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은 내 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해당 국가의 문화를 담고 있으면서 일상에도 쓰임새가 있는 제품과 잡화류,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을 여행의 핵심 일정으로 둔다. 또한 현지에서 발견한 아티스트나 장인들의 제품과 로컬 브랜드를 탐구하는 과정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여행에서 ‘진짜’ 살만한 현지 상품을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의 해외여행에서 가장 쉽게 노출되는 상품은 ‘여행 기념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단체 여행에서는 현지 문화와 괴리된 ‘라텍스와 침향’으로 상징되는 쇼핑이 소중한 여행 시간을 잡아먹을 정도로 포진해 있고, 관광객을 겨냥한 동남아시아의 야시장에서는 양산형 기념품과 저렴한 옷이 모든 가게에 동일하게 걸려있다. 이처럼 여행지에서의 쇼핑이 단순한 소비에 그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여행지에서 무엇을 사고 어떻게 소비할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 분명 있다. 히치하이커닷컴은 이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몇 가지 힌트를 소개한다.
기념품 시장의 산업화: 그저 ‘소유’가 목적이 된 양산품
2월 17일 보도된 BBC 칼럼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만 기념품 산업 규모가 210억 달러(약 27조 원)에 달할 정도로, 기념품은 여행산업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기념품 시장이 산업화되면서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하지 않는 대량 생산 제품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태국의 전통적인 코끼리 바지가 실제로는 태국이 아닌 해외에서 제작되거나, 호주에서 판매되는 원주민 기념품 중 75%가 사실상 가짜라는 점은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대량 생산과 유통 구조는 결국 진정한 로컬의 가치를 소비자가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시장 논리로 설명될 수도 있겠지만, 여행 소비자의 구매 목적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행지의 기념품 가게에서 같은 상품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꼭 필요하지 않아도 ‘내가 그곳에 다녀왔다’는 증명의 심리를 겨냥한 제품들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물론 기억을 되새기고, 감정을 환기시키기 위한 쇼핑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념품을 구매할 때 단순한 기억의 소유를 넘어서, 내 삶에 어떤 가치를 하는 제품인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하지만 저렴한 기념품을 그저 ‘소유’하는 것만이 목적이 되면, 단가를 낮추고 타국에서 대량 생산한 제품을 들여오는게 현지인이 정성들여 만든 제품보다 더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전 세계에서 중국산(또는 더 저렴한 생산국) 제품만 영원히 구매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아마존의 실패: 디지털 플랫폼이 담지 못하는 장인 정신
그렇다면 가장 ‘진짜’ 로컬 문화 제품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인도를 꼽을 수 있다. 인도의 수공예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인도 전역에 무려 2억 명의 장인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시장을 포착한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이들을 셀러로 입점시키는데 열을 올리는 중이다. 2017년 론칭한 아마존의 장인 플랫폼 아마존 카리가르(Amazon Karigar)로 현재 160만 명의 판매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월마트가 운영하는 플립카트(Flipkart)의 사마르트(Samarth) 프로그램 또한 2023년에만 150만 명의 판매자를 확보했다. 이들 플랫폼은 인도의 전통 공예품을 디지털화하여 세계 시장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실제 판매량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현지 장인들의 반응은 냉담하다고 한다. 아마존은 이들의 제품을 단순한 온라인 판매 상품으로 분류해서 보여줄 뿐, 그것이 지닌 문화적 맥락이나 수공예의 독창성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전통 바틱 염색 기술을 활용하는 인도의 한 장인은 아마존에서 제품을 판매하려 했지만, 플랫폼이 자신의 제품을 기계 생산된 일반 의류와 동일하게 취급하면서 전혀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문화적 맥락이 담긴 수공예품은 단순한 디지털 전환으로는 소비자와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념품 쇼핑을 여행 경험 비즈니스로 전환하다, 바와
위에서 살펴본 인도 장인 시장과 소비자의 괴리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관광 비즈니스 사례로, 바와(VAWAA, Vacation With An Artist)라는 기업을 오래 전부터 지켜보고 있다. 바와는 여행자가 직접 현지 예술가나 장인의 작업실에서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기술을 배우고 작품을 만드는 경험을 제공하는 여행 플랫폼이다.
바와는 인도계 여성 창업가인 기티카(Geetika)가 창립한 플랫폼이다.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인도 라자스탄과 타밀나두 지역에서 현지 장인들과 협업하며 수공예의 가치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후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이러한 장인들과의 교류를 원했지만, 여행 중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는 2015년 미국 뉴욕을 오가던 삶을 정리하고 12개월 동안 12개국을 여행하며 사업의 기초를 다졌다. 각국을 방문하며 지역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작업 환경을 이해한 후, 여행자들이 직접 장인의 공방에서 배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구상했다.
그렇게 탄생한 바와는 여행자가 직접 예술과 공예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행자가 인도에서 바틱 염색을 배우고 직접 만든 천을 가져오거나, 일본에서 칠기 공예를 체험하며 그 작품을 가져오는 것은 단순한 기념품 구매와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 된다. 이러한 방식은 여행자가 현지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더 의미 있는 기념품을 만들고, 지역 사회에도 지속 가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바와는 20개국 이상에서 100명 이상의 예술가와 협업하며, 참여한 여행자들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문화적 교류를 경험하고 있다.
여행 기념품의 재정의: 무엇을 살 것인가
결국, 여행지에서의 쇼핑은 우리의 여행 경험을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기회다. 대량 생산된 제품을 무심코 구매하거나 단체 관광에서 정해진 쇼핑 코스를 따르던 과거의 관성을 넘어야 하는 이유는 여행자가 전 세계 곳곳에 미치는 환경적, 사회적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현지에서 무엇을 소비하는지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행한 곳의 문화를 이해하고,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여행지에서의 쇼핑이 현지의 가치를 경험하고 우리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과정이 될수록 여행의 질도 더 높아진다. 우리가 어떤 쇼핑 여정을 여행에 포함시킬지에 따라, 기념품 쇼핑은 단순한 소비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문화적 연결이 될 수 있다. 또한 공급자 입장에서도, 이를 연결하고 제안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여행 비즈니스도 더 많이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