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이 8월 5일 자체 여행 플랫폼 ‘비아신세계’를 론칭한다. 그런데 첫 상품으로 선보인 정희원 박사와 함께하는 2,900만 원짜리 ‘저속노화 그리스 여행’은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히치하이커는 최근 주목하고 있는 노블 투어리즘의 부상, 그리고 경험을 넘어 개인의 변화를 추구하는 트랜스포머티브 경제의 등장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여행사업 진출이 의미하는 바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 보았다.
유통업계가 모두 탐내는, 여행산업
신세계백화점의 비아신세계는 ‘배움과 철학을 얻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여정’을 표방한다. 마스터피스와 오리진 두 등급, 그리고 4가지 테마로 구성된 이 플랫폼은 테마와 전문가 동행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획상품을 내놓는다고 밝혔다. 아부다비 모터스포츠 관람에서 팀 전용 라운지 이용까지, 탐험가 제임스 후퍼와 함께하는 북극 탐사, 영국 첼시 플라워쇼 금상 수상 작가와의 동행 등 단순한 관광이 아닌 ‘경험’을 파는 사업 모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행 전후를 아우르는 토털 서비스다. 프리뷰 아카데미에서의 사전 강의, 자택에서 공항까지의 고급 세단 서비스, 여행 후 레스토랑과 전시회 관람까지 백화점이 기존에 가진 자원을 동원한 전후 경험이 함께 제공된다. 이는 여행을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 연속된 경험으로 재정의하는 시도다. 또한 여행상품 구매 금액을 신세계 VIP 실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기존 백화점 고객과의 시너지를 노린 전략도 엿보인다.
그런데 유통업계가 여행사업에 관심을 가진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팬데믹 전부터 유통업계는 여행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특히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라, 한화와 같은 유통업체들은 자사 고객 풀을 활용해 어떻게든 여행 서비스로 확장하려고 매우 노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롯데나 CJ 등 애초부터 여행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도 많다. 따라서 이번 신세계의 진입은 여행사업 자체보다는 ‘하이엔드’, 즉 초고가 럭셔리 여행에만 포커스를 맞추었다는 지점에서만 들여다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하이엔드 시장은 현재 전통적 여행업계가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는 분야로 보고 있다.
‘저속노화 럭셔리 여행’을 둘러싼 계급화 논쟁
그런데, 신세계가 첫 시리즈로 선보인 정희원 박사와 함께하는 2,900만 원짜리 그리스 여행은 소셜미디어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는 정 교수가 사과문을 올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초고가 여행상품은 원래 기존 여행사에서도 판매하던 상품이었는데, 왜 유독 이번에는 논쟁의 대상이 되었을까?
비판론자들은 콜라보 햇반 출시, 유튜브 채널 등 청년층 중심으로 대중화되며 발전하던 ‘저속노화’가 계급화되어 상품화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부자들한테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저속노화 방법을 판다는 함의”가 있다는 지적이다. 저속노화라는 의학 이론이 경제력에 따라 접근성이 달라지게 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다.
반면 옹호론자들은 웰니스 여행 자체가 원래 고가이며, 기존의 럭셔리 여행상품에 저속노화 브랜드를 접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웰니스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사회 전반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된다는 ‘확산 이론’도 제시됐다.
이 논쟁의 핵심은 건강과 웰빙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달성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 자원이 필수적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저속노화라는 의학적 개념이 상품화되면서 불평등의 새로운 영역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관점이 충돌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에는 특수 계층만을 상대로 판매하던 노블 투어 상품이 신세계의 인스타그램 계정 등 대중에게 전면에 노출되면서 ‘위화감’을 불러일으킨 결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노블 투어는 무엇일까?
노블 투어리즘의 부상과 트랜스포머티브 경제의 등장
원래 여행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18세기 영국 귀족들의 ‘그랜드 투어’가 근대 여행의 출발점이라면, 20세기 후반부터는 저비용항공사와 온라인 예약 플랫폼의 등장으로 여행이 급속히 대중화됐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여행의 민주화가 완성된 시점에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행사 도움 없이도 누구나 쉽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되자 기존 여행산업의 먹거리가 사라지고 매스 투어리즘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면서, 최근 여행업계는 일제히 ‘프리미엄’에 눈을 돌리는 추세다.
이들의 타겟층인 고소득층은 “대규모 관광객들이 없는 곳”을 찾는 새로운 배타성을 추구하고 있다. 단순히 비싼 가격만이 아니라, 대중과 차별화된 경험과 여행지에 돈을 지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블 투어리즘의 본질이며, 비아신세계의 프리미엄 상품들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포착한 결과로 보인다.
책 ‘경험 경제’의 저자 조지프 파인 교수가 최근 제시한 ‘트랜스포메이션 경제’는 이러한 변화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다. 파인 교수는 경험 경제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며, 이제는 “더 나은 나를 찾거나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경험”으로 소비가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랜스포머티브 트래블은 의도적 준비, 몰입적 경험, 의미 있는 성찰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비아신세계의 프리뷰 아카데미와 여행 후 문화활동은 트랜스포머티브 트래블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닌 “심신의 건강과 영적인 충전”을 목표로 하는 웰니스 여행의 개념과도 일치한다. 이는 여행이 소비에서 투자로, 즐거움에서 성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며 – 모객형 여행의 한계
노블 투어리즘과 트랜스포머티브 경제라는 두 트렌드는 앞으로의 여행산업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또한 초상위 럭셔리 영역은 현재 전통적인 여행업계에서는 전문 역량을 가진 인재 풀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진입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다만 대기업이라고 해서 복잡한 여행소비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트랜스포머티브 트래블의 핵심은 단순히 비싼 가격이나 독점적 경험이 아니라, 참가자의 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파인 교수가 강조하는 “지속적인 변화”는 여행이 끝나고 돌아간 일상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과연 2,900만 원짜리 그리스 여행이 참가자에게 진정한 ‘트랜스포메이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그들이 원하는 게 트랜스포메이션일까?
높은 경제력은 여행 경험에 요구하는 디테일한 니즈와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한국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매스 투어리즘에 익숙해진 중장년 소비자에게는, 고품격의 의미가 가격표와 동일시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모객형 여행의 특성상 여행지, 교통수단, 동행자 3개 중 하나에는 큰 비중을 부여해서 기획을 해야 하는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니치한’ 기획은 성공하기 힘들다. 높은 가격으로 승부하려면 매스한 키워드가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대중적 키워드였던 ‘저속노화’처럼 말이다.
이미 기존 여행업계에서 인사 이동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려오는 것을 봐서는, 큰 틀에서는 기존 여행사가 계속 하고 있던 하이엔드 상품의 ‘백화점 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진짜 럭셔리 여행시장은 필연적으로 모객형을 벗어나, 미국처럼 개인 에이전트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