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지자체들이 ‘관광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역사 자원을 박제하는 행태가 임계점에 도달했다. 수백억 원을 들여 무너진 성곽을 다시 쌓고, 고증조차 불분명한 위인의 생가를 복원하는 일은 이제 지방 행정의 표준 공식이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역사적 유산이 과연 여행자의 ‘다시 방문할 이유’가 되고 있는가?
현대의 여행자는 그 지역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삶의 방식’을 경험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자체들은 모든 역사적 흔적을 천편일률적인 관광지로만 치환하려 하며, 심지어는 맥락 없는 조형물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히치하이커는 역사 자원을 관광 자원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현재 지자체들의 낡은 관광 정의와 그 대안을 생각해 본다.
모든 역사 자원은 관광 자원이 될 수 있을까?
최근 한 지자체의 관광 역량 과정에 의뢰를 받았는데, 우리 지역 관광 자원을 ‘소개’하는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한 여행지 정보를 절대 강의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미스 매치 섭외가 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출강하던 기관이고 해당 지역에 대해 공부해볼 기회라고 생각해 수락했다.
그런데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해당 지역의 주요 관광 자원 대다수가 여전히 수십 년 전의 ‘역사 자원화’ 공식에 머물러 있었다. 또한 내 강의가 끝난 뒤 현장학습 장소로 선정된 곳들 또한 오늘날의 여행 트렌드나 로컬 브랜딩의 역동성과는 무관한 역사 유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이 탐방지들은 관광 자원이 아니라 역사 자원일 뿐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실제로 탐방지 두 곳 모두 관광객들의 발길이 매우 뜸하고 지역 주민들이 산책으로나 찾는 곳이며, 둘중 한 곳은 인지도마저 제로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특히 이 과정은 작년에 진행한 부산시의 ‘인사이트 리서치’ 현장 탐방과 너무나도 수준 차이가 났다. 부산에서는 6급 이상의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내 트렌드 강의 이후 부산에서 가장 핫한 플레이스들을 탐방했다. AI 기반의 스마트 모빌리티 2가지를 체험한 후 아모레 부산에서 AI 피부측정을 했으며,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코워킹 오피스에서 전체 탐방 과정에서 느낀 인사이트를 마인드맵화 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심지어 이 과정은 관광 역량 강화도 아니었고 리더십 과정이었는데도 전문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공공기관이라고 다 똑같이 고루하고 안이하게 교육을 설계하는게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지역 관광 자원을 재정의한 지역들만 현재 성공 중
‘역사적 가치’가 곧 ‘관광적 매력’이라는 공식은 이미 유효기간이 아주 예전에 끝났다. 지자체는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고 물리적 실체를 재현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그것이 현대 여행자의 관광 라이프스타일과 어떻게 연결될지에 대한 고민은 전무하다. 소위 지역 별로 ‘관광지’로 지정된 곳들이 정작 여행자들에게는 ‘지루한 박물관’으로 전락해 파리만 날리는 이유다.
반면, 현재 가장 강력한 관광 동력을 가진 지역들은 관(官)이 역사 자원을 만지는 곳이 아니라, 민간(民間)이 로컬의 일상을 상품화하는 곳이다. 에어비앤비(Airbnb) ‘체험(Experiences)’ 카테고리에서 수천 개의 리뷰를 기록하며 글로벌 여행객을 사로잡는 상품들은 역사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서울의 ‘한양도성 달빛 하이킹’은 지자체의 공식 투어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다. 전 세계에서 서울을 찾은 여행자들은 박제된 역사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성곽길을 따라 조깅하는 서울 시민들의 밤 풍경과 그 속에 녹아든 크리에이터의 사적인 서사에 열광한다.
특히 지자체의 치적 쌓기용 ‘흉물 조형물’은 낡은 관광 정의가 낳은 최악의 결과물이다. 최근 보도된 사례들은 지자체가 관광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고령군은 대가야의 기상을 표현한다며 6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거대한 말머리 조형물을 세웠으나, 주민들로부터 무섭다는 민원을 받고 구석진 곳으로 옮겨졌다. 포항은 과메기를 홍보한다며 3억 원을 들여 꽁치 꼬리 조형물을 만들었지만, 비행기가 추락하는 듯한 형상이라는 비판 끝에 결국 철거되었다.
이는 지역의 역사와 맥락을 무시한 채‘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만 있으면 관광객이 올 것이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이 낳은 예산 낭비다. 지자체가 콘크리트와 청동으로 흉물을 연성할 때, 민간은 로컬의 작은 골목과 이야기에 주목하며 진짜 ‘자원’을 발굴하고 있다.
성공하는 지역 관광의 공통점은 ‘자원’이 아닌 ‘사람’과 ‘연결’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부산 영도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자체가 수십 년간 방치했던 낡은 수리 조선소와 공업소 단지는 관의 관점에서 보자면 철거 대상이거나 낡은 방식의 산업 역사 박물관으로나 치환되었을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을 살린 것은 지자체의 토목 공사가 아니라 민간 크리에이터들의 감각이다. ‘무명일기’나 ‘RTBP’ 같은 플레이어들이 거친 산업 유산을 ‘힙한 라이프스타일’로 재정의하면서 영도는 로컬 브랜딩의 성지가 되었다. 지자체가 ‘역사’라는 이름의 콘크리트를 쏟아부을 때, 지역의 크리에이터들은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여행자와 로컬 사이의 ‘관계’를 설계했다.
관광의 정의를 ‘역사 자원의 전시’에서 ‘로컬 콘텐츠의 소비’로 대전환해야 한다. 제주도 역시 지자체가 운영하는 해녀 박물관은 정적인 전시에 머물러 있지만, 민간 플랫폼에 입점한 ‘해녀와 함께하는 물질 및 하도리 다이닝 체험’은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한다. 이처럼 민간이 강한 지역들만이 현재 관광 시장에서 실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반면, 여전히 역사 자원을 관광지로 치환하는 데만 급급한 지자체들은 트렌드와 역량 강화라는 본질에서 멀어진 채, 거대한 예산이 투입된 ‘유령 관광지’만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 그런 지역일수록 지역 관광을 담당하는 공무원 역량 강화 과정도 똑같이 한계에 부딪히는 악순환만 반복된다.
마치며
관광은 더 이상 박제된 과거를 구경하는 행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를 향유하는 활동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 가치가 있으면 당연히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는 해묵은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자체가 역사라는 이름의 장벽 뒤에 숨어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리거나 맥락 없는 조형물로 치적 쌓기에 골몰할 때, 여행자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확실한 취향을 가진 로컬 크리에이터의 뒤를 따라 한국 지도 위를 걷고 있다.
낡은 관광의 정의를 고수하는 지자체에 미래는 없다. 이제는 ‘얼마나 화려하게 복원했는가’를 자랑하는 대신, ‘우리 지역에 얼마나 많은 민간 크리에이터가 플랫폼 위에서 활약하고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역사’를 ‘라이프스타일’로, ‘자원’을 ‘사람’으로 치환할 수 있는 유연함만이 소멸해가는 지역 관광을 구원할 유일한 열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