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개봉한, 관광산업 전반의 문제를 파헤친 장편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투어리스트 (The Last Tourist)’가 영미권 OTT에 속속 런칭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현재 북미와 영국 및 호주 권에서는 애플TV와 구글 플레이 등을 통해 시청할 수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더라고요. 영상을 입수해서 시청했는데, 참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본 다큐가 전달하는 주요 메시지와 제 의견을 정리해 봅니다.
누가, 왜 다큐를 만들었는가
‘더 라스트 투어리스트’는 팬데믹 이전 전 세계 최대 산업으로 성장해온 관광산업의 부작용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팬데믹 이후 전환점에 선 관광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다큐입니다. 촬영지만 전 세계 16개 도시를 아우르며, 400여 시간의 촬영분을 압축해 풍성한 영상미도 갖추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생태 학자인 제인 구달을 비롯해, 책 <여행을 팝니다>의 저자 엘리자베스 베커가 인터뷰이로 등장하네요. 제가 여행강의를 시작하던 초기에, 블로그에 이 책의 서평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이 다큐를 제작한 주체가 여행사라는 점도 놀라운데요. 세계적인 공정 여행사 ‘지 어드벤처(G Adventures)’의 창립자, 브루스 푼 팁(Bruce Poon Tip)의 비전으로 탄생한 다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비전은 이 다큐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했던 말에 잘 담겨 있습니다.
“여행 산업은 진정으로 변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여행 소비자는 여행이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전히 세계 인구의 극소수만이 여행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특권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돈을 어디에 쓸지 선택함으로써,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 산업은 정확히 수요에 대응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여행자의 수요가 의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경험으로 이동하면 업계는 그 방향으로 향할 것입니다.”
길을 잃은 관광산업, 어디로 가고 있나
이탈리아의 베니스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의 엄청난 관광객 밀집으로 대표되는 ‘오버 투어리즘’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큐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한 관점으로 관광산업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고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대규모 항공기를 기반으로 대중 관광이 시작된 이래 기술과 미디어가 빠르게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는 몇몇 도시와 랜드마크에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관광은 소수 엘리트의 취미를 벗어나 글로벌 산업이 되었고, 전 세계 국가의 80%가 상위 5개 외환 수입에 관광을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지구상의 직업 10개 중 1개는 여행 및 관광 산업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네요.
지금의 관광은 휴가(holiday)와 동일한 개념이 되었고, 목적지(destination)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가치가 되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29%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거리가 없는 여행지라면 가지 않겠다는 통계도 제시됩니다. 즉 관광은 사회적 ‘지위(status)’를 표상하는 가치가 되었고, 가성비 높은 비주얼(사진/영상)이 출력되는 여행일수록 더 가치있는 여행이 됩니다.
그 결과 관광산업은 부를 효과적으로 재분배하여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을 발전시킬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여행회사가 이를 독식하는 구조에서 여행자의 돈은 현지 주민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 사례가 크루즈 여행입니다. 배에서 판매되는 옵션 투어는 엄청난 수수료를 가져가는데, 투어 비용이 80불이라면 그 중 40불은 크루즈 회사로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40불이 현지에 돌아갈까요? 관광객은 자유시간에도 크루즈와 계약된 상점과 식당이 대부분을 가져가도록, 세밀하게 디자인된 동선을 안내받게 됩니다. 이건 한국의 패키지 투어와도 정확히 같은 원리의 수익 구조네요.
가장 충격적인 사례 중 하나는 볼룬투어리즘(Voluntourism)’, 즉 자원봉사 활동과 투어리즘이 결합된 비즈니스가 어떻게 현지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지 취재한 내용인데요.
2005년부터 캄보디아에는 고아원이 75%씩 증가했습니다. 갑자기 고아가 증가해서 고아원이 증가한 것일까요?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고아원은 봉사자에게도 숙박 및 이용비를 받고 세계 각지에서 후원금도 받기 때문에, 점점 수익성 있는 관광 사업이 됩니다. 게다가 부모 중 한 쪽이 살아있어야만 아이를 시설에 보낼 수 있다는 자격 조건은, 부모가 경제적 이유(후원금)를 위해 아이를 맡길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확률은 극히 드뭅니다. 즉 봉사가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봉사 수요자에 맞춰 고아원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고아도 함께 증가한 것입니다. 이 거대한 부조리를 알게 된 봉사 경험자가 구호 단체를 조직하면서 이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내막을 모르는 선진국 젊은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윤리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봉사 여행을 오고 있습니다.
즉, 통제되지 못한 관광산업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나 계층을 착취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다큐에서는 관광산업에 동원되는 동물의 엄청난 학대와 남용, 그리고 관광 산업의 가치사슬 체인에 편입되지 못한 현지 사회가 어떻게 빈곤해지는 지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마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는 자사인 지 어드벤처를 비롯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진 사례를 제시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지 어드벤처는 페루 마추픽추 근처에 있지만 여행자가 전혀 찾지 않아 빈곤에 시달리던 안데스 산맥의 작은 마을을 발견하고, 이곳의 여성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수공예품과 체험을 여행자와 연결하는 여행 상품을 만들어 로컬 경제를 변화시킨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또한 인도에서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들을 재교육해 택시 기사로 사회에 진출시키고, 여성 여행자들이 델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안전하게 택시 여행을 하도록 돕는 여성 전용 택시 회사 사카(Sakha)의 사례도 너무 멋졌습니다. 인도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한번 이용해보려고 합니다.
저도 요즘 ’21세기의 여행 인문학’이라는 자체 과정을 통해 과잉 관광과 젠트리피케이션 등 지속가능한 여행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사례를 이야기할 때마다 모든 수강생 분들이 놀라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는 오버 투어리즘이나 관광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큐를 통해 오히려 제가 수업에서 소개한 사례는 관광의 수많은 부작용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안을 대거 보완해야 할것 같네요.
이제부터 제가 해야 할 일, 해야 하는 여행에 대해 총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된 다큐인데요. 이 쪽 일을 계속 하실 분들이나, 나의 여행이 사회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라는 여행자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다큐입니다. 널리 추천하고 싶지만 국내에서는 시청할 채널이 없어서 히치하이커 밋업으로 상영회를 열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영어 자막 버전이라도 보실 분을 위해, 애플TV와 구글 플레이의 링크를 추가합니다. 애플TV는 미국 계정으로만 접속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