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가 ‘트래블 모드’를 만든 이유는?
여행과 리테일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자라의 행보가 던지는 메시지
스페인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자라(ZARA)가 여행산업에 조용히 발을 들였습니다. 2025년 5월, 자라는 자사 모바일 앱에 ‘트래블 모드(Travel Mode)’라는 기능을 도입하며, 기존의 리테일 경계를 넘어 여행자 일상 속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런던, 밀라노, 도쿄 등 여행객이 몰리는 도시를 시작으로 해당 기능은 현재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서 활성화됐으며 조만간 프랑스, 스페인, 터키 등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이 기능은 단순한 여행자 대상 마케팅을 넘어, 여행이라는 ‘소비 집중의 순간’에 브랜드가 어떻게 스며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시도입니다. 히치하이커는 자라의 ‘트래블 모드’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리고 이 기능이 여행업계에 던지는 함의를 분석했습니다.

트래블 모드는 무엇인가?
트래블 모드는 일종의 ‘지오로컬(geolocal) 리테일 경험’입니다. 앱 내에서 트래블 모드를 활성화하면, 사용자는 현재 위치 기반으로 현지에서 구매 가능한 제품을 확인할 수 있으며,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소로 직접 배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역별 가이드 콘텐츠, 맛집과 박물관, SNS 핫플레이스 추천 등도 함께 제공되어, 패션 중심의 앱이 일종의 여행 동반자 역할까지 수행하게 됩니다. 실제로 도쿄 시티 가이드를 들어가서 봤는데 상당히 감도 높게 잘 셀렉되어 있더라고요.
트래블 모드의 핵심 기능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사용자의 위치를 기반으로 현지에서 구매 가능한 자라의 상품을 큐레이션하여 보여주고, 숙소까지 배송해주는 ‘여행자 맞춤 배송 서비스(ship-to-hotel)’입니다. 둘째, 해당 지역에서 즐길 수 있는 로컬 콘텐츠인 맛집, 전시, 명소 등을 추천하는 도시 가이드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부 도시에서는 앱 내에서 디지털 엽서를 보내는 기능도 제공됩니다.
이 모든 서비스는 기존의 자라 플랫폼 위에서 작동합니다. 아직은 별도의 여행 예약 시스템이나 제휴 호텔, 확장된 상품군이 추가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라가 이미 보유한 물류, 데이터, 매장 네트워크, 모바일 사용자 경험을 ‘여행 중’이라는 고객 여정의 특정 구간에 맞춰 재배치한 결과물입니다. 이는 무언가 새롭게 구축했다기보다는, 글로벌 리테일 브랜드라는 기존의 자산을 날카롭게 재해석한 실행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자라의 행보가 여행산업에 던지는 신호
자라의 트래블 모드는 단순히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실험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 여행산업이 놓치고 있는 틈새를 정확히 포착한 민첩한 전략입니다. 이 기능이 여행산업에 던지는 함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여행 경험의 중심이 단순한 예약과 이동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비행기표나 호텔 예약만으로 여행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여행 중에도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 ‘지금 이 도시에 어떤 재미가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자라는 이 ‘현재형 욕망’에 정확히 응답했습니다. 현지 쇼핑의 번거로움을 줄이고, 동시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빠르게 제공함으로써, 소비자 경험을 더욱 감각적으로 설계한 것입니다.
둘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여행업의 일부 역할을 흡수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기존 여행사는 예약 중심의 사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자라와 같은 브랜드는 고객의 ‘여행 중 기분 좋은 순간’을 선점하려 합니다. 배송, 콘텐츠, 지역 큐레이션까지 연결해 주면서 여행의 전통적 플레이어가 담당하던 영역을 자연스럽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이미 여러 차례 히치하이커에서 강조한 바 있습니다.
셋째, 여행산업은 더 이상 독립된 산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라는 여행산업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행 중 소비자의 니즈인 제한된 수하물, 현지 구매 욕구, 빠른 소비 전환을 여행업계보다 먼저 파악하고 이를 실행 가능한 상품과 서비스로 전환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디지털 기술, 고객 데이터, 로컬 감각이 결합된 타 산업 브랜드가 얼마든지 여행 산업의 일부를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합니다.
마치며: 여행이 된 브랜드, 브랜드가 된 여행
‘트래블 모드’는 결국 자라를 넘어 패션업계의 야심과 향후 방향을 잘 드러냅니다. 더 이상 옷만 파는 브랜드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개입하고, 특히 여행이라는 감성 소비의 순간에 깊이 침투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동시에 이 시도는 여행산업 관계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고객은 여행 중 무엇을 원하는가?”, “지금 그 순간을 당신이 제공하고 있는가?”
지금의 여행은 플랫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예약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자라의 행보는 브랜드가 고객의 여정에 언제, 어떻게 등장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행사는 다시,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업임을 되새겨야 할 시점입니다. 패션 브랜드가 먼저 보여주는 변화에, 이제 여행업계의 응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