업이 최근에 등장했다는 걸 알게 됐다. 서비스 소개에는 ‘이성을 사로잡는 비법’은 프사를 바꾸는 데 있으며, 사진만으로 ‘전문직 종사자, 결혼 상대자를 만날 수 있다’는 노골적인 홍보 문구가 이어진다. 외모 연출을 극대화하는 산업이 정교하게 발달하는 현상은 젊은 층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인 그늘이 매우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여성은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급진적인 메시지가 대다수 여성에게는 양가감정이나 죄의식을 일으킬 뿐 피부에 가 닿지는 못하는 이유다. 지금의 외모 최우선주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개인 차원에서는 적은 자원으로 시도할 수 있는 ‘사진’을 통해 크고 작은 효용성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연구가 조명하는 여성주의적 시각과는 별개로, 효용성의 시각에서 인생샷의 이면을 좀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특히 여행업계, 나아가 인플루언서 업계 전체 시각에서 봤을 때 평범한 이들의 인생샷은 어떻게 이용되는지 살펴보려 한다.
당신의 인생샷으로 돈 버는 이들은 따로 있다
이 연구를 읽고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성의 사진 노동이 향하는 최종 목표가 ‘자아존중감 유지, 지인/이성으로부터의 인정과 선택’과 같은 사적인 레벨에서 멈추는 이유가 뭘까? 하는 점이다. 특히 이 연구에 등장하는 인터뷰 대상은 주로 또래집단 내에서만 사진을 공유하려는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등 최다 팔로워가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한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었다. 이들이 인생샷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직업적 독립을 위한 게 아니고 고작 준거집단의 관심을 받거나 이성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대목은, 너무나 이해가 가면서도 허탈하게 다가온다. 불행히도 이렇게 열심히 배출해낸 인생샷의 실제 댓가는, 이를 정확히 캐치하고 비즈니스화한 이들이 발빠르게 착취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를 활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이들이 실질적 이득을 가져가는 미디어다. 그런데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온 지금의 젊은 층은 소위 인스타 큐레이션 채널, 예를 들면 ‘감성 숙소/감성 카페’ 모음 계정들이 자신의 사진을 ‘허락 댓글’ 한 마디로 공짜로 갖다쓰는 관행에 매우 관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내 사진/외모를 인정해준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인정 욕구 충족) 이렇게 셀렉된 익명의 인생샷들은 큐레이션 채널의 유용한 콘텐츠(=돈줄)가 된다. 그렇게 팔로워를 모은 큐레이션 채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광고 플랫폼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작 사진의 주체들은 자신의 인생샷이 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모르거나, 알아도 개의치 않는다. 사적 인정을 받은 것으로 그 인생샷의 효용성은 이미 다 했기 때문이다.
여행업계에서 소비자의 인생샷 = 돈인 건 오랜 불문율이다. 인스타 큐레이션 채널이 등장하기 전에 성행했던 대표적인 사업 모델이, 평범한 이들의 기발한 여행 인증샷을 소개하며 인기를 끌었던 모 페이스북 커뮤니티다. 이들 커뮤 명칭인 ‘#여행에~’ 해시태그를 달아 어필해서 한번이라도 소개되는 게 이들 또래에게 ‘영광’처럼 등극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커뮤의 여행업계 광고비가 당시에 얼마였는지 아는가? 단가표를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수많은 익명의 여행 콘텐츠는 공짜로 갖다 쓰면서, 수많은 해외출장과 건당 수천만원의 광고비는 이들 몇몇 커뮤가 독식했던 것을 인생샷 마니아들은 알려나 모르겠다. 인생샷을 부추기는 사회적 구조는, 그 결과물까지도 철저하게 착취해 가고 있다.
나는 여성들이 자신이 만드는 콘텐츠에 ‘좋아요’에서 얻는 개인적 만족감을 넘어 더 큰 공적 야망과 목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 대한 브랜딩과 스토리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신상 장소만 부각되는, 그래서 저런 큐레이션 채널이 가장 탐내는 콘텐츠가 젊은 여성들의 장소 기반 인생샷이다. 특히 핫플이나 여행지에서 촬영하는 인생샷은 위치와 상호가 특정된 콘텐츠이기 때문에 업계에서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가장 적합한 형태의 콘텐츠다. 대체재 역시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이런 사진을 단순히 많이 올린다고 인플루언서가 될 확률도 매우 낮다. 또한 온라인에 공개된 인생샷은 이미 생성형 AI의 먹잇감(학습재료)이 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외모 위주로 콘텐츠를 만드는 인플루언서라면, 밥줄이 빠르게 위태로워질거라는 의미다.
나는 3~4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하지 않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회적 인정 욕구를 직업적으로 온전히 채우게 된 시기와 겹친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대외적인 이미지를 관리하지 않아도 업계 전문가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기 시작할 때부터, 인스타그램의 비즈니스적 효용성은 크게 낮아졌다. 물론 나와 같은 지식업을 영위하는 이들에게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강력한 마케팅 채널이다. 직업적 맥락이 형성되고 불특정 다수의 팬과 독자가 생겨난 이후의 인생샷은 업무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미 일부 젊은 여성들은 이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생산해 새로운 업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시 말해 같은 인생샷이라도 누군가에겐 친구들의 좋아요만 받고 끝난다면, 누군가에겐 커리어와 직업(돈)에 도움을 주거나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당신의 인스타그램(또는 인생샷)은 소비에 기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생산에 기여하고 있는가?
마치며
이 토픽을 통해 갖게 된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젊은 여성들이 취약한 인정과 평판 구조에서 빠져나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도록 도울 수 있을까? 같은 길을 지나온 선배로서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직업적,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데에 기여할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지점이다.
젊은 여성들이 본인의 외모 사진으로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사회가 된다면, 240만 건의 인생샷이 인스타그램을 뒤덮는 현상이 이어질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물론 준거집단을 바꾸어야 한다, 더 정치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도 동감하지만 실용적인 해법도 생각해보고 싶다. 싸이월드의 외모 전시에서 막 벗어난 20대 중반 무렵의 나는 ‘블로그’를 선택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양질의 롱폼 콘텐츠는 퇴사 -> 직업의 독립을 이루는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그런데 요즘 20대들은 블로그를 폰카 사진과 함께 일상을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하는, 마치 ‘이번 주의 인스타 결산 모음집’처럼 쓰고 있더라;; 이 부분도 할 얘기 많지만 일단 생략) 기왕 만드는 콘텐츠라면 더 생산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더 나은 기회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 워크숍과 새로운 연재를 구상해볼 생각이다.
한편 여행업계는 젊은 예비 콘텐츠 메이커들을 제대로 발굴하거나 협업하고 있는지, 매번 똑같은 이미지만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건 아닌지도 돌이켜봐야 한다. 또 미의 기준이 획일화된 인증샷 마케팅도 이제 너무 식상해져서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성을 강조하는 마케팅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여전히 팬데믹 이후에도 풍경 + 여성 인물 조합의 식상한 여행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답습되고 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할 것 같다.(이런 면에서 클룩의 ‘망한 여행사진 챌린지’가 얼마나 선진적인 마케팅 사례였는지 알수 있다…) 이에 대해 항공사와 여행사, 호텔업계의 의견도 좀 들어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조만간 밋업을 또 꾸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