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을 들여 계획한 해외여행이 ‘가이드 복불복’으로 망쳐지는 일은 과연 소비자 입장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가? 지난 12월 25일, 한 대형여행사의 서유럽 노옵션 노쇼핑 패키지여행 상품을 이용한 변호사가 구독자 40만 명에 이르는 자신의 유튜브에 가이드의 부적절한 서비스로 망쳐진 여행 실태를 고발하며, 이른바 ‘프리미엄’ 패키지여행의 실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영상 👉🏻 ‘2,360만원 내고 찬밥신세 된 썰 푼다’
쇼핑과 옵션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여행의 품질에만 집중하겠다는 ‘노옵션 노쇼핑’ 프리미엄 상품의 복불복 실태는 이전부터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 책 ‘여행의 미래'(2020)부터 여행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입장에서, 위 영상에 달린 약 2천 개의 댓글 중에서 업계 관계자와 소비자의 실제 후기를 인용하여 프리미엄 패키지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1. 여행상품이 비쌀수록, 가이드 질이 떨어진다고?
현재 여행업계가 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기형적인 수익구조다. 많은 패키지여행 상품이 실제 비용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손실은 현지에서의 쇼핑 수수료와 옵션 투어를 통해 만회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가이드의 처우와 직결된다. 대부분의 현지 가이드들은 여행사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며, 기본급 없이 쇼핑 수수료와 옵션 투어 판매 실적에 의존해 수입을 얻는다.
따라서 쇼핑과 옵션이 없는 투어의 경우, 가이드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가이드의 수입은 회사, 쇼핑으로 나뉘는데 대부분 현지 헤드헌팅 업체에서 파견나온 프리랜서 가이드는 회사에서 받는 돈보다 쇼핑 마진이 훨씬 높습니다“라는 전직 가이드의 설명은 패키지여행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쇼핑과 옵션이 없는 투어에서는 가이드들의 서비스 품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곧 노옵션 노쇼핑 상품에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떨어지는 가이드가 배정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해당 영상의 댓글에 달린 “이게 아이러닌데… 소비자 입장에선 쇼핑 없는 패키지로 비싸게 주고 왔는데 가이드 질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음. 가이드도 얘들한테 뽑아먹을게 없으니 불친절함”이라는 전직 가이드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실제로 “현지 헤드헌팅 업체쪽도 쇼핑센터랑 연결되있으며, 잘하는(잘팔고 친절한) 가이드는 쇼핑 많은 투어에 꽂아줌“이라는 증언은 우수한 가이드가 오히려 저가 패키지에 배치되는 왜곡된 현실을 보여준다.
2. 노옵션 노쇼핑 패키지, 진짜 쇼핑 없을까?
소비자들은 쇼핑과 옵션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여행에 집중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노옵션 노쇼핑 패키지에 프리미엄 값을 지불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텔이나 항공편 업그레이드 외에는 일반 패키지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중론이다. 오히려 가이드의 무성의한 태도로 인해 여행의 질이 더 떨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스페인 패키지 2명 1200만원 내고 인생 최악의 경험을 했습니다. 호텔 바꿔치기는 기본이구요, 첫계약 받았던 초안과는 별개로 최종 호텔이 현지에 가서 바뀌더라구요.” 이는 소규모 여행사의 프리미엄 패키지를 이용한 한 소비자의 후기다. 또 다른 소비자는 “삼백몇십 주고 예약한 여행의 질이 넘 떨어졌는데, 알고보니 홈쇼핑으로 판 상품이랑 현지에서 합친 거… 홈쇼핑은 백오십만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노쇼핑’이라고 명시된 상품에서조차 간접적인 형태의 쇼핑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해당 변호사의 영상에는 식사 시간을 은근히 느리게 유도하며 바로 옆에 있는 올리브 오일을 판매하려 하는 정황을 다루었는데, 비슷한 증언이 많다. “저도 같은 여행사의 서유럽 패키지를 다녀왔는데요. 노쇼핑인데도 음식점 바로 옆에 발사믹 식초가 있었어요. 가기 전부터 막 발사믹 얘기를 하더라고요”라는 증언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3. 특정 여행사의 네임밸류, 실제 여행 퀄리티와 관계 있나?
패키지여행의 질은 전적으로 가이드(인솔자)의 역량과 태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여행업계에는 가이드의 자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전무한 실정이다. 대형 여행사조차 현지 가이드의 실제 서비스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특히 현지 가이드나 인솔자가 여러 여행사의 투어를 병행하는 현실에서, 특정 여행사의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를 반영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비자 피드백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동일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24년 5월에 거의 모든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프랑스 800만원 프리미엄 패키지’ 사건이 대표적이다.
