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행사 직원 강의를 준비하면서, 소셜미디어 상에서 2030들이 ‘패키지 여행’ 단어를 어떨 때 언급하는 지에 대한 조사를 몇 주간 해왔습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MZ 세대가 원하는 패키지 여행도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희망하는 상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서 셀프 패키지를 만들어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최근 열풍에 가까운 상견니 테마의 대만 여행입니다.
최근 1년 간 모 소셜미디어에서 패키지 여행을 언급한 포스팅을 검색해 보면, 반복적으로 같이 언급되는 키워드가 하나 있습니다. 대만에서 2019년~2020년 초까지 방영된 드라마 <상견니>입니다. OTT를 통해 전 세계의 콘텐츠가 유통되다보니, 상견니는 티빙과 웨이브 등에 이어 넷플릭스에 올라오면서 폭넓은 한국 팬을 얻게 됩니다. 얼마전 영화판이 개봉하면서 주연 배우 3명이 내한하기도 했죠.
2022년 11월부터 대만 여행의 입국 절차가 풀리면서, 드라마 팬들이 속속 대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배경지는 타이베이, 이란, 타이난 등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어 복잡합니다. 그러니 소셜미디어에 ‘상견니 패키지 어디서 안 만드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게 된 것이죠.
하지만 제가 조사한 바로는 대만 여행사의 단발성 패키지 외에는 아직까지 어떤 국내외 여행사에서도 이 상품을 만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간극에서 살펴본 인사이트를 정리해 둡니다.
2030의 목적성 여행, ‘상품화’되기 어려운 이유
흔히들 젊은 세대는 모바일 세대이기 때문에 자유여행을 자발적으로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분석이 많습니다. 물론 이들이 과거 세대에 비해 여행에서 높은 자유도를 원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외부적 환경 중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시간의 부족’입니다.
한참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 초년생들은 어떤 형태로 여행을 가더라도 여행에 온전히 쏟을 시간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과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청년 세대가 경제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면 여행에 대한 니즈도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여행 유튜브 보면 되는데 굳이 여행?’ 이런 분위기를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우려했던 게 이런 이유인데요. 이를 다른 측면으로 해석해 본다면 지금 여행을 떠나는 젊은 세대들은 반드시 거기 가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떠나는 겁니다. <상견니>는 대표적 사례죠. 문제는, 이들의 시간을 아껴줄 플레이어는 아직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성 여행은 대단히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예전 제조업 시대처럼 규격화된 패키지 여행을 판매하는 여행사에서, 수많은 테마를 그때그때 트렌드에 맞게 일정을 재배치하고 맞춰주는 여행이 나올 수 있을까요? 반사적으로 ‘이런 여행은 절대로 돈이 안된다’는 접근법이 바로 나올 겁니다. 대형 여행사가 아니라 여행 플랫폼이라도 단발성 테마 패키지는 수익화하기 어려운 것이 업계 불문율입니다. 투입되는 자원 대비 마진도 적고 소비자 풀도 작아서 모객이 어렵거든요. 심지어 대만발 투어 플랫폼인 케이케이데이조차도 자사 블로그에 상견니 코스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고, 현지 투어는 아직도 없습니다. 저작권 문제도 한 몫 할 수 있고요.
그러다 보니, 테마 여행을 원하는 소비자라면 자유여행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견니 열풍은 곧 사그러 들겠지만, 다음 인기 테마가 나오더라도 이 현상은 크게 변화할 것 같지 않네요.
대만 관광은 상견니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강력한 코로나 정책으로 다소 늦게 관광 입국을 개방한 대만에서는, 이보다 좋은 호재가 없을 겁니다. 애초에 대만 인바운드는 자유여행이 대세이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드라마의 주요 배경지인 타이베이와 타이난에서는 발빠르게 외국인용 상견니 관광 지도를 배포하고 있습니다.(오리지널 지도는 드라마 종료 이후 바로 제작) 두 도시를 오가는 교통수단인 고속철도 역 인포 센터에서 말이죠. 또한 모든 순례 장소는 구글맵 주소로 널리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여행자들은 손쉽게 모든 장소를 다녀올 수 있기는 합니다. 빠듯한 여행 일정이 문제라면 문제겠죠.
제가 드라마를 정주행하면서 집중적으로 관찰한 대목은 맨 마지막화의 크레딧에서 발견한 대만의 관광 슬로건 로고였습니다. 애초에 이 드라마 제작 단계부터 대만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길거리 음식은 실제 점포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점이 한국의 드라마와는 굉장히 다른 부분이죠. 우리는 실제 맛집 대신 가상의 식당 또는 서브웨이같은 PPL 업체를 느닷없이 등장시키는데 말이죠.
덕분에 지금 상견니 팬들은 드라마에 등장한 설탕 꽈배기나 빙수, 냄비 우동을 실제로 먹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목적 여행에 부합하는 질 높은 경험을 실제로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트장 구경 수준이 아니라 내가 드라마에 들어온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죠. 게다가 주요 배경지인 ‘타이난’은 지금 그야말로 인기가 ‘떡상’했습니다. 저도 예전에 너무나 좋았던 여행지인데요. 이제 타이난은 역사 명소 도시를 넘어, 새로운 테마 여행지로 거듭났네요.
마치며
노파심에, 이 글을 보고 뒤늦게 상견니 투어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하셨다면, 이 정도 인기에도 대만 현지 여행사조차 투어 상품을 상설 운영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둡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사례가 얼마나 더 많이 나올까요? OTT로 바뀐 미디어 시청 트렌드로 볼때, 저는 대만 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이와 비슷한 목적 여행 행태가 더 커질 거라고 봅니다.
정리한다면, 향후 여행의 목적성은 굉장히 세분화될 것입니다. 또한 뚜렷한 행위/목적이 있을 때 여행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목적 여행이 여행 분야의 얼리아답터 소비자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들의 행태를 미리미리 분석해 둔다면, 향후 여행 비즈니스를 리딩하거나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좋은 드라마 잘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