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오사카 여행 중에 LP를 브랜드 콘셉트로 한 호텔인 ‘호텔 쉬 오사카‘에 묵었다. 객실에서 처음 접한 LP의 아날로그 매력에 호기심이 생겼고, 마침 다음 날 들른 HMV 매장에서 파는 중고 LP의 저렴한 가격에 혹해서 몇 장을 사왔다. 그런데 귀국 후 한국의 빈티지 LP 가격을 알아보니 일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형성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LP 수집 마니아라면, 일본에서 LP를 사오는 것이 엔저를 배제하더라도 큰 강점이 있었다.
좀더 찾아보니 전 세계 레코드 수집가들이 오직 빈티지 LP 구매를 목적으로 일본을 찾고 있다는 최근 보도를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현상은 단순한 쇼핑 관광을 넘어 ‘뮤직 투어리즘’ 트렌드 관점에서도 짚어볼만한 현상이다. 히치하이커는 일본의 LP 시장이 어떻게 글로벌 음악 애호가들의 성지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LP 시장이 부상한 배경
세계 최대의 레코드 숍 보유국
2025년 3월 재팬 타임즈는 ‘도쿄의 바이닐 전문가들은 해외 바이어들이 이 시장을 지탱하고 있다고 말한다(Tokyo’s vinyl experts say overseas buyers are sustaining the scene)’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도쿄는 93개의 레코드 상점을 보유하여 세계 어느 수도보다 많은 레코드 숍을 갖추고 있다. 이는 일본의 아날로그 음악 문화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시장조사 회사 이마크 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닐 레코드 판매 가치는 19억 달러에 달한다. 일본 레코드 산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아날로그 레코드 생산량은 전년 대비 26% 증가했으며, 일본의 바이닐 시장은 2024년 8,550만 달러에서 2033년 1억 6,53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쿄 시부야의 타워레코드 플래그십 스토어도 이러한 아날로그 열풍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반영해 2024년 2월에 레코드 플로어를 리모델링하여 그 규모를 거의 두 배로 확장했다. 증가하는 국제 바이어들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명실공히 수백만 관광객의 일본여행 기념품으로 위스키에 이어 LP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바이닐 쇼핑, 왜 인기 있나?
일본 바이닐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품질이다. 특히 도시바의 정전기 방지 ‘에버-클린’ 레드 바이닐(1958-1974년 제작)은 전 세계 컬렉터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다. 또한 ‘오비’라 불리는 일본 특유의 종이 띠와 중고품의 뛰어난 보존 상태도 일본 레코드가 인기 있는 이유다. 오랫동안 하드코어 컬렉터와 오디오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희귀한 일본 프레싱을 찾아왔다. 실제로 이번에 오사카 HMV에서 살펴보니 수십 년 된 중고 LP가 새 제품처럼 관리되고 있었고, 구매해온 레코드의 상태도 거의 새것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지점은 해외 컬렉터와 일본 현지인의 취향 차이다. 해외 컬렉터들은 70~80년대에 나온 일본의 재즈 음반에 주력하는데, 정작 이러한 음반들은 일본 내에서는 너무 흔해서 잘 팔리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있는 악성 재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판매자들은 무조건 희귀한 레코드만 취급하는 게 아니라, 해외 바이어들을 위해 일본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음반을 함께 취급한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바이닐 쇼핑 여행의 인기 요인은 엔저로 촉발된 기록적인 관광객 유입과 맞물려 있다. 많은 컬렉터와 리셀러들은 일본에서 수집한 레코드를 본국으로 가져간다. 영국이나 유럽의 레코드 상점 오너들은 일본에 와서 단 한 장의 레코드만 제대로 건져도 일본 여행 비용이 커버될 정도라는 것이다. 폭증하는 LP의 리셀링 때문에 전반적인 거래 가격이 올라가면서, 일본 내수 소비자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키는 반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마치며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 LP를 콘셉트로 한 호텔을 만나고 LP의 매력에 새삼 주목하게 된 건, 사실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를 우연히 체험한 것이다. 동시에 한국에서도 아날로그 열풍은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는 많은 케이팝의 음반들이 레코드로 발매되고 있고 그 판매가도 대단히 높은 편이다. 최근 발매된 블랙핑크 로제의 ‘로지(rosie)’ LP는 정가 5~7만원을 호가하는 한정반이지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즉 단순히 음악 감상을 위한 아이템이 아니라 소장용 ‘굿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찾은 LP의 인기는, 전 세계에서 LP 숍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인 일본의 아날로그적 특성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여행 목적성을 부여하고 있다. 다음 일본 여행에서는 더 많은 레코드 숍을 방문하여 이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더 깊이 탐색해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