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여행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디지털 노마드가 생겨날 거라는 건, 팬데믹 이전부터 나타났던 사회적 변화였죠. 그 변화를 반영한 최초의 숙박 브랜드가 셀리나(Selina)입니다.
셀리나의 비즈니스 모델은 ‘MZ세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체험 호텔’입니다. 값싼 부지를 찾아내어 임대한 후 몇 달 안에 리모델링하고, 숙박과 코워킹 오피스를 갖춘 MZ 타겟의 숙박 시설로 바꾸는 방식으로 빠르게 확장을 해 왔습니다. 숙박 형태와 가격 면에서, 셀리나는 호텔과 호스텔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크고 무거운 덩치를 가진 기존 호텔 기업들은 부랴부랴 젊은 이미지의 신규 브랜드를 만들어 셀리나의 타겟 시장에 대응하려고 했지만, 셀리나처럼 ‘일과 놀이, 여행을 블렌딩한 여행자’를 정확히 겨냥한 단일 브랜드는 사실상 아직도 만들어내지 못했죠. 그래서 저는 호텔업계의 혁신을 이끄는 셀리나의 성장을 내심 응원하며 반겼고, 국내에는 관련 소식이 전혀 보도되지 않았던 만큼 이 호텔이 처음 창업했을 당시부터 국내에 관련 소식을 꾸준히 알려 왔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원격 근무 시장이 펼쳐졌고, 셀리나의 확장은 날개를 달면서 6개 대륙 24개국으로 진출했습니다. 10개도 안되었던 체인이 지금은 100여 개가 넘었죠.(23년 12월 현재 109개) 마침내 2022년 10월 스팩(SPAC) 상장을 통해 나스닥에 기업공개까지 성공시켰습니다.
그러나 2023년 12월 현재, 셀리나의 주가는 무려 98% 이상 추락해 사실상 0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불과 2년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위크래시드(weCrashed)로 본, 위워크와 셀리나의 평행이론
셀리나가 짧은 시간에 추락한 요인은 크게 3가지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1)수익 대신 성장을 지향하는 확장 전략, 2)사업의 본질에서 벗어난 기술 앞세우기, 3)재무제표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독자적인 수익 평가법입니다.
그런데, 위 3가지 요인으로 인해 2년여 만에 90% 이상 주가가 추락한 회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공유 오피스 브랜드 ‘위워크’입니다.
그리고 셀리나의 주식 8.4%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사실 상 초기 창업에 깊이 관여했다고 알려진 투자자가 바로 위워크의 창업자, 애덤 뉴먼입니다.
먼저 위워크와 셀리나는 출발 과정과 비즈니스 모델이 매우 닮아 있습니다. 두 가지 공통점을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1. 두 회사 모두 이스라엘 출신의 창업자가 만든 회사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키부츠 출신으로 커뮤니티 문화 속에서 성장한 애덤 뉴먼은, 미국식 개인주의 이면의 ‘외로움 경제’에서 큰 사업 기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셀리나의 공동 창업자인 이스라엘인 무세리와 루다세브스키가 공동 소유한 홀딩 회사의 이름 또한 ‘키부츠’입니다. 키부츠가 셀리나의 29%를 소유하고 있으며, 셀리나의 부동산 개발을 담당하는 데켈이라는 회사 역시 키부츠가 100% 소유한 계열사입니다.
2. 두 회사 모두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고 임대하여 빠르게 리모델링하는 비용 집약적 사업입니다. 사실상 위워크는 오피스고 셀리나는 호텔이라는 점만 다를 뿐,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롭게 일하고자 하는 MZ세대의 욕망을 겨냥하고 있으며 공동 작업 공간을 통한 ‘커뮤니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숙박 업계를 민주화하고 있다’는 셀리나의 주장 역시 위워크와 비슷하죠.
저는 셀리나를 창업 시점부터 지켜봐 왔기 때문에, 뒤에 애덤 뉴먼이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덤 뉴먼이 만든 기업인 위워크의 추락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셀리나의 추락을 보고 제일 먼저 봐야겠다고 생각한 시리즈가 애플TV의 위크래시드(weCrashed)입니다.
예상대로 애덤 뉴먼의 창업 과정을 그린 드라마에서 적나라하게 짚어낸 위워크의 추락 과정에서는, 셀리나의 추락 원인으로 꼽히는 3가지 요인이 모두 등장했습니다. 셀리나를 중심으로 두 회사의 기업 가치가 폭락한 3가지 요인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나친 확장 전략입니다. 셀리나는 설립 이후 너무 빠른 글로벌 확장을 거듭하면서 줄곧 지속적인 손실과 마이너스 현금 흐름을 발생시켰죠. 상장 이후 3년간의 재무제표도 처참한 수준입니다. 이제 상장 직후 주가인 9달러 대비 90%가 폭락해 사실상 주가가 0에 수렴하고 있네요. 이들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부동산을 직접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가장 큰 자산은 회사가 구축한 브랜드입니다. 아마도 브랜드 인지도를 기반으로 압도적 시장 점유를 위해 확장을 서둘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위워크의 무리한 지점 확장 전략과 너무나도 닮아 있죠.
