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여행하라(Work and Travel).”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들의 슬로건입니다. 디지털 노마드는 더 오래 머물고 많은 금액을 지출하는 ‘체류형 여행자’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국가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10월 한 달간 디지털 노마드가 일하면서 여행하는 프로그램 ‘코리브 후쿠오카(Colive Fukuoka)’의 하이라이트 행사, ‘월드 노마드 컨퍼런스(World Nomad Conference)’에서는 각국의 디지털 노마드 유치 전략이 공개됐습니다. 특히 이번 컨퍼런스에는 ‘설레는 인생정리’ 저자이자 세계적인 정리 컨설턴트인 곤도 마리에가 특별 강연자로 나서면서 더욱 화제를 모았습니다. 컨퍼런스의 생생한 현장을 히치하이커닷컴이 다녀왔습니다.
후쿠오카의 디지털 노마드 전략, ‘코리브 후쿠오카’
‘코리브 후쿠오카’는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들이 한 달간 후쿠오카에 머물며 일과 여행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후쿠오카시와 민간이 협력하여 진행했으며, 참가자들에게는 다양한 여행 할인 혜택이 제공됩니다. 특히 3일간 진행된 월드 노마드 컨퍼런스는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흩어져 일하고 있던 코리브 후쿠오카의 참가자들이 모처럼 한 장소에 모여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자리여서 무척 활기찬 분위기였습니다.
후쿠오카시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도시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했습니다.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부 관계자들은 영어로 진행한 개회사에서 “후쿠오카는 공항과 항구를 모두 갖춘 컴팩트 시티”라며 “1시간 이내에 도시 어디든 갈 수 있는 편리한 교통망을 자랑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엔지니어를 위한 특별 비자 프로그램과 무료 엔지니어 카페 운영 등 테크 인재 유치를 위한 정책도 소개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의 특별 강연자로 나선 곤도 마리에는 디지털 노마드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독특한 정리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시간과 장소를 섬세하게 선택하고 이동하는 것이 노마드의 핵심 습관”이라며 “당신의 워크스타일을 먼저 상상하고, 그에 맞춰 물건과 공간을 정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특히 끊임없이 이동하는 노마드들이 겪을 수 있는 감정적 취약성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정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참고로 이 행사에는 서구권 노마드가 많이 참석했기 때문에, 넷플릭스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곤도 마리에를 섭외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 세계 주요 국가의 디지털 노마드 전략
에스토니아: 디지털 선진국의 면모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 최초로 ‘e-Residency’ 제도를 도입한 국가입니다. 99%의 공공 서비스를 디지털로 처리할 수 있으며, 특히 유럽 연합 내에서의 세금 처리를 디지털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다만 월 4,500유로의 비교적 높은 소득 인증이 필요하며, 에스토니아 외교관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는 허들이 있습니다.
필리핀: 휴양지형 원격근무 천국
필리핀은 DICT(정보통신기술부) 주도로 ‘베어풋(barefoot) IT’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휴양지로서의 매력을 앞세워 원격근무지를 홍보하고 있으며, 이미 시아르가오 등지에서 노마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첫 필리핀 디지털 노마드 서밋을 개최하며 본격적인 노마드 유치에 나섰습니다.
말레이시아: 가족 동반 가능한 포용적 비자
말레이시아는 정부 디지털경제부 산하에 ‘DE Rantau’ 패스를 도입했습니다. 초기에는 IT 종사자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최근 비 디지털 직종으로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특히 가족 동반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다만 3개월 이상의 고용계약 인증이 필요하며, 서류 미비로 인한 반려가 많은 것이 현재의 과제입니다. 오는 12월에 대대적인 노마드 컨퍼런스를 열 예정이라고 하네요.
이외에도 태국 치앙마이의 ‘알트 치앙마이’ 운영자가 모더레이터로 한 토론에서 한국, 대만, 일본의 디지털 노마드 커뮤니티 창립자들이 나눈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각국의 디지털 노마드 유치 전략은 그 나라가 원하는 인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요. 태국이 ‘버짓 노마드(budget nomad)’를 타깃으로 한다면, 한국은 K-pop, 크립토, 테크 분야에 관심 있는 노마드를, 일본은 음식과 문화, 자연을 즐기는 논-디지털 노마드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최근 부산에서 26개국 이상이 참여했다는 노마드 프로그램(코리브 후쿠오카와 유사한 1달 프로그램)의 성공을 바탕으로 상설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다만 국내에 위치한 대부분의 코워킹 시설과 보조금 제도가 한국인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하네요. 이 부분은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코워킹 시설은 한국인이 아니면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마치며
이번 후쿠오카의 월드 노마드 컨퍼런스는 미래의 워크스타일을 선도할 디지털 노마드들의 니즈와 각국의 대응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다만 앞에서 지적한 제도적인 개선도 물론 필요하지만, 한국의 내국인들도 디지털 노마드로 전환하여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자연스럽게 외국의 체류형 여행자를 유치할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행사 참관 외에도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후쿠오카의 여러 장소와 호텔을 경험하는 중인데요. 이미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는 이들의 비중이 높은 일본에는 코워킹과 코리빙을 위한 인프라가 너무나도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경제규모 25조엔, 1500만명의 1인 CEO, 일본의 프리랜서 시장 이번에 다녀온 곳들은 곧 유튜브 ‘히치하이커TV’에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이제부터 디지털 노마드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은 앞으로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고, 각국의 현황을 보니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를 도입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번 후쿠오카와 같은 노마드 컨퍼런스 개최를 준비하고 있어서 차별화도 반드시 필요한 단계로 접어 들었는데 언제까지 내국인은 출퇴근 지옥, 외국인은 디지털 노마드로 각각 존재하는 사회여야 하는지 반문이 들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워크 스탠다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야 해외여행 문화도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