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의 출발점은 타이어 회사가 제품 판매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이었다. 자동차 여행의 활성화를 위해 만들었던 작은 책자가 1900년에 탄생했고, 이는 100년이 지나 미식의 권위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특정 산업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경험 콘텐츠를 브랜드가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는 전략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단, 그 시도가 얼마나 정교하고 오랜 시간 지속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포르쉐는 이 점에서 독보적인 지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1996년부터 ‘포르쉐 트래블 익스피리언스(Porsche Travel Experience)’라는 별도의 사이트에서, 자사의 차량 운행으로 기획한 럭셔리 드라이빙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포르쉐를 타고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달리고 지역 미식을 즐기며 고급 호텔에서 묵고 큐레이션된 문화체험을 하는 몰입형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대단히 수준높은 여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지금의 여행 소비층, 특히 MZ세대가 선호하는 감각적이고 몰입적인 여행 트렌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국내에서는 포르쉐의 여행상품 마케팅 전략에 대해 분석한 글이 전무해서, 히치하이커닷컴은 포르쉐 트래블 익스피리언스가 여행업계에 던지는 시사점을 정리했다.

자동차는 ‘여행의 수단’에서 ‘여행의 주인공’이 된다
포르쉐 트래블 익스피리언스는 포르쉐라는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을 그대로 여행상품에 녹여낸 모델이다. 고객은 차량을 ‘타본다’는 수준을 넘어, 그 성능과 감성을 여행으로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예컨대 알프스의 고갯길이나 크로아티아의 해안길, 나마비아 사막을 911로 달리는 경험은 단순한 주행이 아니라, 차량이 설계된 이유를 직접 체감하는 여정이다.
이러한 몰입형 체험은 MZ세대가 추구하는 ‘나만의 감각적 경험’과 ‘SNS 공유 가능한 비일상성’이라는 키워드와 정확히 일치한다. 단순히 유명지를 방문하거나 사진을 찍는 여행이 아니라, 특정 브랜드의 세계관과 함께 하는 여행에 큰 예산을 지불하는 것이다. 또한 이전에 작성했던 MZ세대는 럭셔리 여행 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의 여행 소비자는 평소 몰던 차보다 더 상위 차종을 여행에서 렌트하려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 또한 여행 마케팅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전 세계 여행상품은 무려 42개나 되는데, 이들 여행상품에서 주로 보여지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 숙소는 모두 포르쉐 철학에 맞춘 디자인 감각을 지닌 고급 호텔
- 식사는 해당 지역 최고의 셰프들이 선보이는 지역 특선 메뉴로 선별
- 액티비티는 문화, 예술, 모험 요소가 조화된 맞춤형 프로그램
- 차량은 여행지마다 맞춤형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가이드 차량이 인솔.
이런 완결된 기획은 단순한 체험 행사가 아니라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독립된 ‘럭셔리 여행 비즈니스’라 할 수 있다. 즉 포르쉐는 고객에게 단순히 자동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중심으로 여행이라는 고부가가치 콘텐츠를 설계하고 판매하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
마치며
포르쉐의 사례는 여행업계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기존의 여행업은 공급을 조합하고 상품을 유통하는 데 집중해왔다. 항공, 호텔, 액티비티, 교통편을 묶고 최적의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업계의 경쟁자는 단순한 가격 경쟁을 하는 여행사나 OTA가 아니라,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감각적 경험 설계에 강한 기업들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포르쉐가 보여주는 여행상품처럼, 기존의 여행상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교한 큐레이션과 몰입형 경험 설계를 제공하게 되면 소비자는 그게 여행사냐 아니냐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책 <여행의 미래>에서부터 누누히 지적해 왔듯이 여행은 더 이상 여행업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나의 테마에 대한 선호도와 철학, 몰입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입체적인 경험은 이제 개별 브랜드가 훨씬 더 잘 설계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여행업계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나 관광지와 숙소를 묶는 경로 설계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되기 어렵다. 경험을 기획하고 감각을 설계하는 역량, 그리고 그것을 일관된 세계관 안에서 완결하는 능력이야말로 여행업계에 요구되는 새로운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