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오랫동안 ‘경제적 효자’로 여겨져 왔습니다.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고, 개발을 촉진하며,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산업으로 묘사되어 왔죠. 그러나 이제는 ‘관광이 곧 지역 살리기’라는 이 공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폭발적으로 회복한 여행 수요는 많은 도시에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환경적 위기를 낳고 있습니다.
2025년 7월 26일 방송된 유튜브 뉴스공장 주말판 <탁현민의 더 뷰티플>에서는 『기후여행자』의 저자 임영신 작가가 출연해, 관광 개발과 대량 관광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으며 지속가능한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습니다. 👉🏻방송 바로 가기 히치하이커는 이 방송에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그동안 다소 지지부진했던 지속가능성과 여행산업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지 대한 신선한 시각과 대안을 소개합니다.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 누구에게 갈까?
관광은 세계 GDP의 10%, 일자리 10개 중 하나를 만든다는 수치로 포장됩니다. 그러나 임영신 작가는 “이윤은 기업에게, 폐해는 지역에게 남는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의 다수 지역은 관광 개발을 이유로 공항을 짓고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지만, 적자에 허덕이는 공항과 생태계 파괴가 고스란히 지역에 부담으로 남게 됩니다.
예컨대 강원 오색 케이블카 설치나 전국 지자체의 케이블카 요구는 국립공원이라는 보호구역을 개발 대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천억 단위의 공공 예산이 지역에 쓰이지 않고 민간 자본으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 설치된 41개의 케이블카 중 38개는 적자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방송에서는 공항과 케이블카의 예를 들었지만,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공사 또는 운영이 중단된 숙박 시설 문제도 심각한 양상입니다. 신안군 자은도 씨원 리조트와 관광펜션 등 대단위 관광 숙박사업이 여러가지 문제로 장기 표류하게 되면서,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자은도와 인근 해수욕장의 자연이 파괴된 자리에 이미 지어진 리조트가 제대로 운영도 안된 채로 수 년째 방치된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문제가 여기 뿐일까요?
바르셀로나·베니스가 단체 관광객 거부하는 이유
이미 오버 투어리즘에 시달리고 있는 관광 도시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대표적인 두 도시인 바르셀로나와 베니스는 일단 멈추기를 선언했습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2015년 시장에 당선된 주거운동가 아다 콜라우가 ‘도시는 시민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철학으로 신규 호텔 허가를 전면 중단했습니다. 이후 10년간 특정 지역의 관광 숙박시설 허가는 사실상 동결되었으며, 2028년까지 에어비앤비 없는 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광객 이용으로 시민들의 생활을 침범한 마을버스 노선은 구글 지도에서 삭제되었고, 인기 관광지인 구엘공원은 입장료를 인상하고 홍보를 중단했습니다. “답이 없을 땐 일단 멈추고 질문해야 한다”는 이 도시의 태도는 관광정책의 민주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한편 이탈리아 베니스는 크루즈 관광으로 인한 지역 공동화와 대기 오염 문제에 맞서 본섬 입항 금지를 시행했고, 이로 인해 대기질 순위가 세계 52위에서 4위로 급상승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Not welcome)”는 베니스 시민의 외침은, 관광이 지역 주민의 삶을 밀어내는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베니스 시민들이 왜 크루즈 기항 관광객을 밀어내냐고요? 대규모 관광객이 무리를 이루어 특정 지역을 짧게 방문하는 관광 행위는 그 도시의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탄소 배출만 늘립니다. 이러한 여행은 여행 기업들이 미리 섭외해 놓은 업체만 이용하고, 긴 체류와 지역 경제 소비도 없이 환경 오염만 시키고 떠나는 악성 관광객으로 분류됩니다. 크루즈 뿐 아니라 한국의 ‘패키지 여행’ 역시 옵션과 쇼핑으로 촘촘히 얽힌 업체들만 이용하고 지역 경제에는 별다른 소비를 하지 않고 떠나는 대량 관광에 속합니다. 제주도에 와서 중국 호텔, 중국 업체만 이용하는 중국 단체 관광객을 욕할 입장이 못되는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래서 방송 말미에 작가가 ‘너 아직도 패키지 여행 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 것입니다. 패키지 여행에 대한 논의는 이제 단순히 질 낮은 단체여행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기후적 차원의 선택으로도 이어져야 합니다.
한 달 살기 여행부터 인센티브 제도까지
‘지속가능한 여행’을 말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탄소 배출입니다. 여행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12%를 차지하며, 이 중 상당수가 항공 이동에서 발생합니다. 특히 한국처럼 육로가 끊겨 있어 항공 이동의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까지 비행기로 왕복 여행을 할 경우, 1인당 연간 탄소 허용량(약 4톤)의 절반 이상이 소진됩니다. 평소에 친환경 생활을 해도 단 한 번의 장거리 비행이 모든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여행을 포기해야 할까요? 임영신 작가는 “욕망을 억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을 바꾸자는 것”이라 말합니다. 예컨대 짧은 여행을 여러 번 가기보다, 장기 체류를 통해 한 지역에 머무르며 ‘지역민처럼 살아보는’ 여행이 탄소 감축에도 효과적이며 지역 경제에도 이롭습니다.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한 달 살기’ 여행이 실제로 지역에도 도움이 되는 기후여행 방식이라는 겁니다.
여행 서비스도 두 가지 소개되었는데요. 에어비앤비의 대안으로 나온 ‘페어비앤비’, 그리고 유럽에서 버스와 기차 노선을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는 앱 오미오(omio)를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오미오는 제가 예전에 유튜브에 한번 소개했는데, 지금까지 제 영상을 보고 가입하신 분들이 현재 누적 700여 분이 넘네요.
개인 차원의 문제를 살펴봤다면,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사회 제도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데요. 여행자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친환경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제가 히치하이커에서도 일찌감치 소개했던 친환경 인센티브 제도 ‘코펜페이(CopenPay)’입니다.
코펜하겐 여행 중에 크게 어렵지 않은 친환경적인 활동, 예를 들어 텀블러 사용이나 자전거 이동을 하면 무료 도시락 제공, 카약 등 액티비티 상품 무료 제공 등 각종 관광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비건 카페, 제로웨이스트 매장 등을 담은 지도를 배포하는데, 작년 시범 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부터는 참여 업체도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네요. 이렇듯 여행자의 경험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은 관광 총량제의 한 형태이자 참여자에게 불편함보다 보상을 주는 스마트한 제도입니다.

마치며 – 파괴를 목격했을 때, 우리는 기후여행자가 된다
지금까지의 지속가능한 여행법은 주로 탄소 줄이기 실천법을 나열하는 선에 그쳤습니다. 저도 저서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를 쓰면서 총 5장 중에 한 장 전체를 지속가능한 여행에 할애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기후위기의 위험성을 알린다고 해서 인간의 여행 욕망을 절대로 누를 수 없다‘는 회의감이 늘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후여행자라는 개념은 내가 여행으로 본 아름다움에 대한 책임감, 즉 ‘아름다움을 목격한 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더라고요. 이 부분은 제가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시각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임 작가는 제주도, 설악산, 우도, 통영 등 실제 사례를 통해 “관광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파괴를 목격한 여행자들“이야말로 지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관광정책도 성장 일변도의 산업 관점에서 벗어나,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이 누구에게로 가는가’, ‘관광과 지역민의 삶은 공존할 수 있는가’를 묻는 윤리적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특히 세계 8위 수준의 여행 소비 국가인 한국은 단지 내수 시장에서 벌어지는 관광 개발 문제 뿐 아니라, 아웃바운드 여행 행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대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