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14일, 중국 최대 규모의 국제 관광 박람회인 ITB 차이나가 열렸다. 상하이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행사인데, 팬데믹 영향인지 올해는 개최가 다소 늦은 데다 예년보다 규모도 작게 열렸다.
직접 가려고 입장 허가도 받아 두었으나 일정상 여의치가 않았는데, 다행히 ITB 차이나 측에서 컨퍼런스 실황을 온디맨드로 제공해 주어서 현장보다 더 확실하게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으로, 음성 인식만 하면 번역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
ITB 차이나의 화두가 ‘중국 아웃바운드 회복’인 만큼, 이번 컨퍼런스의 거의 모든 내용이 중국인의 해외여행 행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맞춰져 있었다. 현재 한국 역시 중국발 아웃바운드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는 상황인 만큼, 3일간의 컨퍼런스 중에서 중국인의 해외여행 전망에 연관된 총 5개의 세션에서 나온 인사이트를 정리해 보았다.
우선 컨퍼런스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체크해야 할 기사가 있다. 2023년 9월 25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이번 2023 중추절 연휴 기간에 중국인이 가장 많이 예매한 국제선 노선은 상하이~서울 구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분석가의 인용에 따르면 “항공권 예매 자료를 보면 1인이나 커플 여행이 대다수“라며 “개별 맞춤형 여행상품이 젊은 여행객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ITB 차이나의 모든 세션에서 나온 현업 종사자의 의견과 일치한다.
1. 맞춤형, 테마형, 소그룹형, 고품질형만이 살 길
테마 여행 전문 회사 여우시아커 창업자는 ‘중국 아웃바운드 관광시장은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토론 세션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사례를 많이 전달했다. 오랜 여행 마니아여서 2000년대 초부터 해외여행을 해왔다는 창업자 장쩌밍은 중국에서 해외 테마여행이 이미 높은 수요가 있다고 밝혔다. 마케팅은 역시나 샤오홍슈(Xiaohongshu)와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하여 여행상품을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즉 이러한 테마 여행의 주요 소비자가 2030 여성들이라는 점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여우시아커의 상품을 보면 방점이 ‘사진’에 찍혀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여행사는 중동, 아프리카, 중국 서부 등 비전통적인 관광지 비중이 높고, 이미 이러한 지역에서 많은 고객을 확보했다. 이런 특별한 지역과 와인 여행, 요가 여행, 생물 다양성 여행 등과 같은 테마를 조합해 새로운 여행상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여행사를 통해 야외 스포츠 사진, 여행 사진, 크로스 컨트리 운전 등과 같이 고도화된 취향을 충족시키는 여행 상품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이렇게 상품의 지역과 테마를 다양화한 배경에는 유럽과 미국 여행의 문턱이 이전보다 높아진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 관광 목적지는 IP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까?
알리바바의 여행 플랫폼인 플리기는 ‘미래 지향적인 슈퍼 브랜드/목적지를 구축하는 법’이라는 세션을 맡았다. 과거에 플리기와 같은 플랫폼의 입장은 자사 플랫폼에 입점하거나 광고를 하면 매출을 극대화한다는 접근법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놀란 것은, 엔터테인먼트에서 쓰이는 IP 비즈니스의 개념을 관광업계에 접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플리기는 2021년 상반기에 팬데믹으로 인한 중국인의 국내여행 쏠림 현상이 비 관광권으로 퍼지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칭하이, 간쑤, 닝샤 등 북서 지역의 관광상품 예약이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한 것을 발견하고, 젊은 층에게 이 목적지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거대 이벤트 ‘플리기 원더풀 여행 페스티벌 – 노스웨스트’를 런칭한다. 미국의 버닝맨이나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영향을 받은 사막 위에서의 음악 축제를 기획한 것인데, 2021년 9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 동안 열린 이 사막 축제는 중추절 기간 동안 북서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축제에서는 DJ들의 전자음악 공연은 물론이고 설치미술, 수제맥주, 커피, 마켓 등 트렌디한 생활 요소뿐 아니라 북서부의 독특한 풍습과 문화를 결합한 중국만의 색채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사막 특유의 황량하고 탁 트인 풍경을 반영하여 독특한 문화 충돌 감각과 몰입형 경험을 만들어 낸다. 플리기는 중국의 한푸 브랜드 루멍 니샹(Rumeng Nishang)과 협업하여 현장 의류 대여 및 사막 인증샷 촬영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지역 특산물인 구기자 맥주를 양조해 제공했다. 인터넷 유명 커피 브랜드 밍찬(Mingqian)이 특별한 ‘사막 한정’ 커피를 선보이는 등 트렌디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우연찮게도 이 축제에서 글램핑 존을 담당한 업체가, 위에 소개한 여우시아커다. 한 인터뷰에서 여우시아커의 담당자는 “25~39세는 자사의 핵심 사용자 그룹으로, 이는 플리기 플랫폼의 소비자 그룹과 일치한다. 서북 지방과 같은 IP 목적지의 급속한 증가로 향후 협력의 여지가 더 많아질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축제가 시작되는 시점에 플리기는 플랫폼에 수만 개의 목적지 상품을 통합하여 120 개의 호텔 패키지와 200 개 이상의 여행 경로를 형성했으며, 축제 티켓을 구매하면 대상 호텔에 대한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축제를 만들고 자원을 모아서 비관광 지역이 더 많은 트래픽을 얻도록 만든 사례다. (좀더 자세한 내용들이 있는데, 별도로 소개할 예정이다.)
