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의 미래’를 출간한 지도 어느 덧 4년이 흘렀습니다. 여행 트렌드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단행본 도서였죠. 이 책을 쓴 가장 큰 목적은 국내외 폭넓은 사례와 취재를 통해 한국의 여행업계와 진화하는 소비자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를 밝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으로 시작된 저의 미션은 이제 히치하이커닷컴과 유튜브 채널 ‘히치하이커TV’를 통해 미디어 비즈니스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럽에도 히치하이커와 비슷한 포지션을 가진, 퓨처 트래블(FutureTravel)이라는 미디어가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미디어 EU-Startups.com의 창립 팀원이 운영하는 뉴스 브랜드로, 유럽의 여행 산업 및 스타트업 혁신과 관련한 이니셔티브와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2024년에 내놓은 재미난 보고서가 있는데요. ‘미래의 여행을 바꾸는 도시 5곳‘입니다. 기술, 디자인, 교통 등의 변화로 도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5곳의 목적지를 선별했습니다. 올 한 해 여행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목적지로 정해 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서 간단히 소개해 드립니다.
부다페스트: AI 가이드가 있는 도시
부다페스트 시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방문자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맞춤형 여행 일정을 생성하는 기술을 관광청 사이트에 도입했습니다. 이 기술을 제공한 업체는 스위스의 여행 기술 회사인 ‘더 트립 부티크(The Trip Boutique)’인데요. 개인 맞춤형 여행 일정을 제공하는 여행 플래너 서비스입니다. 이 회사는 고객의 선호도를 기반으로 여행 일정을 계획하여 초개인화된 여행 일정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인공지능 여행 일정 AI 바로 가기
💭 부다페스트 관광청과 트립 부티크가 제공하는 인공지능 여행 플래너를 직접 사용해서 3일간의 부다페스트 여행 일정을 짜 봤습니다. 트립 어드바이저의 플래너와 상당히 플래닝 과정이 유사하지만 훨씬 더 디테일하게 여행 취향을 묻는 만큼, 결과물도 꽤나 퀄리티가 높습니다. 일단 호텔과 투어의 예약 링크가 연계되어 있으며, 누가 추천했는지도 보여주어 ‘인적 컨설팅’이 들어갔다는 이미지도 줍니다. 또한 장소별 / 일자별 콘텐츠로 각각 정렬해주는 기능 또한 매우 우수하네요. 저는 실제 헝가리 여행에서도 사용할 것 같습니다.
베니스: 오버 투어리즘으로 도시 입장료를 부과하는 최초의 도시
베니스는 과도한 관광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일일 방문자에게 10유로의 관광객 입장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베니스는 2019년 15억 유로(18억 달러)의 관광 수익을 창출했는데, 이 중 무려 30%가 당일치기 여행객으로부터 나온 수익이었다고 하네요. 따라서 베니스는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을 위해 관광객의 흐름(flow)을 조정하는 조치 중 하나로 관광세를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관광세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또한 이렇게 걷어진 관광세는 어떤 방식으로 베니스의 사회적 인프라 향상에 기여하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베니스의 관광세 정책은 2024년부터 베니스를 여행하실 모든 한국인 여행자에게도 해당되므로 자세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베니스는 올해부터 당일치기 여행객에게 관광세를 부과합니다. 2024년 4월부터 7월까지 29일 동안, 주말 오전 8시 30분에서 오후 4시 사이에 방문하는 여행객이 대상입니다. 관광세는 5유로(약 7,000원)이며, 1박 이상 숙박하는 경우 숙박비에 세금이 포함되어 있어 티켓을 따로 구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베니스는 도시 입장료도 부과합니다. 입장료는 비수기에는 3유로, 성수기에는 10유로입니다. 입장 티켓은 베니스 공식 관광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도시 입장 티켓 구매 바로 가기) 관광세를 내지 않고 돌아다니다 적발된 여행객에게는 과태료 50~300유로와 관광세 10유로가 각각 부과된다고 하네요.
