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리면 비로소 진정한 얼굴을 드러내는 도시들이 있습니다. 일본 역시 밤이 깊어질수록 색다른 매력을 뽐내며, 최근에는 단순한 유흥을 넘어 지역 문화와 정서가 담긴 ‘야간 경제’가 중요한 관광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특유의 ‘스낵 컬처’가 외국인 관광객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새로운 관광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히치하이커는 스낵 컬처의 정체와 이를 관광 상품으로 성공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여행사 ‘온라인 스낵 요코초 문화’의 기발한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나아가 럭셔리 호텔과의 협업 사례를 통해 일본 야간 경제의 새로운 현상을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스낵 컬처’란 무엇인가?
‘스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분들이 과자나 가벼운 먹거리를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스낵’은 일본식 바(Bar)의 한 형태로, 주로 ‘마마(ママ)’라고 불리는 여성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고 술을 따르며 대화를 나누는 소규모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카운터석이 주를 이루며, 단골 손님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노래를 부르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과거에는 중장년층 남성들의 유흥 문화로 인식되곤 했지만, 최근에는 그 인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사이에서 ‘쇼와 레트로(昭和レトロ)’ 감성이 유행하고, 팬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과의 교류에 대한 갈증이 커지면서 ‘스낵’은 오히려 세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젊은 층은 과거 세대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하며, ‘마마’라는 타인에게 기댈 수 있는 위안을 찾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유흥 문화 중에서도 음지의 산물이자 권력의 상징 등으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접객 음주 문화가, 일본에서는 시대의 유산으로 조명받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스낵 컬처를 관광 상품으로, ‘스낵 요코초’의 비즈니스 모델
이러한 스낵 컬처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이를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구현한 주인공은 바로 이가라시 마유코(五十嵐真由子)입니다. 자신을 ‘스나녀(スナ女)’, 즉 ‘스낵을 사랑하는 여성’이라 칭하며 전국 600곳 이상의 스낵을 직접 방문했을 만큼 스낵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스낵들이 폐업 위기에 놓였고, 이가라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스낵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2020년 5월, 그는 ‘온라인 스낵 요코초(オンラインスナック横丁)’라는 혁신적인 플랫폼을 기획합니다. 이는 스낵의 단골 고객들을 위한 온라인 음주 플랫폼이었으며, 기존 스낵이 가지고 있던 ‘내부가 보이지 않고, 가격이 불분명하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진입 장벽을 온라인으로 허물고자 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처음 8개 점포로 시작했던 참여 스낵은 현재 전국 90개 점포로 확대되었고, 놀랍게도 이용자의 60%가 ‘스낵 초보자’였으며, 절반이 여성 고객이었습니다. 특히 20대 여성층의 유입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쇼와 레트로’ 감성에 대한 호기심과 팬데믹으로 단절된 후 누군가와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소통 욕구’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마마’라는 타인이기에 오히려 마음을 터놓기 쉬운 스낵의 고유한 매력이 새로운 세대에게 어필한 것이죠.
이들은 2022년 12월부터 외국인 방문객을 대상으로 🔗’일본 스낵 바 호핑 투어(Japanese snack bar hopping tour)’를 시작하며 일본의 바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투어는 언뜻 보기에 일반적인 일본인에게도 접근하기 어려운 스낵이라는 공간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문화 체험 상품으로 전환했습니다. 특히 도쿄의 신바시(新橋)와 같은 지역에서 좁은 골목길 속 스낵들을 돌며,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을 넘어 일본의 생활상과 정서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어가 가능한 가이드가 동행하며, 스낵의 ‘마마’와 단골손님들과 소통을 돕고, 가벼운 퀴즈를 통해 스낵 문화를 이해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스낵이 가진 ‘지역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인식하고, 지역성이 강한 스낵과 그 주변 도시의 매력을 연계하여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스낵을 입구로 한 지방 창생’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통역 가이드 확보, ‘마마’들의 IT 리터러시 교육 등의 과제가 있지만 일본 여행 대기업인 H.I.S.와의 협업 등을 통해 꾸준히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5성급 호텔에 도입된 스낵 컬처의 의미: 안다즈 도쿄의 사례
이러한 스낵 컬처의 확장 가능성은 2025년 9월 16일 발표된 안다즈 도쿄(Andaz Tokyo)와의 협력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하얏트 계열의 럭셔리 호텔 브랜드인 안다즈 도쿄는 2박 이상 투숙객을 대상으로 “The Nostalgic Soul of Tokyo Today – 음악·식·신바시 나이트라이프”라는 특별 숙박 패키지를 출시했습니다. 이 패키지는 안다즈 도쿄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맞춰, 오반자이(おばんざい) 식당 방문, 쇼와 시대 시티 팝 음악을 레코드 사운드로 즐길 수 있는 바 체험, 그리고 신바시 가라오케 스낵에서 ‘마마’ 및 단골손님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의 유머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야간 투어’를 넘어, 5성급 호텔이라는 고급스러운 공간과 전통적인 서민 문화인 ‘스낵’을 융합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고층 빌딩의 현대적인 스카이라인 아래에서 펼쳐지는 도시의 화려함과, 골목길 스낵의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여행자에게 독특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럭셔리 여행객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서비스만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깊이 있는 문화 체험과 지역과의 진정한 연결을 추구하며, ‘스낵 컬처’는 이러한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줍니다. 특히 영어가이드가 동반되어 문화적 장벽을 낮추고, ‘도시형 나이트 컬처 체험’이라는 테마로 인바운드 관광객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급 호텔이 ‘스낵 컬처’를 숙박 패키지에 도입하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럭셔리 여행 시장에서 ‘진정성 있는 로컬 경험’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스낵’이 과거의 이미지를 벗어나, 충분히 고급스럽고 세련된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합니다. 셋째, 다양한 계층과 문화를 아우르는 ‘믹스 앤 매치(Mix & Match)’ 트렌드가 관광 산업 전반에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마치며
일본의 스낵 컬처는 시대를 초월하여 그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술집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통의 공간이자 지역의 정서가 녹아든 문화유산으로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온라인 스낵 요코초 문화’와 같은 기업들의 노력으로 스낵은 매력적인 관광 상품으로 진화했으며, 2025년 안다즈 도쿄의 사례처럼 럭셔리 호텔과도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관광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야간 경제의 밝고 건전하며 문화적인 요소를 더 발굴하고 이를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 한국의 야간 관광 상품은 야시장 투어, 맛집 순례, 야경 사진 촬영 등 다소 한정적인 범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국의 서민적인 로컬 문화 요소를 새롭게 발굴하고, 이를 관광 상품과 결합하려는 과감한 기획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렀지만 미처 주목받지 못했던 소박한 일상문화 속에서, 여행객의 마음을 움직일 ‘진정성 있는 경험’과 ‘깊이 있는 교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