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낙서로 뒤덮인 벽면, 그리고 유령이 떠돈다는 소문까지 더해진 발리의 버려진 테마파크가 있습니다. 바로 발리 동쪽에 위치한 페스티발 파크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폐허는 이제 도시 탐험가들의 호기심을 끄는 장소를 넘어 새로운 축제의 장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바로 매년 디자인과 문화, 창의성을 기념하는 특별한 축제 ‘지아 큐레이티드(Jia CURATED)’의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치하이커는 오는 8월 14~18일에 열리는 발리의 이색 축제, 지아 큐레이티드의 탄생 배경과 이 축제가 지역 관광 활성화에 던지는 의미를 살펴봅니다. 8월 발리 자유여행 계획하시는 분들은 이 행사 꼭 체크해 보세요!
폐허에서 피어난 창의적 실험장
지아 큐레이티드는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연례 축제로,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창의성을 선보이는 독특한 예술 행사입니다. 축제명인 ‘지아(Jia)’는 중국어로 ‘집’을 의미하는데, 이는 자연이 우리의 진정한 집이라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지아 큐레이티드의 처음 두 회는 숲에서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최근 두 회는 발리 페스티벌 파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축제의 핵심에는 ‘고똥 로용(gotong royong)’이라는 인도네시아의 철학이 자리합니다. 극단적 개인주의 대신 사회의 공동체적 협력을 기념하는 이 정신은 축제 전반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공동체의 힘으로 버려진 공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축제의 근본 취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올해 축제에는 150개가 넘는 인도네시아 및 국제 브랜드가 참여하여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향수 제작자, 조각가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전시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문화 유산을 기리는 라이브 공연과 음악이 축제의 생동감을 더합니다.
올해 주요 전시 중 하나인 ‘웨이스트 투 원더(Waste to Wonder)’ 시리즈는 버려진 재료를 기능적인 디자인으로 변화시키는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이는 지속가능성과 상상력에 대한 성찰이자, 잊혀진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축제 자체의 목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발리 페스티벌 파크의 흥망성쇠
축제가 열리는 발리 페스티벌 파크는 1997년에 건설된 곳으로,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첨단 시설을 갖춘 테마파크 중 하나였습니다. 10,000제곱미터가 넘는 광활한 부지에 조성된 이 공원은 발리 관광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개장 3년 만인 2000년에 재정적 문제와 보험 문제로 인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후 완전히 방치된 채로 20여 년이 흐른 셈입니다.
오늘날 이 공원은 깨진 유리와 스프레이로 칠해진 벽면만이 남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구글맵에서 발리 페스티발 파크의 위치를 찾아보니, 한국의 발리 여행자들은 아예 가지 않는 지역인 파당 갈락이라는 곳에 있네요. 국제공항이 있는 최남단을 기준으로 북동쪽인데, 굳이 따진다면 요새 조금씩 알려지는 사누르에서 좀더 북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어 리뷰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인스타그램 사진을 찍기 좋은 곳으로 소소하게 알려졌다고 합니다. 폐가 체험하러 간 사람들도 있고, 부동산 분류도 ‘유령 도시’로 되어 있었을 만큼 어찌보면 개발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로 겨우 포토 스팟 정도의 기능만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한국의 각 지역에도 개발을 하다가 중단되어 방치된 호텔이나 시설 등을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인데요. 우리는 실패한 개발을 또 다른 개발로 때우는 방법을 주로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발리의 사례처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여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참고해볼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지역 관광 활성화에 던지는 의미
지아 큐레이티드가 지역 관광 활성화에 던지는 의미는 단순한 관광객 유치를 넘어섭니다. 첫째, 이 축제는 버려진 공간의 창의적 재활용 모델을 제시합니다. 폐허가 된 테마파크를 문화예술의 무대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지역의 유휴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관광 콘텐츠 창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특히나 이 지역 자체도 관광으로 전혀 유명한 지역이 아니므로, 축제를 통해 발리의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인 오버 투어리즘과 관광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무형의 즐길 거리를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둘째, 지역 문화와 국제적 트렌드의 조화로운 결합을 실현합니다. 인도네시아 전통 철학인 고똥 로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150개가 넘는 국제 브랜드의 참여를 이끌어내어, 로컬과 글로벌의 균형잡힌 융합을 구현했습니다.
셋째, 지속가능한 관광 모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웨이스트 투 원더 시리즈로 대표되는 환경 친화적 접근방식은 단순한 소비 중심의 관광을 넘어 성찰과 학습이 있는 관광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와 함께 관광 산업의 회복력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 한때 실패한 관광 시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탄생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은, 관광 산업이 지역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마치며
발리 페스티발 파크에서 2025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는 지아 큐레이티드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실험입니다. 폐허와 디자인이 만나는 이곳에서 우리는 창의성이 어떻게 잊혀진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발리의 이 작은 실험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관광 산업의 미래는 단순한 시설 확충이나 대규모 개발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창의적 사고의 결합을 통해서만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아 큐레이티드가 보여주는 이러한 접근방식은 전 세계 관광산업에 귀중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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