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소멸과 지방 도시의 쇠퇴라는 거대한 시대적 담론 앞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하드웨어’ 중심의 해법을 모색해왔다. 특히 출렁다리와 케이블카를 중심으로 한 관광 단지를 (모두가 똑같이) 조성하며 거대한 랜드마크를 세우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방한 외래관광객 3천만 명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여행의 패러다임은 공간에서 사람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이러한 과거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최근 ‘마을 호텔’이라는 개념이 지역 재생의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을 호텔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수선하는 도시재생의 일환을 넘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숙박 시설로 재정의하고 지역 사회의 경제 생태계를 재구성하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자 생존 전략이다. 호텔 전문 도서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의 저자이자 호텔 트렌드 전문가로서, 마을 호텔을 둘러싼 국내 최신 동향을 정리하면서 향후 지역 관광을 위한 전망을 제안해 본다. (글/ 히치하이커 대표 김다영)
한국형 마을 호텔, 어디까지 왔을까?
최근 목포 MBC의 신규 기획 프로그램 ‘세젤스’ 1회에서 조명된 목포 ‘괜찮아마을’의 사례는 한국형 마을 호텔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목포 원도심에서 9년째 거주하며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홍동우 대표는 마을 호텔을 ‘수평으로 누워 있는 호텔’이라 정의한다. 대개 5성급 호텔이 수백 개의 객실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구조라면, 마을 호텔은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숙소들과 상점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엮어내는 방식이다.
목포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내에 이미 80여 개의 작은 숙소가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한 괜찮아 마을은, 이를 개별적인 점으로 두지 않고 선으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호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자본의 논리로 세워진 거대 시설이 따라올 수 없는 ‘이야기’와 ‘역사’라는 강력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80명의 운영자가 가진 도합 400년 이상의 삶의 궤적이 곧 호텔의 서비스이자 콘텐츠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마을 호텔의 개념은 이미 세계적으로 그 유효성이 입증된 모델이다. 이탈리아의 지진으로 황폐해진 마을을 살리기 위해 지안카를로 달라라 교수가 제안한 ‘알베르고 디푸조(Albergo Diffuso)’는 현재 유럽 전역에 150여 개의 브랜드를 전파하며 지속 가능한 관광의 표본이 되었다. 주민 협동조합이 운영 주체가 되어 마을의 빈집을 객실로 활용하고, 마을 식당이 조식당이 되며, 골목길이 복도가 되는 이 모델은 2022년 기준 32개 객실로 연간 15,000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 역시 빈집과 빈 점포를 활용한 ‘로컬 크리에이티브 몰’ 유형으로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오사카의 세카이 호텔은 기모노 가게, 과자가게 등 옛 간판을 그대로 둔 채 내부를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하여 투숙객이 지역 주민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게 만든다. 특히 별도의 부대시설을 만들지 않고 인근 목욕탕과 식당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숙박 수요가 골목 상권으로 직접 흐르도록 설계한 점은 국내 지자체가 본받아야 할 핵심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한국에서도 선구적인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강원도 정선의 ‘마을호텔 18번가’는 폐광촌의 빈집을 주민들이 직접 개조하여 객실을 만들고, 마을 상점들과 연대하여 투숙객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주민 주도형 연대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전남 순천의 ‘마을호텔 어여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한옥 빈집을 숙소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가족 단위 관광객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최근 전북 김제시는 2027년까지 일제 강점기 근대 문화유산이 밀집한 죽산면 일대를 마을 호텔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양조장, 제과점 등 지역 청년들이 창업한 자원을 호텔의 부대시설처럼 연결하고 공유 자전거 스테이션을 구축하는 등의 시도는 마을 호텔이 단순한 숙박업을 넘어 지역 전체의 브랜딩 전략임을 시사한다.
한편 울주군 등억온천단지는 기존의 ‘모텔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마을 호텔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하드웨어의 물리적 변화보다는 서비스와 브랜드 로고, 홍보 전략이라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에 박차를 가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 마을 호텔인가?
관광 시장의 데이터는 그 해답을 명확히 제시한다. 국내 관광 시장 규모는 연간 약 60조 원에 달하며, 그중 숙박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의 43%로 압도적이다. 즉, 사람이 지역에 머물게 하는 숙박시설의 혁신 없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는 요원하다는 뜻이다.
특히 MZ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여행자들은 표준화된 대형 호텔의 서비스보다 운영자의 철학이 담긴 게스트하우스나 지역의 색깔이 묻어나는 독특한 공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들이 7만 원짜리 호텔 대신 10만 원짜리 마을 숙소를 선택하는 이유는 시설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관계’와 ‘가치’ 때문이다.
이는 3천만 외래관광객 시대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서울의 빌딩 숲이 아니라, 목포의 골목길, 김제의 들녘, 순천의 정원과 같이 한국적인 정서가 살아있는 ‘진짜 한국’의 모습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마을 호텔 조성을 위해서는 단순한 공간의 리모델링을 넘어 몇 가지 필수적인 준비 사항이 요구된다.
첫째, 민간의 비즈니스 논리와 공공의 행정 지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공공 보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민간이 수익 모델을 전제로 직접 임대와 운영을 책임지는 방식이 지속 가능성이 높다. 무인양품(MUJI)이나 스노우피크와 같은 강력한 팬덤을 가진 브랜드가 지역의 폐교나 공원을 활용해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은 지자체가 주목해야 할 협업 모델이다.
둘째, ‘사람’에 대한 투자다. 마을 호텔의 본질은 시설이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주민과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운영에 참여하고 수익을 나누는 구조를 마련함으로써 지역 사회 내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주민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관광 관련 교육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셋째, 체계적인 마케팅과 브랜딩이다. 개별 숙소들이 흩어져 있더라도 투숙객이 느끼는 서비스의 질은 통일되어야 하며, 예약과 결제 시스템의 통합, 그리고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브랜드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한다.
마치며
결론적으로 마을 호텔은 지역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관광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현대적이고도 인문학적인 해법이다. 이는 쇠퇴한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들에게는 창업의 기회를 제공하며, 방문객에게는 잊지 못할 삶의 체험을 선사한다. ‘지역 관광 트렌드와 마케팅 전략’이라는 주제로 전국 각지의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강의하며 현장에서 느낀 가장 큰 갈증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무적 가이드였다.
마을 호텔은 단순한 숙박 시설의 집합체가 아니라, 지역의 자원을 재배치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고도의 기획력이 필요한 분야다. 지역의 특성을 분석하고, 유휴 공간의 용도를 재정의하며,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주민사업체를 위한 체계적인 전문 교육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실제로 관광 두레를 포함해 지역의 관광사업자 및 비관광 사업자 분들은 상품 기획 및 판매를 위한 절실하게 교육을 필요로 한다고 피드백을 주셨다.
목포의 괜찮아마을이 보여준 가능성, 일본과 이탈리아가 증명한 성과들을 우리 지역의 토양에 맞게 이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건물을 세우는 대신 사람을 세우고, 벽을 치는 대신 길을 여는 마을 호텔의 철학이 방한 관광객 3천만 명 시대의 든든한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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