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과 Z세대(MZ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단체 여행 방식과 선호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된 여행 스타트업 ‘위로드(WeRoad)’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2017년 설립된 위로드는 기존의 전통적인 패키지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으로 유럽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지난 2023년에는 1,800만 유로(약 260억 원)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히치하이커닷컴은 여행자들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여행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위로드의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위로드의 비즈니스 모델: 여행 상품이 아닌 커뮤니티 판매
위로드는 스스로를 ‘여행사’로 정의하지 않고 ‘세계를 탐험하고, 문화를 발견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여행자들의 커뮤니티’로 정의합니다. 이는 기존 한국의 여행업이 여전히 목적지와 관광 명소를 중심으로 여행을 진행하는 것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위로드는 ‘누구’와 함께 여행을 경험할 것인가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둡니다. 여행객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최대 15명으로 구성된 그룹에 참여하게 되며,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여행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패키지 여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동적인 관광객의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여행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여행자를 변화시킵니다.
여행 코디네이터: 가이드가 아닌 여행 경험의 촉진자
위로드 여행의 또 다른 차별점은 ‘여행 코디네이터(Travel Coordinator)’의 존재입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가이드가 아닙니다. 물론 여행의 로지스틱과 현지 파트너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책임을 지지만,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여행 코디네이터는 그룹 내 우정을 형성하고 장시간 이동 중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자연스러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여행자들이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나도록 돕고, 전체 여행 경험을 함께 공유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패키지 여행에서 가이드가 주로 일정 관리와 정보 전달에 집중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위로드의 여행 코디네이터는 여행자들과 함께 여행을 경험하며,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여행 커뮤니티의 핵심 구성원으로 참여한다는 점도 다릅니다.
여행자 주도의 경험: ‘머니 팟’과 유연성
위로드는 ‘머니 팟(Money Pot)’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통해 여행자들에게 유연성을 제공합니다. 이는 모든 투어 참가자들이 현지 통화로 모은 공동 기금으로, 여행 코디네이터가 관리합니다. 머니 팟은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동의한 추가 활동에만 사용되므로, 매번 돈을 모으는 대신 결제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룹의 욕구에 따라 추가 활동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합니다.
한국의 패키지 여행에서는 대부분 ‘선택 관광’이라는 형태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며, 이는 종종 여행자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강제성을 느끼게 합니다. 반면 위로드의 머니 팟 시스템은 그룹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고, 여행자들이 함께 경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로 작용합니다.
‘여행 무드’를 통한 맞춤형 경험
위로드는 ‘여행 무드(Trip Moods)’라는 개념을 통해 여행자들이 자신의 선호도에 맞는 투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대부분의 투어에는 다양한 무드가 혼합되어 있지만, 이러한 태그는 여행자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경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연과 모험’, ‘유적과 역사’, ‘해변과 휴식’, ‘문화와 도시 생활’, ‘파티와 야간 생활’ 등의 카테고리는 각자의 여행 스타일에 맞는 선택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존의 단체 여행이 주로 명소 방문 위주로 일정이 구성되는 것과 달리, 이러한 방식은 목적지보다는 여행자의 성향과 관심사를 우선시하는 접근법입니다. 위로드의 시스템은 여행자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자신의 여행 경험을 디자인하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여행자가 만드는 여행: WeRoadX
위로드는 더 나아가 ‘WeRoadX’라는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여행 코디네이터들이 직접 설계한 여행 일정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이 이니셔티브는 2023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어 50개 이상의 새로운 목적지에 대한 200개 이상의 새로운 경로와 여행 일정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여행자들에게 더욱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여행 코디네이터들이 단순한 직원이 아닌 창의적인 여행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기존의 패키지 여행이 대형 여행사가 설계한 표준화된 일정을 따르는 것과 달리, 위로드는 여행 참가자와 코디네이터 모두에게 주체성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여행이 단순한 소비 상품이 아닌, 모든 참가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창작물이 되도록 합니다.
마치며
위로드의 성공은 현대 MZ세대가 추구하는 여행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여행은 단순히 명소를 방문하는 행위가 아닌,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자신의 경계를 넓히는 경험, 그리고 진정한 교류와 연결을 통한 성장의 기회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생존하고 성장한 위로드의 비즈니스 모델은 그 가치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임을 증명합니다.
또한 한국에도 이미 위로드와 거의 흡사한 모델의 여행자 주도형 여행사가 몇 곳 있는 것으로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반드시 또래 세대가 창업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여행 비즈니스 모델은 어쩌면 전통적인 여행업을 해왔던 기성 세대에게는 커뮤니티 메이킹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리고 시니어 소비자는 커뮤니티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목적지 관광을 중요시하므로 이 타겟을 벗어나서 사업하기도 힘들죠) 또한 한국에서는 여행업이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범위가 이러한 모델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보는 것’ 중심의 패키지 여행에서 ‘경험하고 교류하는’ 여행으로의 전환은 이미 자유여행 시장에서는 엄청나게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패키지 여행으로 굳이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면 커뮤니티 중심의 접근법, 여행자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하는 시스템, 유연성과 개인화는 점점 더 필수 요소가 될 것으로 봅니다. 결국 위로드의 사례는 여행 비즈니스가 단순한 목적지의 판매가 아닌, 의미 있는 경험과 연결을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