텔아비브: 자동차를 벗어나 친환경 교통에 집중하는 도시
텔아비브는 2025년까지 350km의 자전거 도로를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도시 중 하나인 텔아비브는 대중 교통망을 확장하고 자전거나 전기 스쿠터와 같은 대체 교통 수단의 사용을 장려함으로써 교통 체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 텔아비브는 중동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1천 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유치한 첨단 도시로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 목적지로서는 어떨까요? 이스라엘의 관광산업은 장기화되는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날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친환경 교통수단 인프라가 갖춰진들, 당분간 텔아비브는 텅 빈 공항 입국심사대를 맞이해야 할 것 같네요. 한국도 이러한 관점에서는 적지 않은 리스크를 내재하고 있어 우려가 됩니다.
파리: 15분 안에 삶이 있는 도시
파리는 15분 도시로 변신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처음으로 발표한 도시입니다. 이는 도보, 자전거 또는 효율적인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15분 안에 필요한 모든 것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시 공간을 만드는 전략입니다. 파리뿐 아니라 서울, 보고타(콜롬비아), 휴스턴(미국)도 추구하고 있는 도시의 콤팩트화는 여행업계 이해관계자에게도 교통, 숙박, 엔터테인먼트 및 전반적인 여행자 경험을 재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관광의 동선을 최적화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더 많은 도시가 추구해야 하는 모델이라고 강조하고 있네요.
💭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좀더 자세한 15분 도시의 개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5 분 도시는 업무, 쇼핑, 교육, 의료 등 대부분의 일상 필수품과 서비스가 15분 내 거리에서 제공되는 도시 계획 개념 입니다. 도시 어느 곳에서나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을 이용해 15분 거리에 있는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접근 방식은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장려하며 도시 거주자의 웰빙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15분 도시 개념을 구현하려면 잘 설계된 공공 공간, 보행자 친화적인 거리 및 복합 용도 개발을 만들기 위해 교통 계획 , 도시 설계 및 정책 입안을 포함하는 다분야적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 라이프스타일의 이러한 변화에는 일일 통근 시간을 줄이고 최근 정보 통신 기술의 광범위한 가용성을 뒷받침하는 원격 근무가 포함됩니다.
결국 15분 도시가 되려면 도시 계획 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특히 근무 방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하는 거네요.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유럽에 비해, 다시 이전의 근무 환경으로 되돌아간 한국의 출퇴근 전쟁 현실에서는 갈 길이 조금은 멀어 보입니다.
헬싱키: 멀티버스에 인사하는 도시
우리가 메타버스를 언급하기도 전인 2018년 말에,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디지털 트윈 시티인 버추얼 헬싱키(Virtual Helsinki)를 공개했습니다. VR 안경만 있으면 도시를 방문하고, 주요 명소를 보고, 헬싱키 거리를 걷는 경험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온라인 디지털 경험입니다. 특히 버추얼 헬싱키는 쇼핑, 교육, 콘서트, 시뮬레이션, 가상 시민 의식 등 다양한 실제 활동을 가능하도록 구축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타임슬립을 통해 20세기 초반의 헬싱키를 둘러볼 수도 있고, 가상 상점에 들어가 구매한 디자인 제품을 실제 우편으로 배달 받아볼 수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헬싱키는 2019년 유럽 스마트 관광의 수도로 선정될 수 있었죠.
💭 우리는 팬데믹 이후에야 부랴부랴 메타버스 개념을 들고와서 온갖 지자체들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일회성 사이트를 구축하는데 열을 올렸고, 이제는 다 버려졌죠. 반면 헬싱키는 이전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구축해온 디지털 트윈 덕분에, 팬데믹 기간에는 많은 시민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안정적인 문화 경험을 누렸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6월에 버추얼 헬싱키에서 열렸던 도시 축제 ‘헬싱키의 날(Helsinki day)’입니다. 이미 이에 앞서 메이데이 콘서트에서 무려 10만 명 이상의 참가자와 1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모은 경험을 발판으로, 버추얼 헬싱키는 헬싱키를 환상적인 풍경으로 연출해 시민에게 제공했습니다. 이 축제에서 핀란드 싱어송라이터 알마(ALMA)는 데뷔앨범의 풀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버추얼 헬싱키의 성공은 메타버스의 핵심 가치가 현실세계와의 매끄러운 연계성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