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관광 마케팅 분야에서 컨설팅과 강의, 업계 종사자 교육을 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오늘은 마케팅에 대해 시급한 3가지만 좀 짚어 보려고 한다. 생각 나는대로 계속 연재해 보기로.
[인트라바운드] 로그인하는 뉴스레터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뉴스레터란, 말 그대로 이메일로 수신받는 소식지다. 전 세계 관광청들도 모두 뉴스레터를 적극 활용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직업상 주한 관광청이 만드는 뉴스레터부터, 공식 관광청의 표준화된 영문 뉴스레터까지 다양한 국가와 도시의 관광 홍보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있다. 그런데, 그 어느 나라에도 로그인을 해야 내용을 열람할 수 있는 뉴스레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 하나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공식 뉴스레터 ‘가볼래터’는, 굳이 문자로 업데이트를 알린다. (이것도 매우 짜증이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문자 속 링크를 클릭하면 간단한 선호도 테스트를 한다. 근데 테스트 결과 및 뉴스레터 내용을 보려면 ‘투어원패스’ 로그인을 하라고 나온다. 구독 첫 달에는 뉴스레터 내용만은 확인해야 하니, 억지로 가입하고 로그인해서 들어갔다. 그 이후로 1년이 넘게 가볼래터의 문자를 받아오면서, 단 한번도 링크를 다시 클릭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이건 사용자 경험의 관점에서 엄청난 실수다.
IT 스타트업에서 사회생활 초창기를 보내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는데, 사용자를 귀찮게 하는 그 어떤 서비스도 멸망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여행 스타트업을 컨설팅하면서 항상 하는 이야기도 사용자의 진입 단계를 가능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서비스 운영하는 모든 분들은 공감하시리라. 하물며 오늘도 메일함에 ‘안 읽은 메일’이 백만 통인데, 로그인까지 하면서 봐야 하는 뉴스레터? 대체 뉴스레터에 로그인을 연결하는 베짱 좋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건지 궁금하다.
공공기관에서 정보성 뉴스레터를 운영하면서 회원 가입을 통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면, 그 공공데이터의 가치가 일반 시민에게는 어떻게 돌아오는지 궁금하다. 이 통계치를 기반으로 더 좋은 뉴스레터를 만든다고? 일단 로그인때문에 안보게 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이런 ‘고급’ 데이터 안 모으고도 몇 배는 알찬 국내여행 레터가 널렸는데 왜 소비자가 굳이 이걸 구독해야 하는가.
[인바운드] 우리가 사랑받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
한국관광공사의 ‘한국의 리듬을 느껴보세요!(Feel the Rhythm of Korea)’ 21년~22년 초까지의 캠페인은, 지금까지 한국이 해온 모든 국가 브랜드 캠페인 뿐 아니라 전 세계 통틀어 가장 훌륭했던 사례로 꼽고 싶다. 여러 분석이 있겠으나, 나는 한류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우지 않은 캠페인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높아진 한국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한국인의 새로운 정체성과 자부심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한 영상미와 만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동안 한국은 ‘전통 문화’ 아니면 ‘한류와 유명인’에 의존해 우리를 설명하고자 했다. 관광시장에 스스로를 어필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긴 시간동안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바뀌고, 시절이 변했다. 전 세계 MZ세대가 실시간으로 유행을 공유하는 지금, 그들이 우리를 먼저 발견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소비하려고 온다. 팬데믹 때 넷플릭스 보면서 저장해 두었던 위시리스트를 가지고 한국에 와서, 이전보다 길게 머물고 ‘한국인처럼’ 소비하는데 거의 모든 예산을 쓴다. 한국의 ‘어디’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오는 지금의 관광 행태 중심에는 ‘한국인처럼’이라는 대명제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현지인st 소비에 만족하지 않고, 현지인과 점점 더 거리감없는 여행을 원한다. 저멀리 별에서 온 ‘한류 셀럽’ 말고, 평범한 우리 일상과 로컬적 특색을 궁금해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애써 무시한 채, 다시 쉽고 편한 유명인사의 얼굴로 우리를 설명하려는 모양새다. 약 2년 전부터 국가와 수도 홍보 영상에는 또다시 한류 셀럽이 전면에 등장하고, 생활문화와 지역적 특색을 조명한 콘텐츠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또 다시, ‘명소’ ‘장소’ 위주의 옛날식 관광자원 소개가 이어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안물안궁 정보인데다, 한국인 입장에서도 더이상 유명인이나 유형 자원으로 한국 관광을 홍보하려는 시도는 자부심을 안겨주지 않는다. 이젠 조금 부끄럽기까지 하다.
