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TV 이번 주 에피소드에서는 6박 7일 로얄 캐리비안 크루즈 상품을 한국어 사이트에서 편리하게 예약하는 법, 승선 당일 체크인까지 모든 과정, 그리고 서부 멕시코의 주요 기항지인 카보 산 루카스와 엔세나다를 여행한 후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두 기항지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여행하는 과정에서 향후 크루즈 기항지 여행이 크루즈 여행의 만족도에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 기항지 투어의 테마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무한히 많은 여행상품이 기획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히치하이커는 업계에서 기항지 여행을 향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좀더 살펴보았습니다.
최근 히치하이커TV 에피소드를 통해 서부 멕시코의 주요 기항지인 카보 산 루카스와 엔세나다 여행 후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이번 여정에서 저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기항지를 경험했습니다. 카보 산 루카스에서는 선사가 운영하는 유료 프로그램인 ‘쿠킹 클래스’에 참여해 현지의 맛을 배웠고, 엔세나다에서는 개인적인 로컬 루트를 짜서 미슐랭 맛집과 숨겨진 카페들을 도보로 탐방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경험 모두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반된 두 경험은 향후 한국 크루즈 여행업계가 직면할 거대한 숙제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국내 대다수 크루즈 여행사는 선사가 판매하는 영어 진행 프로그램을 옵션으로 제시하거나, 인솔자가 선박 내 케어에만 머무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럭셔리 여행의 본질이 ‘초개인화’와 ‘특수 목적(Special Interest)’에 있다면, 선사의 옵션 투어라는 ‘기성품’을 넘어 독자적인 기항지 콘텐츠를 설계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기성품’ 투어를 거부하는 글로벌 테마 여행사의 전략
이미 전 세계적인 테마 여행사들은 크루즈 선박을 편안한 이동 수단이자 ‘떠다니는 호텔’로 활용하고, 여행의 핵심 가치는 ‘기항지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하며 독자적인 상품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시스케이프 니트 트립(Seascape Knit Trips, 미국)은 알래스카나 캐나다 크루즈 기항 시 자체 섭외한 로컬 양모 농장과 전통 염색 공방으로 향합니다. 현지 장인과 함께하는 프라이빗 워크숍을 기항지 일정으로 설정하고, 모든 과정에 세계적인 뜨개질 전문가(Instructors)가 동행하여 교육적 깊이를 더합니다. 기항지는 관광지가 아닌 ‘학습의 장’이 됩니다.
디지털 노마드 및 네트워킹 테마의 크루즈 여행사도 있습니다. 바로 노마드 크루즈(Nomad Cruise)인데요. 대중 크루즈를 활용하되 선상 일정을 완전히 재정의합니다. 항해 기간 동안 비즈니스 마스터마인드, 워크숍, 기획 세션 등 창업과 원격 근무에 특화된 큐레이션 활동이 24시간 이어지며, 참가자들은 대양을 횡단하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비즈니스 영감과 강력한 커뮤니티 결속력을 얻습니다. 이는 크루즈가 제공하는 이동의 편의성을 ‘전문적 성장을 위한 몰입 환경’으로 전환하여, 특정 목적을 가진 커뮤니티가 선상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게 만드는 초개인화된 SIT(특수목적여행)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유럽의 리버 크루즈들은 아예 테마형 크루즈 상품으로 처음부터 기항지 투어를 리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발론 워터웨이즈(Avalon Waterways)의 ‘가드닝 & 자연’ 테마 크루즈의 경우 일반적인 튤립 축제를 넘어 전문 육종가의 온실이나 비공개 개인 정원을 방문하고 현지 원예학자와 직접 만나는 ‘딥 다이브’ 일정을 구성합니다. 리젠트 세븐 시즈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미식 탐험’에 집중하는 크루즈를 운영합니다. 프랑스 프로방스나 이탈리아 정박 시에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지 미슐랭 스타 셰프의 개인 농장이나 주방을 방문하는 초개인화된 기항지 프로그램을 독점 제공합니다.
이처럼 특수목적 여행의 선두주자들은 선사 투어로는 접근 불가능한 사유지나 연구소 등을 섭외하는 독점성(Exclusivity), 전문가가 기획부터 동행까지 책임지는 전문성(Expertise), 그리고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의 결속을 다지는 커뮤니티 빌딩(Community)을 통해 초개인화된 럭셔리 투어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초개인화와 SIT(특수목적여행)로의 패러다임 전환
사실 한국에서 크루즈 여행상품의 역할은 항공권 발권 및 출항지 전일 호텔 및 투어, 항구 픽업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각 기항지에 도착하면 선사의 영어 가이드 투어를 선택하게 합니다. 또는 단순히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하는 대형 버스 투어를 운영하는 데 그칩니다. 인솔자의 역할 역시 선상에서의 식사 예약이나 공지 사항 전달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럭셔리 크루즈를 이용하는 고객일수록 본인의 취향이 확고하며, 남들과 똑같은 단체 관광이 아닌 ‘나만을 위해 큐레이션된 시간’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멕시코 엔세나다에서 직접 미슐랭 식당과 로컬 카페를 찾아다니며 느낀 만족감은 선사의 정형화된 투어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카보 산 루카스에서 경험한 쿠킹 클래스도 사실 일반적인 여행자들이 두루 선택하는 투어는 아닌데요, 요리에 관심이 많다 보니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한국의 크루즈 여행사가 럭셔리 산업에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항지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서 직접 상품을 기획하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첫째, 기항지 콘텐츠의 독점적 확보가 필요합니다. 선사가 제안하는 리스트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여행사가 직접 현지의 맛집, 예술가, 특수한 장소를 섭외해야 합니다. 엔세나다의 미슐랭 맛집 투어처럼, 한국인의 입맛과 취향을 고려한 ‘프라이빗 도보 투어’나 ‘테마 미식 투어’를 독자적으로 기획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인솔자의 전문성 강화입니다. 인솔자는 더 이상 단순한 관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해당 여행의 테마(와인, 건축, 사진, 미술 등)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기항지 투어를 직접 리드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콘텐츠 큐레이터’가 해당 역할을 해야 합니다.
셋째, 커뮤니티 기반의 상품 기획입니다. 해외 사례처럼 특정 취미를 가진 소규모 그룹을 타겟으로 기항지 일정을 완전히 새롭게 짜야 합니다. “일본 크루즈”가 아니라 “일본의 숨은 골동품 시장을 찾는 크루즈”처럼 목적이 분명한 상품이 나와야 합니다.
마치며
멕시코 카보 산 루카스의 쿠킹 클래스가 즐거웠던 이유는 선사가 마련한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 덕분이었고, 엔세나다의 도보 여행이 행복했던 이유는 내 취향에 맞는 장소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장점을 합친 것이 바로 한국의 럭셔리 여행사들이 지향해야 할 미래형 크루즈 상품입니다.
크루즈 선박은 갈수록 거대해지고 화려해지지만, 그 안에서 제공되는 경험은 표준화되기 마련입니다. 결국 여행사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배가 멈추어 선 기항지에서의 몇 시간입니다. 선사의 영어 프로그램에만 의존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고객의 취향을 정교하게 타겟팅한 ‘초개인화된 기항지 큐레이션’에 집중할 때 비로소 한국 크루즈 여행은 진정한 럭셔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