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의 휴가 계획을 바꾸는 폭염
전 세계 인구의 무려 6억 명이 유럽 대륙에서 여름 휴가를 보낸다고 하네요. 그만큼 유럽은 여름 휴가도 길고, 또 각국 간에 휴가로 인한 여행 이동이 빈번한 대륙입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유럽, 그 중에서도 남유럽을 방문한 여행자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는데요. 40~50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이 연일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하와이의 마우이섬에서 일어난 엄청난 재난을 볼 때, 이제 기후 위기는 유럽 뿐 아니라 전 지구적 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 영국의 한 여행보험 회사가 2천 여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 성인의 71%가 지중해의 인기 휴가지가 너무 더워져서 2028년까지 방문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이들이 지목한 상위 5개국은 터키(응답자의 42%), 스페인(41%), 그리스(39%) , 키프로스(35%), 포르투갈(29%)이라고 하는데요. 그 외에도 이탈리아(27%), 프랑스(13%) 및 영국(12%) 역시 폭염 때문에 방문이 우려된다고 응답했습니다. 블룸버그 역시 지난 7월 ‘남유럽으로 향하던 관광객들이 급격히 행선지를 북유럽으로 바꾸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는데요. 여름철에도 비교적 선선한 아이슬란드나 핀란드 등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몇 년에 걸쳐 여름 여행지의 인기 순위는 서서히 바뀔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를 가리켜 기후 관광객(climate tourist)라는 용어도 생겨났는데요. 기후에 따라 여행지를 정하는 관광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점점 더 기후 관광객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후 위기는 목적지와 여행 시기, 방법 모두 바꾼다
특히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전역의 폭염 및 산불과 마우이의 파괴적인 산불 사태로 볼 때, 이제부터는 여행지와 여행 시기의 선택 기준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7월과 8월에 몰려 있는 전 세계의 여름 휴가 시기가 조정되거나, 개인 스스로가 기후로 인한 재난을 피해 휴가를 설정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입니다. 동시에, 폭염에서 자유로운 북반구의 비인기 여행지가 여름에 인기를 끌 것으로 보입니다. 북반구와 기후가 반대인 남반구는 어떨까요? 호주 역시 2020년 1월의 여름 성수기에 기록적인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죠. 호주 역시 극심한 가뭄을 피해 적당한 강우량이 유지되는 계절이, 여행하기에 좀더 안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 주목하는 건 빙하 관광이 빠르게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NPR은 8월 11일 ‘알래스카 관광은 변화하는 빙하 지형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기사를 내놓았는데요. 알래스카에서 20여년 이상 여행사를 운영했던 이들은 이미 빙하가 호수로 바뀌어버려 향후 5~6년 이내에 빙하 관광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합니다. 이미 현지 여행사들은 빙하 관광 대신 카약이나 패들 보딩과 같은 수중 레크리에이션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제 유튜브의 알래스카 크루즈 관련 영상에도 최근에 알래스카 크루즈 다녀오신 분이 ‘빙하가 너무 많이 녹았다’는 후기를 댓글로 달아주셨지요.
마지막으로 관광 마케팅의 메시지가 지금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방문하세요(Visit)를 강조했던 데스티네이션 마케팅에서, 이제는 ‘언제 오는 게 좋다, 또는 이런 여행자가 왔으면’ 하는 방식으로 세그먼트를 좁히고 있죠. 이제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에 이어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도 입장객 제한이 시작됩니다. 아크로폴리스는 올 여름 기온이 45도까지 올라 일시적으로 폐쇄를 하기도 했었죠. 앞으로 더 많은 인기 관광지들이 개별 티켓팅을 통해 하루 관람인원을 엄격히 제한하고,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관광객을 분산하는 마케팅 정책을 강화할 겁니다.
히치하이커닷컴은 지속가능한 여행의 방향에 주목하고 있으며, 책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에서도 5장 전체를 할애해 지속가능성과 여행의 관계를 다루었습니다. 다만 2022년 출간 당시에는 기후 위기를 직접적으로 조명하기 보다는 무비판적인 여행 소비 및 과잉 관광의 폐해에 좀더 초점을 맞췄는데요. 올해부터는 기후 위기로 인한 급격한 변화가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신 뉴스로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