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주도하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는 럭셔리 여행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평소에는 5천원짜리 커피도 따져보고 사는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지만, 희소성 높은 프리미엄 경험과 숙박 시설에는 수 백만원의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이 이들의 경험 소비 행태다.
클룩(Klook)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의 밀레니얼 4명 중 1명은 다음 휴가에 3,000달러(약 400만원) 이상을 지출할 의향이 있다. 이는 아시아 전체의 중위 임금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Z세대도 이에 뒤쳐지지 않는데, 5명 중 1명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여행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는 중국, 홍콩, 한국, 싱가포르로 나타났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합쳐서 전 세계 인구의 43%를 차지하며,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곧 최고 소득을 축적하는 시기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들 세대는 이전 세대로부터 수조 달러의 부를 이전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현재 인/아웃바운드를 불문하고 럭셔리 여행산업의 발전 방향이나 콘텐츠는 소비자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히치하이커닷컴은 MZ세대가 원하는 프리미엄 경험의 주요 특징을 짚어보고, 글로벌 호텔 브랜드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프리미엄 여행 선호, 그 이면에 어떤 심리가 있을까?
MZ세대는 여행 경험을 인생의 중요한 순간으로 여긴다.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찾는 여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부킹닷컴 2024년 여행 트렌드의 1번 항목이 바로 ‘알터-에고(Alter – Ego)’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출현이다. 응답자의 3분의 2(68%) 이상이 휴가 중의 자신의 모습을 최고의 모습(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여긴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현실 속에서 느낀 다양한 스트레스와 억압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나’를 연출하기 위해 여행하고 싶다는 것이며, 심지어 42%는 이 알터 에고를 위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신이 평소에 몰던 차보다 더 비싼 차종을 렌트하고 싶다는 것이다. 여행 소비자의 57%는 여행 중에 ‘주인공의 에너지’를 느끼고, 여행을 통해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답했다.
따라서, 지금의 세대가 추구하는 럭셔리 여행은 단순히 과시적인 여행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최고의 나를 연출해 주는 모든 경험의 총합이 ‘몰입적’ 또는 ‘체험적’ 여행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여행은 많은 장소를 짧은 시간에 방문하는 기존의 여행 상품으로는 이뤄낼 수가 없다. 한 장소에 더 오래 머물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경험해야만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트렌드는 이들이 수집(획득)하려는 가장 중요한 여행의 전리품, 인생샷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패키지 여행사에서는 로컬 체험이나 미식, 셀럽이나 테마만 집어넣으면 단체 여행이라는 형태가 젊은 층에게 언젠가는 먹힐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럭셔리 여행 소비자에게 단체여행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논리와도 같다. 왜냐하면 이들이 원하는 전리품으로서의 사진을 위해서는 정확하게 본인이 원하는 숙박 시설과 포토슛 장소들이 대거 필요하고, 그에 맞는 의상 연출과 준비작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자유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내 옆에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일행으로 함께 찍혀나오는 사진은 젊은 세대에게는 그야말로 휴지통 행 사진이나 마찬가지다. 광활한 여행지를 ‘나 혼자’ 즐기는 나의 모습이 바로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많은 사진 보정 앱이 뒷 배경의 사람들을 지워주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또한 파파라치 샷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샷이 아니면 소셜미디어 공유용 사진으로 사용할 수 없다. 차별화된 시설과 희소한 체험을 누리는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각도로 담을 수 없는 여행은, 아무리 그 코스가 훌륭하더라도 지불 가치가 없는 여행이다.
