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여행업계의 경계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 설계자들이 여행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가 바로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전자음악(EDM) 공연 브랜드 ‘세르클(Cercle)’이 2022년 12월 론칭한 여행사 ‘세르클 모먼트(Cercle Moment)’입니다.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 터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에펠탑에서의 독점 공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세르클이 여행 비즈니스에 진출한 것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닙니다. 히치하이커는 ‘포스트-여행사’ 시대에 주목받는 전 세계 기업과 비즈니스 모델의 사례로, 세르클 모먼트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음악 공연 브랜드가 만드는 여행상품
세르클이 여행 비즈니스에 뛰어든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들의 DNA를 살펴봐야 합니다. 2016년 설립된 세르클은 단순한 EDM 음악 브랜드가 아닙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예술적 무브먼트’라고 정의하며 음악과 미학, 문화유산, 영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혁신적인 경험을 창조하고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세르클의 미션은 세계 각국의 문화 유산에서 독특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선보이며 공연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0곳을 포함해 전 세계 240여 개의 특별한 장소에서 공연을 기획하며 경험 큐레이션, 이벤트, 페스티벌, 레코드 레이블, 그리고 몰입형 음악적 여정을 아우르는 통합적 예술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위 영상을 보시면 이집트 룩소르의 하트셉수트 장제전 앞에서 EDM 공연이 펼쳐지는데요. 랜드마크와 몰입형 음악, 야외 공연이 어우러진 세르클만의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단계의 공연 회사’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여행사업은 자연스러운 확장이었습니다. 세르클 모먼트 프로그램 큐레이터인 마르셀로 벨리트(Marcelo Velit)의 말처럼, “세르클만의 독특한 경험 창조 능력으로만 제공할 수 있는, 꿈꿔왔던 그런 여행”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에 대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기존 여행사들이 제공하는 표준화된 패키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을 설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희소성이 만드는 고부가가치의 법칙, 세르클 모먼트
세르클 모먼트의 여행상품 가격은 럭셔리 상품에 가깝습니다. 2024년 12월 코스타 베르데 모먼트는 1인당 6,500유로(약 950만원)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일반적인 여행 패키지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입니다. 하지만 이 여행상품들은 매번 완판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세르클 모먼트는 ‘복제 불가능한 경험’을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에펠탑에서의 독점 파티, 세느강 크루즈에서 알렉스 완(Alex Wann)과 노트르담(Notre Dame)의 B2B 세트,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벤 뵈머(Ben Bohmer)와 함께했던 열기구 체험들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커다란 인기에 힘입어 2025년 9월에는 카파도키아의 두 번째 에디션이 열립니다.
세르클 모먼트는 ‘럭셔리 여행상품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가르쳐줍니다. 5성급 호텔은 기본이고요. 나일강 크루즈에서 세계적인 DJ들의 라이브 세트를 독점으로 감상하고, 킹스 밸리 캐년 같은 숨막히는 배경에서 소수만이 참여하는 음악적 순간을 경험하는 여행을 기획합니다. 벤 뵈머, 폴라무르(Folamour), 비지 P(Busy P), 모착(Mochakk) 같은 국제적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카파도키아 열기구나 리우 헬리콥터 투어, 프랑스 칼랑크 보트 파티에서 감상하는 것은 단순히 비싼 항공료나 숙박비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가치입니다. 여기에 각 지역별로 특화된 고급 식사와 맞춤형 스파 트리트먼트까지 더한 일정으로 기획됩니다.
이러한 상품 기획은 진정한 럭셔리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 불가능한 경험에 대한 독점적 기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철저한 소규모 그룹 운영으로 희소성을 극대화합니다. 각 여행은 엄선된 소수의 참가자들만 함께하며, 이는 단순히 VIP 대우를 넘어서 ‘유일무이한 순간’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전통 여행사의 구조적 한계
기존 여행사들이 세르클 모먼트 같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네트워크의 차이입니다. 세르클은 전 세계 톱 DJ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세계 각국의 문화적 랜드마크와의 협상을 통해 수많은 공연을 이루어낸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일반 여행사가 에펠탑에서 사적 파티를 열거나,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독점 공연을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은 거의 없습니다.
둘째, 브랜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세르클 모먼트 참가자들은 단순히 여행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세르클이라는 문화적 브랜드의 일부가 되고자 합니다. 이는 기존 여행사의 ‘서비스 공급자’ 포지셔닝으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셋째, 경험 설계 역량의 차이입니다. 세르클은 8년간 전 세계에서 240여 차례의 독특한 공연을 기획하며 축적한 노하우가 있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음악이 어울리는지, 어떻게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음악 여행을 설계합니다.
마치며
2025년 카파도키아에서 예정된 세르클 모먼트 두 번째 에디션은 이미 높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이는 ‘전문성 기반 여행 경험’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크고 지속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표준화된 관광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관심사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깊이 있고 의미 있는 경험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들이 여행 비즈니스로 진출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패션 분야에서는 이미 럭셔리 브랜드들이 독점적인 패션위크 체험이나 아틀리에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자동차 브랜드들이 서킷 체험이나 신차 시승을 결합한 여행상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행업계는 단순한 이동과 숙박의 중개업에서 벗어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설계하는 고유한 경험의 장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평범한 일정에 항공권만 비즈니스로 바꾼 여행상품을 럭셔리 여행상품이라며 수천만 원에 판매하고 있는데요. 전통적인 여행사들도 단순히 기존 방식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