분명한 것은 중국 소비자들은 특별한 경험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며, 여행의 ‘목적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행 플랫폼이 고유의 여행 이벤트를 브랜드화하여 소유하게 된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3. OTA와 슈퍼앱의 치열한 접전
‘더우인(중국판 틱톡)’의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법’이라는 세션에서는 호텔업계가 더우인에서 케이터링과 객실 패키지와 같은 셀프 서비스 제품을 만들고 홍보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마케팅 대행사인 지커통(ZHIKETONG)의 사업부장이 많은 발언을 했다.
지커통은 여행 업체들이 더우인이나 위챗, 알리페이(Alipay)와 같은 기술 플랫폼에서 직접 판매를 하도록 돕는 회사다. 현재 중국 내 17,000개 이상의 호텔과 관광 명소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위챗에서 월간 총 거래 금액이 7억 위안(1억 5천만 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시장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10개 이상의 PMS와 통합된 회사이기 때문에, 호텔 마케팅의 디지털 전환 회사라고 볼 수 있겠다.
지커통은 더우인 외에도 위챗(WeChat)을 통한 호텔 직접 판매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직접 판매가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친구가 추천한 호텔 제안이 신뢰를 얻을 뿐만 아니라 충동적인 소비 행동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위챗 사용자의 약 13.5%가 500명 이상의 친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입소문을 주요 마케팅 형태로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위챗 내에서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 미디어 피드인 모멘츠(Moments) 및 공식 계정 내 광고 등 다양한 경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먼츠 및 공식 계정 내 관련 광고는 캠페인 랜딩 페이지, 앱 다운로드, 쿠폰으로 연결될 수 있다. (위 이미지 참조)
이러한 직접 판매는 더우인에서도 가능하다. 더우인은 최근 몇년간 여행산업에 직접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메이투안, 씨트립과 같은 제3자와 협력하여 더우인에 내장된 예약 애플릿을 통해 예약 채널 역할을 해왔고, 이후 가맹점 홈페이지에 티켓과 호텔 예약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숏폼 플랫폼이 이제 마케팅 툴이 아니라 판매 툴이 된 것이다.
특히 더우인의 가장 큰 장점은 일일 활성 트래픽이 7억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2023 도우인 관광산업 백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관광명소, 호텔 숙박, 항공사, OTA 등 관광업체의 평균 성장률이 20%를 초과했으며 그 중 숙박 및 비즈니스 여행 발권 수는 61.5%와 46.0%에 달하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자 기존 여행 플랫폼들도 더우인에 대항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온라인 관광 산업의 맏형인 씨트립은 2019년 여행 MCN 설립에 투자했다. 인큐베이션 플랫폼에서 ‘여행 전문가’와 KOL을 대대적으로 영입하고 콘텐츠를 늘려왔다. 작년부터 씨트립 커뮤니티에 고품질의 이미지, 텍스트, 영상, 라이브 방송 등을 모아오기도 했다. 어찌보면 중국에서도 기존의 여행 플랫폼과 소위 빅테크라 칭하는 슈퍼 앱(위챗, 플리기, 더우인)이 치열한 경쟁 중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며
위 내용 모두가 이번 박람회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회사 연혁이나 성과,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은 중국 웹에서 별도로 서칭해서 덧붙였다. 중요한 건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중국 여행업계의 최신 현상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회가 될 때마다 이번에 알게 된 중국의 최신 여행 회사와 여행 이벤트를 하나하나 심층 분석해서 연재할 예정이며 관련 밋업도 기획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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