‘모든 것에 질문하는’ 젊은 여행자의 높은 기대치, 그러나
현재 밀레니얼 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세대로, 25%가 중등 교육 이상을 받았다. 이들에게 여행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경향도 보인다. 아만 인도네시아의 마케팅 이사는 “밀레니얼은 모든 것에 대해 질문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여행기업의 윤리성과 지속가능성, 음식의 출처 등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고 가족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를 배우는 등 진정성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세대는 기존의 여행산업이 가진 불합리성을 절대로 참거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팬데믹 직후 수많은 언론매체가 ‘MZ세대가 패키지 시장으로 진입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이용한 여행사의 수준 낮은 여행 운용 행태를 고발하는 리뷰도 엄청나게 급증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 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자유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편의성 때문에 상품을 선택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은 시니어 세대가 ‘관례니까 이해하자’며 넘어갔던 불합리를 너그러이 이해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이들에게 여행상품은 ‘가성비’와 ‘가심비’를 엄격하게 따져 결제하는, 꽤나 비싼 상품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행사에서 1000원에 판다고 올려놔서 1000원짜리 물건 샀는데 갑자기 “이거 만원만 더 내면 내가 더 좋은거 줄게”이따구로 나오는게 문제라고요. 그럴거면 첨부터 가격 설정을 만원으로 하던가! 만원으로 안 팔거면 팔질 말던가 해야지 1000원이라 써놓고 뭔 난리인지? 영상에서 잘 말했듯 이건 구조적 문제고, 기업의 문제인데 이걸 왜 고객한테 잘못을 전가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됨. (히치하이커TV ‘다낭 패키지 논쟁으로 본, 저가 패키지 여행 문제점 총정리‘ 댓글 중)
여행사 상품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상품 약관 검토와 소셜 여론 주도는 물론 법적 분쟁도 주저하지 않는 스마트한 소비자를 상대하기에, ‘관행’만을 내세우는 국내 여행 시장은 다음 단계인 럭셔리 시장으로 넘어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역량에 머물러 있다. 프리미엄 여행에 이들이 원하는 기대치는 대중화된 상품에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들이 상품보다는 개별 예약을 추구하는 심리 중 하나도 이러한 맥락을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 호텔 기업의 대응 – 아만과 하얏트, 원앤온리
스마트한 젊은 세대의 요구에 대응하는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최신 전략이 심상치가 않다. 숙박이 아닌 통합적인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럭셔리를 넘어 하이엔드 브랜드에 속하는 아만(Aman)은 과거에는 상위 1%, CEO와 억만장자만을 타겟으로 마케팅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경험을 탐구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젊은 세대를 타겟으로 전략을 바꿨다. 실제로 아만은 팬데믹 이전까지는 일반 OTA에는 등록조차 하지 않아 럭셔리 여행 에이전시 대행으로만 예약을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트립닷컴에서도 쉽게 예약할 수 있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체험 프로그램을 대거 늘리고 있는 아만으로 인도네시아의 아만 3곳을 들 수 있다. 자바의 아만지워(예약 바로 가기)에서는 상주 인류학자가 자바 토착 음식의 역사에 대한 세션을 진행하고, 발리 동부의 아만킬라(예약 바로 가기)에서는 발리를 통치했던 카랑아셈 왕가에서 영감을 받은 식사 경험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이 경험은 궁전 투어로 시작해 고인이 된 왕의 좋아하는 메뉴와 식사 의식에서 영감을 받은 저녁 식사로 이어진다. 발리의 아만다리(예약 바로 가기)에서는 셰프와 함께 식재료 산지를 방문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효과를 보고 있어, 2023년 기준 인도네시아에 소재한 아만 3개 호텔에 투숙한 고객의 무려 3분의 1이 28-36세 사이로 알려졌다. (출처 뉴스)
하얏트 호텔 그룹은 2024년 5월, 일본에서 럭셔리 온천 료칸 브랜드 아토나(Atona)를 론칭해 오는 2026년까지 일본 전역에 오픈한다고 발표했다. (보도자료) ‘나와 너’를 의미하는 아토나는 일본의 전통과 현대적인 디자인을 결합한 모던 료칸으로, 디자인 디렉터 켄야 하라와 건축가 코지마 신야 등이 참여하여 지역 공예 문화와 커뮤니티를 중시한 공간을 설계한다고 밝혔다. 즉 기존의 전통 료칸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지금 시대의 료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한 현지 문화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고 지역의 계절 재료를 사용하는 레스토랑과 바를 포함한 ‘스몰 럭셔리’ 컨셉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보다 젊은 층을 겨냥한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하얏트는 최근 라이프스타일과 웰니스 지향적인 부티크 호텔과 리조트를 인수하며 서비스를 다각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웰니스 테마를 모든 호텔에 도입하는 ‘비 모어 히어 Be More Here’ 캠페인을 시작했다.
럭셔리 호텔 브랜드인 원앤온리의 말레이시아 지점, 원앤온리 데사루 코스트(바로 가기) 역시 맞춤형 일정, 문화 탐방, 웰니스 리트릿, 모험 활동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점에 주목해 관련 서비스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이 리조트의 밀레니얼과 Z세대 고객 비율은 2022년 20%에서 2024년에는 무려 60%로 증가했다. 이에 맞춰 원앤온리 데사루 코스트는 최근 빅토리아 베컴과 킴 카다시안 등 유명 셀럽이 추천한 스킨케어 브랜드인 아우구스티누스 바더와 콜라보하여 스파를 론칭했다.
최근 ‘인클루시브’ 서비스를 늘려가는 호텔 체인들의 흐름을 보면, 굳이 별도의 여행상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숙박 시설에서 일종의 ‘액티비티’를 통합적으로 제공한다는 측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항공과 호텔을 직접 선택하는 대다수 개별 여행자의 니즈를 잘 읽어낸 변화로 볼 수 있다.
마치며
결론적으로, 밀레니얼과 Z세대의 새로운 여행 트렌드는 전 세계의 럭셔리 여행 시장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개인화되고 몰입적인 경험, 그리고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가진 이들의 여행 행태는 여행 회사들로 하여금 더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는 단순한 휴가를 넘어 자아 발견과 개인적 성장의 기회로 여행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반영한다. 앞으로 국내 여행 업계가 이러한 변화에 구체적인 대응과 진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