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홍사훈의 경제쇼 – ‘올림픽의 경제학’ 방송을 듣다가, 여행산업이 사례로 등장해서 유심히 듣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관심있는 주제가 미디어 산업 구도의 변화인데, 이 현상의 배경이 ‘달러’와 ‘빅테크’이고 이 두 가지를 쥐고 있는 국가가 미국이다. 그런데 이 미국 종속화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여행이 등장한다는 건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중요한 맥락을 정리하면서 인사이트를 더했다. 원문 방송은 여기서부터 들을 수 있다.
미디어 소비에 ‘달러’를 지출하는 시대
올림픽의 영향력과 수익 모델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올림픽 중계가 TV를 통해 독점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등 다양한 OTT 서비스가 등장하여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너무나 많아졌다. 따라서 방송국이 올림픽 중계권을 구입하더라도 예전만큼 큰 파급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을 더한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국가 대항전’으로 치뤄지는 행사에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않는다. (개인마다 관심있는 콘텐츠 소비 주제가 너무 다르다) 지상파가 유일한 미디어로 기능하고, 이를 통해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활용되었던 시절은 과거의 유물이 된 셈이다.
여기서 경제학자는 글로벌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국가가 미국이라는 점을 짚는다. 대부분의 OTT 서비스와 주요 미디어 플랫폼이 미국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전 세계 인류는 넷플릭스와 디즈니,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료를 내며 꾸준하게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이렇게 미디어 소비자가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레거시 미디어(방송, 신문)에서 뉴미디어가 대세가 이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따른 이익을 주로 미국이 가져간다는 점은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미국의 OTT를 모두 차단한 중국만 이 흐름에서 비껴가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미국과 달러 패권, 여행 산업과 무슨 관계?
나아가, 미디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의존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얼마 전 발생한, 마이크로소프트(MS) 서버의 다운으로 인한 항공권 발권 대란이 상징적인 사례다. 이는 항공권을 발급해주는 여행사나 공항이 MS 서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러한 기술 의존도는 더욱 공고해졌고, 인공지능 서비스도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그리는 그림은 ‘플러그인’ 방식이다. 이 방식은 오픈AI와 같은 회사가 AI 기반의 큰 엔진을 제공하고, 한국에서 항공권 판매 서비스를 하고 싶은 기업이 있다면 이 엔진에 플러그인을 꽂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 엔진이 연산을 담당하고, 서비스 운영은 해당 기업이 맡게 된다. 그런데 이 플러그인 비즈니스의 사례로 등장한 분야가 ‘여행’이다.
앞으로 여행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도 변화하게 된다. 지금은 여러 사이트에서 여행 상품을 비교하지만, 앞으로는 구글과 같은 단순한 검색창에 “예산은 88만 원, 비행 시간은 7시간 이하”와 같은 조건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최적의 여행 상품을 추천해주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이미 미국의 여행 빅테크 사들은 이러한 방향으로 서비스를 서서히 바꾸는 중이다) 따라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기업은 인공지능 엔진을 이용하는 대가로 매달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분야가 미국 빅테크 기업에 종속되는 구조가 될 것이며 앞으로도 달러의 강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방송에서 소개된 경제학 관점의 전망이었다.
히치하이커’s Insight
히치하이커닷컴을 통해 생성형 인공지능 뉴스를 매주 짚는 이유는, 이 종속화의 속도와 방향을 파악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어차피 한국이나 미국이나 여행 기업은 자체 LLM 엔진을 구축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미국의 빅테크 엔진을 활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향후 플러그인을 이용할 산업 입장에서 중요한 건 결국 데이터의 양과 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립 어드바이저의 사례를 보면 그동안 수십 억 건의 리뷰를 지표화해온 지난 수십 년의 노력이 인공지능의 시대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용되는지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는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한 아웃바운드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해외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호텔 후기다. 그런데 한국인은 지난 10년간 어디에 리뷰를 쌓았나? 국내에서 호텔예약 점유율 90%을 오랫동안 차지해온 아고다와 익스피디아 계열(미국), 에어비앤비(미국), 구글 지도(미국)에 쌓아 왔다. 그리고 지금은 트립닷컴(씨트립, 중국)에 쌓고 있다. 지금 해외여행 산업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국내 기업들 중에 이러한 리뷰 시스템을 갖춘 플랫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여행산업이 기술 종속화와 플랫폼화에 집중할 수록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숙박, 패키지, 투어 등 전 분야)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질 거라고 본다. 또한 인공지능으로 재편될 검색 시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최적화를 하느냐에 따라, 입점사들에게는 이전에 없던 비즈니스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