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는 예전부터 전 세계 여행자들이 꿈꾸는 천국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몇 년간 그 모습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발리의 자연미와 독특한 문화가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였고, 이는 급속히 확장되는 부동산 개발과 결합하면서 섬의 풍경과 환경을 크게 변형시키고 있다.
지난 2024년 9월 호주 ABC-TV의 시사 프로그램 ‘포레인 커레스펜던트 Foreign Correspondent’는 에 이 심각한 현황을 취재해 다큐로 공개했다. 히치하이커닷컴은 이 다큐에 소개된 내용 중에서,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은 몇 가지 심각한 사례를 좀더 조사해서 소개한다.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 부동산 개발 붐을 일으키다
발리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전 세계의 디지털 노마드가 몰려드는 중심지가 되어가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단기적인 호텔 숙박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빌라 거주로 선호도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자 이러한 수요를 반영한 수천 채의 빌라가 발리 곳곳에 새롭게 들어서고 있으며, 그로 인한 환경 파괴와 문화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발리의 부동산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고 있으며, 개발자들은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26세의 프랑스인 부동산 중개인 아서 리차드는 발리에서 6년째 활동 중이며, 발리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동산 회사인 ‘알렉스 빌라’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발리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발리는 아시아의 이비자처럼,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며, “우리는 모든 것을 인스타그램에 맞춰 설계한다”고 설명한다. 현재 발리에서 1베드룸 타운하우스의 가격은 약 20만 달러(약 2억 6천만 원)에 달하지만, 이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이와 같은 발리의 개발 붐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부동산 개발자인 세르게이 수넨은 발리에서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인 ‘누아누’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50헥타르 규모의 땅에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시설과 함께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세르게이는 이 프로젝트에 약 3억 5천만에서 4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며, 이 프로젝트는 발리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발리의 급속한 개발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울루와투 해안에 있는 116객실 규모의 리조트 개발은 석회암 절벽을 붕괴시키는 큰 환경 파괴를 일으켰으며, 이러한 개발은 종종 물과 전기가 부족한 지역에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발리의 자연미를 대표하는 지역들, 예를 들어 우붓의 논밭 지역은 대규모 주택 개발의 타깃이 되고 있다. 해마다 최소 1,000헥타르의 우붓 농지가 빌라와 호텔로 변하고 있다. 이는 농민들이 생계를 위해 땅을 팔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는 발리의 전통적인 농업 문화와 지역 사회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어렵게 회복된 발리의 현지 경제가 다시금 파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발리의 부동산 시장은 외국인들의 장기 임대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들은 직접 토지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중간 거래업체를 매개로 하여 토지를 구매한 뒤 30~50년간 장기 임대 계약을 맺고 농지를 비즈니스 용도로 전환해 부동산 개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은 단기적인 이익에 관심이 있지, 이 땅이 영구적으로 파괴되는 점에는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겨냥한 무분별한 숙소 개발 실태
발리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을 유도하는 인스타그램 열풍이다. 유명한 클링킹 비치와 같은 명소는 인스타그램 핫스팟으로 유명해졌으며, 그로 인해 방문객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마을은 이곳에 중국 회사와 협력하여 무려 182미터 높이의 엘리베이터와 전망대를 설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개발이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자연과 환경 보호의 측면에서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현재 일어나는 숙박 개발이 ‘인스타그래머블’에만 집중하면서 무리수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737 항공기 모양 빌라를 절벽에 세운 러시아 개발자의 프로젝트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스튜디오가 숙소를 직접 소개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었다.(위 영상) 절벽 위에 지어진 보잉737 모양의 빌라는 인스타그래머블했지만 발리의 지역적 특성이나 문화와는 연결점이 없는, 한 마디로 아무런 맥락이 없는 숙소다. 마치 거대한 보잉 팝업스토어처럼 보인다.
발리에서 활동하는 환경 운동가들은 이미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수 차례 캠페인을 벌였으며, 발리의 기존 주민들도 이러한 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발리에서 300년 넘게 이어진 농업을 하고 있는 한 농민은 땅을 팔라는 유혹을 받았지만, “내 땅을 팔고 싶지 않다”며 지역 개발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에 비해서 정부 당국의 대응은 아직 미비하다. 발리에는 건설 규제와 녹지 보호 구역이 있지만, 이러한 규제는 때때로 개발자들과의 협상에 의해 유연하게 적용되고 있다. 때로는 개발자가 허가를 받지 않고 건축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으며, 지역 정부가 이를 추후 승인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마치며
발리는 이제 더 이상 그 옛날의 천국과 같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대규모 개발과 관광객들의 몰려드는 영향으로 발리는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과제는 어떻게 자연과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경제적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발리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여행자의 인식과 여행 행태도 이제는 정말 변화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저 비행기 빌라를 보고 ‘가고 싶다’라는 마음보다는 ‘파괴적이다’라는 인식이 들도록 여행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 여행자가 현지 문화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좀더 깊이 숙고하면서 숙소와 액티비티를 굉장히 선별적으로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 히치하이커닷컴 역시 지역에 기여하고 지역 문화와 밀착된 숙소를 최대한 선별해 여행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그러한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과 장소를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