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럭셔리 그룹이 7월 1일 공개한 ‘2025 더 인텐셔널 트래블러(The Intentional Traveler)’ 리포트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고액 자산 여행자들은 의도적이고 의미 있는 여행 경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호주, 싱가포르, 인도,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 태국 등 7개국 최상위 10% 부유층 1,75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는 럭셔리 여행의 패러다임 변화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72%의 여행자가 내년 럭셔리 여행 지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한 가운데, 93%가 개인화된 경험을 필수 요소로 꼽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여행 시장의 회복을 넘어,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 변화를 의미합니다. 평균 숙박 기간도 2024년 3박에서 2025년 4박으로 늘어나며, 여행자들이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히치하이커는 44페이지에 달하는 리포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특히 한국 럭셔리 여행시장이 가진 독특한 지점에 초점을 맞춰 현 시장이 가진 문제점을 짚어보았습니다.
웰니스 중심의 여행 & 자연과의 연결 중시
현대 럭셔리 여행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웰니스가 핵심 요소로 부상한 것입니다. 2025년 조사에서 90%의 여행자가 웰니스 제공을 예약 결정의 주요 요소로 꼽았는데, 이는 2024년 80%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웰니스 여행은 더 이상 단순한 스파 치료나 요가 리트리트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전체적인 라이프스타일 추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4분의 1에 해당하는 26%의 여행자가 향후 12개월 내 웰니스 또는 스파 리트리트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의 67%가 아시아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아시아의 전통적인 웰니스 문화와 현대적 럭셔리 시설이 결합된 독특한 매력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치유 문화가 발달된 나라일수록 스파 경험을 원하는 럭셔리 여행자 비율이 높다는 건데요. 인도네시아의 여행자는 무려 98%가 스파 경험을 희망했는데, 한국인은 50%만 응답했습니다.
또한 자연 중심의 여행이 럭셔리 관광의 새로운 트렌드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원 휴가를 계획하는 여행자의 비율이 2024년 19%에서 2025년 28%로 크게 증가했으며, 30%의 여행자가 야생 동물 중심의 사파리를 예약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도시를 벗어나려는 욕구가 아니라, 자연과의 깊은 연결을 통해 진정한 휴식과 영감을 얻으려는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와이너리 리트리트부터 리모트 롯지까지, 자연 몰입 경험이 럭셔리 여행 선호도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 생활에 지친 부유층이 자연 속에서 진정한 평온과 재충전을 찾으려는 욕구를 반영합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자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럭셔리 여행에서도 지속가능성과 환경 친화적인 경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활동적인 낮 + 사색적인 저녁
럭셔리 여행자들의 일정 패턴도 흥미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활동으로 가득 찬 일정을 선호하는 비율이 2024년 48%에서 2025년 61%로 급증했습니다. 럭셔리 여행자들은 더 이상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낮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합니다. 새로운 요리 맛을 발견하고, 이전에 가보지 않은 목적지를 탐험하며, 개인화된 몰입형 일정을 즐기는 것이 주요 동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저녁 시간의 패턴은 정반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호텔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자의 비율이 19%에서 28%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균형과 회복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고강도의 활동적인 낮 시간 이후에는 객실에서의 휴식, 웰니스 리트리트, 품격 있는 식사를 통해 에너지를 재충전하려는 의도적인 선택으로 해석됩니다.
익숙함으로의 회귀와 감정적 연결
놀랍게도 2025년 아시아의 고액 자산 여행자들은 새로운 목적지 개척보다는 익숙한 장소로 돌아가는 강력한 트렌드를 보이고 있습니다. 93%의 여행자가 사랑하는 목적지로 돌아가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89%는 진정한 연결감을 느끼는 장소를 재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반복 방문이 아니라, 더 깊이 있는 경험을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시 방문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럭셔리 여행이 더 이상 단순히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깊이와 의미를 키우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행자들은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것보다는 이미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한 장소에서 더 풍부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행의 양적 확장에서 질적 심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합니다.
