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팟캐스트 ‘트래블 트렌드(Travel Trends)’에서는 전 세계 여행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기업 대표와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제가 최근 주목한 인터뷰는 20년 이상 여행 시장에서 ‘가이드 투어의 재정의’를 이끌어온 미국의 여행사 컨텍스트 트래블(Context Travel)의 CEO 준 친-램지(June Chin-Ramsey)와의 인터뷰였습니다.
히치하이커는 해당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컨텍스트 트래블이 어떻게 기존의 획일적인 여행 경험에서 벗어나, 깊이 있고 몰입도 높은 여정을 제공하며 현지 시장의 빈틈을 채우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여행의 미래가 한국 여행업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로마에서 시작된 ‘대량 관광에 대한 반란’
컨텍스트 트래블의 이야기는 2003년, 대서양을 2년 넘게 항해한 후 이탈리아 로마에 정착한 미국인인 폴 베넷(Paul Bennett)과 라니 베바쿠아(Lani Bevacqua) 부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심각한 대량 관광(mass tourism)을 발견하고, 이를 깊이 우려하게 됩니다. 동시에 로마에서 교수, 건축가, 현지 연구원, 작가, 고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집단과 교류하게 되었고, 이러한 전문가들을 통해 도시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컨텍스트 트래블은 단순히 수십 명의 관광객이 버스에 우르르 타고 내려 유명 관광지를 훑고 지나가는 ‘대량 관광에 대한 저항’으로서 태어났습니다.
창립자들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진정한 의미의 학습이 끝이 없는 활동’이라는 믿음, 그리고 ‘주변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관점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풍부한 대화에서 영감을 얻으며, 사실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지향합니다. 컨텍스트 트래블은 여행을 궁극적인 형태의 교육으로 여기며, 의미 있는 상호작용과 기억에 남을 대화로 풍성하게 채워진 경험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자신들의 이름이 뜻하는 바처럼, 시대와 지리, 문화를 연결하며 우리 모두를 하나의 큰 공유된 이야기 속에 엮어내는 ‘맥락(Context)’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죠.
이들은 창립 이래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25만 회 이상의 투어를 진행하며 현재 전 세계 60개 이상의 도시, 6개 대륙에 걸쳐 수많은 학자, 지식인,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여행객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성장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Certified B Corp’ 인증을 받아, 여행이 단순히 지역 자원을 소모하는 행위가 아니라 방문자와 현지인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속 가능한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 실천하고 있습니다.
‘전공 분야 전문가’가 선사하는 초개인화된 몰입감: 세계 70여 개 도시를 잇다
컨텍스트 트래블의 가장 강력한 차별점은 바로 ‘전공 분야 전문가’들이 이끄는 투어에 있습니다. 준 친-램지 CEO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단순히 짜여진 이야기를 외워서 전달하는 가이드가 진행하는 기존 투어와는 달리, 석사 또는 박사 학위를 소지한 학자 및 해당 분야의 종사자, 전문가만을 가이드로 고용하는 전략을 고수합니다.
전체 가이드의 80% 이상이 해당 분야의 석사 또는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여행객들을 단순한 관광 경로에서 벗어나 현지 사람들의 실제 삶, 역사, 문화 속으로 초대합니다. 예를 들어, 로마의 고대 유적을 탐험할 때는 발굴에 직접 참여했던 고고학자와 함께하며, 도쿄의 역동적인 건축물들을 거닐 때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한 건축가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또한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시장에서는 모든 상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요리 전문가와 함께 현지 식문화의 깊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문가들은 복잡한 역사, 예술, 문화를 이해하기 쉽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풀어내어, 여행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깊은 인상을 선사합니다.
또한 고객 개개인의 관심사에 맞춰 여행의 내용을 ‘맞춤형’으로 조율합니다. 예를 들어, 8살 아이의 호기심부터 크로아티아를 처음 방문하거나 시칠리아를 10번째 방문하는 80세 노부인의 섬세한 취향까지 모든 연령대의 다양한 지적 갈증을 해소시켜 줍니다. 이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개인의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변혁적인 여행 경험’을 지향하는 컨텍스트 트래블만의 핵심 가치입니다.
컨텍스트 트래블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로마에서 시작하여 파리, 런던과 같은 문화적인 아이콘 도시뿐만 아니라 멕시코시티, 그리고 대한민국의 서울과 같은 신흥 여행지까지 전 세계 6개 대륙, 70여 개 도시에 걸쳐 소그룹 및 개인 맞춤형 투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준 친-램지 CEO가 2020년부터 회사를 이끌며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하며 역사 애호가, 예술 감상가,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모든 여행객에게 특별한 가치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마치며: 한국 여행업계가 대비해야 할 미래
컨텍스트 트래블의 성공 사례는 한국 여행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제 여행객들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돌아오는 것을 넘어, 특정 목적지에서 자신만의 특별하고 의미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컨텍스트 트래블이 한국 서울을 새로운 여행지로 포함시킨 것은, 서울이 이러한 깊이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한국 여행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전문가 가이드’ 양성 및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국의 풍부한 역사, 문화, 예술 분야에서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학자, 작가, 예술가, 요리사 등을 발굴하고 이들이 여행 산업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외국어에 능통한 가이드를 넘어,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심층적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컨텍스트 트래블이 보여주듯이 기술은 개인화를 지원하는 도구일 뿐, 결국 차별화된 깊이와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사람’과 그들의 ‘전문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수많은 매력적인 장소와 이야기들이 각 분야 전문가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고 전달될 때, 한국은 세계적인 고품격 여행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