전 세계 관광청이 로컬피플의 문화에 주목해서 관광 콘텐츠를 재편하고 있다. 요즘은 ‘당신의 열정을 발견해 보세요‘라며 다양한 직업인들이 로컬 장소를 소개하거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당신도 와서 살아보세요‘와 같이 삶의 질이 만들어내는 내재적 가치를 내세우는 나라가 많다. 먼저 우리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어야, 그에 맞춰 유무형의 관광 자원을 재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리듬 캠페인 때 만들어진 마이크로 사이트가 무형의 정체성과 유형의 자원을 트렌디하게 잘 연결한 콘텐츠를 담고 있어서 책에도 소개했었다.(지금 남아있는 BTS 사이트 말고 그 전 버전) 사실 그 정도 퀄리티의 사이트가 글로벌 공홈이 되어야 하지만…찾아보니 이미 없어진듯.
[워케이션] 우리는 못하지만, 너희들은 오세요. 아참! 구글맵이랑 우버는 안됨.
최근 구독중인 미국의 유튜버가, 오사카 워케이션을 마치고 이번에는 서울에서 워케이션한 영상을 업로드했다. 너무너무 반가웠지만, 첫 화면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그는 한국 여행의 필수 어플로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 택시’를 소개했다. 이걸 본 순간, 우리가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의 대표 아트 행사를 유치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2022년 프리즈 서울이 생각난다. 당시 외신에서는 서울의 불완전한 구글맵과 우버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전 세계 갤러리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서울이)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이스탄불 갤러리의 Moiz Zilberman은 박람회가 “홍콩만큼 국제적이지 않다”고 언급했다. 언어 장벽이 있었고, 구글 지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박람회에 갈 택시가 충분하지 않았다. (출처: 프리즈 서울 이후… 한국 미술시장은 어떤 장벽을 넘어야 하나? )
구글맵 대신 에이맵을, 우버 대신 디디를 깔아야 하는 중국과 우리의 관광 인프라는 무엇이 다른가? 전 세계 외국인이 로컬 앱 설치 안하면 기본적인 이동조차 못하는 나라가 지금 전 세계에 몇이나 되는가? ‘스마트 관광’? 대체 어떤 소비자를 위한 스마트 관광인지 궁금하다.
실제로 외국인이 한국에 머무는 기간은 팬데믹 이전보다 길어졌다. (기사) 일과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리모트 워커가 전 세계적으로는(한국 빼고) 늘어나는 추세이며, 이렇게 불편한 인프라를 감수하고서라도 서울을 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체류형 여행자가 늘어날 수록, 한국이 보여주고 싶은 화려한 포장은 빠르게 벗겨지고 날것의 ‘한국인의 삶’은 실시간 여행 콘텐츠로 더 많이 유통될 것이다. 알량한 인증샷 몇 장으로 낚시 마케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체류 중에 많은 한국인들과 친해진다면,(위에 언급한 유튜버도 1주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수많은 한국인과 교류한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삶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내가 체류형 여행자를 만났다면? ‘당신은 리모트를 허용하지 않는 노동 환경을 가진 나라에 리모트를 하러 오셨다‘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
며칠 전 발표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주 80시간 이상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진국들이 주 40시간 일한다고 데모할 때, 주 52시간도 참을 수 없어 더 늘리려는 나라가 2024년부터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를 도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즉 대다수 한국인에게 리모트 따위는 사치지만(팬데믹 이후 한국의 기업들은 리모트 근무를 대부분 없앴다), 이런 한국에 와서 돈만 오래 써줄 리모트 워커들은 기꺼이 오시면 되겠다. 아참, 글로벌 서비스는 대부분 잘 안되니 카카오 네이버 앱 사용법은 필수로 공부좀 하고 오시고.
지금의 관광산업, 관광 마케팅은 그 나라 사람들의 실제 ‘삶의 질‘로부터 출발한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사실 이 한 마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