그러나 호텔 운영은 IT 플랫폼 사업과 달리, 규모의 경제에 따른 이점이 크지 않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는 분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자체 내부 보고서에서도 이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어 왔다고 하네요.
2. 셀리나가 ‘테크’, 즉 기술 기반 비즈니스임을 지나치게 내세워 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하이테크 이미지는 셀리나를 보수적인 호텔 체인과 대비되는 성장형 스타트업이라는 이미지로 연출해 줍니다. 이 역시 위워크가 손정의의 비전펀드 투자를 받기 위해 기술 기업으로 서둘러 포장하려 했던 장면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셀리나가 내세운 기술은 객실 및 체험 예약과 사전 체크인, 교통 호출 기능이 갖춰진 애플리케이션(b2c), 그리고 공간 활용도를 분석하고 조명, 난방, 냉방, 물 타이머를 설정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back) 등을 의미하는데요. 사실상 이러한 기술은 호텔업계에 널리 도입된 것으로,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3. 셀리나는 재무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지수를 사용해 왔는데요. 호텔업계가 사용하는 객실 당 점유율 대신, 셀리나는 침대 점유 당 총 수익(TRevPOB)이라는 희한한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셀리나는 개인실, 2인실, 다인실로 객실을 분류합니다. 즉 자신들은 호텔과 호스텔 두 가지 형태를 모두 갖고 있으며 다인실의 경우 서로 다른 게스트의 공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호텔과 같은 객실 단위가 아닌 베드 단위로 수익을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객실 당 점유율이라는 표준 지수로 셀리나의 지표를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무 성과는 불투명해집니다.
위워크 역시 소름돋게 똑같은 방법으로 기업 공개 보고서를 만듭니다. 위크래시드에서는 애덤 뉴먼과 그의 부인인 레베카가 IPO를 위한 필수 제출 서류인 S-1을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었는지 묘사하죠. 뉴먼 부부는 회사 수익성을 명확하게 측정하는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 및 상각 전 수익) 수치를 빼버리고 자체 측정값을 만듭니다. 특히 임차료는 물론 임대료, 직원 채용, 디자인, 마케팅 및 관리 비용을 빼버립니다. 투자자들이 위워크의 미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수치를 다 빼버린 것이죠.
마치며
애덤 뉴먼은 일관되게 공유 공간 비즈니스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는 위워크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도시’ 뉴욕에서 1인 기업가들이 다 같이 일하며 놀 수 있는 사무실을 만들었죠. 2017년에는 위리브(welive)라는, 셀리나와 거의 유사한 코리빙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듬해인 2018년에 셀리나에 개인 지분을 투자했고, 이어서 2019년 이사회의 압력으로 위워크에서 물러납니다. 그는 여전히 공유 거주 사업의 꿈을 버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 사업으로 재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바로 플로우(Flow)라는 코리빙 서비스인데, 얼마전 안드레센 호로위츠가 투자해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를 믿었던 많은 위워크 투자자에게 커다란 손해를 끼쳤고 결국 위워크는 지금 파산에 도달했는데도, 개인적으로는 천문학적인 자산을 챙겨 새출발하는 애덤 뉴먼의 행보에 신뢰를 보낼 수만은 없습니다.
결국 그가 만들거나 투자한 두 기업의 몰락은, 시장 장악을 위한 폭발적인 성장 전략이 때로는 업의 본질을 벗어나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미국 현지에서는 호스텔 체인에 가까운 셀리나의 실패를 ‘호스텔월드’의 꾸준한 성공과 빗대기도 합니다. 호스텔월드는 1999년 탄생해 사실상 1세대 OTA로, 혁신적인 이미지를 주는 기업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 고객인 MZ세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조금씩 서비스를 개선해 나갔고, 이들이 전 세계 여행지에서 가성비있는 숙박 시설을 찾고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계속해서 개발해 나아갔습니다. 호스텔월드가 보수적인 성장 전략을 선택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주식을 발행하면서 일관된 순이익을 보여준 사례는, 기업이 꼭 혁신이나 성장을 강조한다고 해서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역설적으로 셀리나의 실패는 숙박과 호텔업계가 왜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산업인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사례여서, 개인적으로는 다소 씁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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