특히 개인화의 중요성이 극대화되어 93%의 여행자가 여행의 모든 세부 사항이 맞춤형이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서비스의 질을 넘어,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완벽히 반영한 맞춤형 경험에 대한 강력한 수요를 의미합니다. 여행자들은 이제 여행의 모든 세부 사항을 사전에 계획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62%가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가장 급성장하는 럭셔리 시장 또한 ‘인도네시아’로 분석됩니다. 향후 예정하고 있는 여행 횟수도 많고 국내/국외 여행 모두 가장 활발하게 많이 하는 나라로 밝혀졌습니다. 인구 3억의 정말 큰 시장인 만큼, 향후 이들의 여행 패턴도 눈여겨 봐야겠네요. 반면에 가장 약화되고 있는 시장은 일본으로 나타났습니다. 국외보다는 국내여행의 비중이 계속 더 높아지고 있네요.
🇰🇷 한국 시장, 조사국 중 유난히 다른 점이 많았다
이 리포트에 제가 주목한 이유는 7개국을 국가별로 분석한 자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시장 분석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유럽(60%)이 가장 기대되는 여행 지역으로 꼽혔다는 겁니다. 오직 한국만이 이렇게 응답했고, 다른 국가들은 다 아태 지역을 희망하는 걸로 나타났거든요. 유럽 다음으로는 남미(43%), 북미(38%), 아시아태평양(37%)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한국 럭셔리 소비자는 ‘기존에 유명하고 정보 많은 곳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조사 국가 중 가장 높았습니다. (위 그래프 참고) 다시 말해 ‘덜 유명한데 앞으로 알려지기 전에 먼저 가보겠다’는 모험적 시도의 비중이 일본보다도 낮은 최하위 27%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재방문보다는 가급적 기존에 방문하지 않은(그러나 유명한) 여행지에 돈을 쓰겠다는 겁니다.
한국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개인적 단절과 일상 탈출의 강한 욕구, 하지만 낯선 음식은 싫다는 겁니다. 49%가 일상 탈출을 핵심 럭셔리 경험으로 꼽았으며, 48%가 B&B(독채) 숙박을 선호하는 반면 올인클루시브 패키지는 20%만이 선호했습니다. 소위 럭셔리 여행으로 분류되는 크루즈에 대한 한국인 이용자들의 리뷰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음식’ 문제인데요. 실제로 리포트에는 ‘익숙한 (자국의) 음식을 여행 중에도 먹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54%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웰니스는 한국 고액자산가들에게 중요하긴 하지만 다소 미묘한 결과가 나왔는데요. 웰니스 활동을 택할 때 40%가 사내 건강관리 전문가와 건강한 식단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스파 트리트먼트 예약 희망율은 전체 응답 국가 중에 매우 낮은 절반으로 나왔습니다. 즉 한국인에게 웰니스는 스파 트리트먼트나 요가 리트리트 같은 정신적 치유보다는 오히려 신체적 ‘치료’에 가까운 의학적 서포트에 가까운 개념으로 다가가는게 아닐까 하네요.
마치며
메리어트의 2025 리포트에 따르면 아시아의 최상위 여행 소비층은 획일적인 럭셔리 서비스에서 벗어나 개인의 가치관과 열망을 완벽히 반영한 맞춤형 경험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한국 시장은 다른 주변 아시아 시장과는 또 다른, 굉장히 특이한 니즈가 많이 감지됩니다. 그런데 이 섬세하고 복잡한 니즈에 대응할 수 있는 국내 아웃바운드 여행업계의 맞춤형 시스템과 서비스는 거의 부재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유럽 + 비즈니스 항공 + 크루즈를 묶어 수 천만원 패키지로 판매하는 럭셔리 여행상품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게 현실인데요. 어쩌면 진짜 럭셔리 여행을 담은 숙소와 투어는 거의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조차 않고, 이 모든 정보를 모두 컨트롤할 전문가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맞춤형 여행사를 한다는 업체들도 실제 여행과 호텔 분야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는게 아니라 단순 컨시어지와 예약 대행 정도만 해결해주는 신생 업체가 워낙 많아서, 진짜 전문 업체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럭셔리 여행 소비자의 93%가 개인화를 필수 요소로 꼽는 상황에서, 한국의 여행업계는 변화하는 수요에 맞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서비스 개발이 시급합니다. 단순히 가격만 비싼 여행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개인화된 의미 있는 경험을 창조하고 조직할 수 있는 역량이 럭셔리 여행업계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