“현지여행사나 고객을 보내는 한국의 여행사는 가이드의 자질, 즉 종합적 실력을 사실상 알기가 어려워요. 알 수 있는 방법은 고객으로부터의 평가의 피드백을 보고 대충 아는 셈인거죠.”라는 댓글은, 대형 여행사조차 현지 가이드의 서비스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4. 성인과 아동이 동일, 2인 1객실 써도 중복 할인 없는 요금제, 정당한가?
이번 영상에서 제기된 진짜 구조적 문제는 또 있다. 영상 19:50부터 보면, 서유럽의 대표 관광지에 아동 할인이 다수 적용됨에도 불구하고 1인당 패키지 요금은 성인과 동일했다. 이 점은 내가 꾸준히 이야기해온 ‘숙박 2인 1실 기준 요금인데 중복 할인은 없는’ 부분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불합리한 패키지 여행 요금 책정은 2022년 기사화된 적도 있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의 모순] 2·3인 기준, 왜 1인 가격의 2~3배?
서유럽의 다수 관광 명소가 미성년자에게 적용되는 입장료 할인이 있음에도 패키지 요금은 성인과 동일하게 책정된다는 문제를 발견한 변호사는, 여행사에 성인과 미성년자 입장료 차이에 대해 여행사의 명확한 설명을 요구했다. 여행사는 패키지 요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동일한 기준으로 책정되며, 개별 입장료 차이는 고려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입장료가 무료 혹은 할인된 장소가 한 두곳도 아니고 5건 이상 포함되어 있음에도 패키지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행사는 일부 비용을 환불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차익 반환이 아니라 여권 제시 등의 불편을 감안한 조치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렇게 환불로 간단히 응수하는 장면은 참으로 기시감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여행사는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면 언론에 밝히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개별 환불로 입막음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여행사가 명확한 가격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비자는 이와 같은 차익이 어디로 귀속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한 댓글에 의하면 이러한 차익은 현지 여행사 또는 가이드의 몫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관계를 아시는 분들의 제보 바란다) 이는 패키지 투어 요금의 책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합리성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정당한 문제 제기다.
패키지여행, 공급과 소비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
과거의 패키지 여행업은 더 이상 현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프랜차이즈 햄버거의 품질도 전국 어디서나 동일하게 유지되는 시대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여행 상품의 품질이 ‘가이드 뽑기 운’에 좌우된다는 게, 말이 되는 현상인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복불복 시스템을 더 공고하게 지속시키는 일부 소비자의 그릇된 소비 관행이다. “장가계를 200만원에 갔다 왔는데 1박당 4만원짜리 방에, 노옵션이라며 쇼핑도 했고, 선택관광 해달라고 가이드가 징징거려서 해주고 옴. 한국인이 해외여행의 호갱이고 못난짓의 최고봉임”이라는 한 여행객의 증언처럼, 가이드의 눈치를 보며 불필요한 쇼핑과 옵션을 수락하는 것은 결국 왜곡된 시스템을 강화할 뿐이다. “물건을 사고 싶은 걸 사는 거지, 물건 같지도 않은 걸 가이드 매출 올려줄려고(또는 기분 맞춰주려고) 바가지까지 써가며 사는 여행, 왜 함?”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은 우리 모두가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 가이드 기분을 맞춰 주려고 여행을 가는 것인가? 대체 해외여행에서 가이드에게 무슨 ‘대접’을 받으려고 300만원짜리 라텍스를 사는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인가?
더이상 수백만 원대 여행상품의 품질이 ‘가이드 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가이드의 눈치를 보며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행동은 결국 한국 소비자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여행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또한 현명한 소비자라면 과감히 노옵션 노쇼핑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여행을 직접 디자인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 때다.
이미 한국의 아웃바운드 여행 시장은 약 80%에 달하는 소비자가 풀 패키지가 아닌 개별 자유여행과 에어텔을 선택하고 있다. 또한 프리미엄 여행의 경우 현지 가이드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현지투어 차량투어 그랩 등등 현지에서 마이리얼트립이나 이런 일일투어 상품들 예약하고 유럽은 차량 이동수단 많아서 대체적으로 가족들이 매번 만족하면서 여행”한다는 경험담은 최근 여행 소비의 흐름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꿀팁은 현지 가이드 검색하면 인터넷 카페나 카톡 등에 해당 지역 가이드들이 모여서 따로 전문적으로 하는 현지 가이드들이 있는데, 거기랑 커넥팅해서 여행하는게 좋더라고요”라는 한 여행자의 조언도 주목할 만하다.
여행업계는 2025년부터는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가이드의 처우 개선과 체계적인 품질 관리 시스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또한 쇼핑과 옵션에 의존하는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진정한 의미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여행업계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노옵션 노쇼핑’이라는 허상은 곧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프리미엄(맞춤형) 여행업은 미국과 유사한 어드바이저 시스템을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다음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