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글로벌 여행 미디어 시장은 대형 호텔 체인의 광고성 기사 콘텐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 흐름 속에서 대형 리조트나 체인 호텔을 과감히 배제하고, 오직 ‘부티크 호텔’만을 전문적으로 조명하며 독자층을 사로잡은 독립 미디어가 있습니다. 바로 ‘호텔스 어보브 파(Hotels Above Par, 이하 HAP)’입니다.
팬데믹 때 해고 통보를 받은 20대 청년 브랜든 버크슨(Brandon Berkson)이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시작한 이 미디어는, 불과 수년 만에 50만 명 이상의 단단한 팬덤을 확보한 미디어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히치하이커는 전 세계의 독특한 여행 미디어를 탐구하는 기획의 첫 시작으로, HAP의 차별화 전략과 비즈니스적 의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부티크 호텔만 다루는 미디어, 어떻게 창업했을까?
1단계. 커리어의 시작점과 업계 이해도 확보
스키프트(Skift)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창업자 브랜든 버크슨은 자신의 커리어 성장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과거 샌프란시스코의 미스틱 호텔에서 벨보이와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었던 그는 애초에 호텔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 셈입니다. 고객을 응대하고,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에게 직접 도시를 소개하는 경험을 쌓으며 호텔 산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전체적인 시각을 길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런던과 뉴욕의 PR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며 소셜미디어 운영, 미디어 리스트 작성, 피칭(Pitching) 전략 등을 익혔습니다. 이러한 퍼블리시티(PR)적 마인드는 단순히 ‘좋은 글’을 쓰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열광하고 반응할 만한 ‘훅(Hook)’과 ‘뉴스성’을 기획하는 비즈니스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2단계. 팬데믹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전환 (사이드 허슬에서 시작)
팬데믹 시기 뉴욕 PR 회사에서 일하다가 해고 통보를 받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본가인 샌디에고로 돌아가 남는 시간에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를 쏟아붓고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한 것이 ‘호텔스 어보브 파’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여행이 불가능해 답답함을 느끼던 대중에게, 멋진 독립 호텔을 발굴하는 콘텐츠로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바이럴을 이끌어냈습니다.
3단계. 본업과 사이드 허슬의 병행과 과감한 전업(Full-time) 전환
상황이 조금 나아진 후 다시 PR 회사로 복귀하여 낮에는 본업, 밤에는 미디어를 운영하며 하루 15시간씩 일하는 극한의 병행기를 거쳤습니다. 이후 저축을 통해 웹사이트와 뉴스레터를 런칭할 자금을 마련했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넘어선 명확한 팬층과 가능성을 확인한 뒤 과감히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본격적인 사업화에 뛰어들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에 남는 것과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사이에서 “만약 이 도전을 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인가”라는 기준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해요.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열정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현장 경험(벨보이) + 마케팅/PR 역량(에이전시) + 시장의 타이밍(팬데믹 시기의 위로와 방랑벽 자극) + 철저한 데이터 기반 실행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독립된 미디어 비즈니스로 안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통 미디어와 크리에이터 미디어의 한계를 넘어선 핵심 전략
1. 소셜 미디어는 입구일 뿐, 핵심 자산은 ‘뉴스레터’
HAP의 전략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바로 미디어 퍼널 구조인데요. 현재 한국에서는 인스타그램에서 카드 뉴스형 콘텐츠로 미디어를 운영하는 소위 ‘인스타-매거진’이 대세를 이룹니다. 그래서 저는 인스타에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HAP도 인스타 매거진 류의 미디어라고 생각했는데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창업자인 브랜든은 인스타그램을 최초 유저를 끌어오는 ‘상단 퍼널(Top of funnel)’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알고리즘 변화에 따라 노출이 출렁이는 소셜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매주 발송되는 뉴스레터를 통해 독자 자산을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시작한 관심사를 깊이 있는 장문 콘텐츠가 담긴 메일로 흡수하여, 플랫폼의 정책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강력한 수익 기반 및 충성 독자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의 핵심 지표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아니라 뉴스레터 오픈율(무려 65%에 이른다고!), 실제 클릭률, 독자들의 DM과 댓글에서의 ‘깊이 있는 대화’를 중심으로 측정한다고 합니다. 매니챗과 같은 자동화 툴을 적극 활용해 독자의 질문과 피드백에 응대함으로써 독자를 충성도 높은 커뮤니티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2. 고비용 고급 잡지 대신 선택한 ‘아날로그 신문(Quarterly Newspaper)’의 반전
제가 본 이 미디어의 가장 영리한 비즈니스 시도는 종이 신문 포맷을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아직도 대다수 여행 미디어가 과도한 인쇄·제작 비용이 들어가는 잡지 형태를 고수하는 반면, HAP는 레거시 언론의 클래식한 감성을 살린 신문 포맷을 선택해 분기 별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작 및 유통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면서도, 아날로그적 소장 가치와 시각적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이렇게 제작된 신문은 멤버십 클럽, 독립 서점, 부티크 호텔 등에 배포되어 온라인을 넘어선 오프라인 브랜드 경험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전략이 영리한 이유는 호텔업계가 여전히 ‘레거시’한 미디어를 신뢰하고 협업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HAP는 인스타 프로필에 스스로를 ‘Digital & print magazine’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요. 이 지점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및 기존 미디어 모두와 차별화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3. 현지 전문 저널리스트 네트워크 중심의 ‘직접 취재 원칙’
크리에이터 중심 미디어가 가진 한계 중 하나는 1인 제작자의 시각이나 협찬성 단발 리뷰에 의존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HAP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뉴욕타임스(NYT), 보그(Vogue) 등 유수 매체 출신의 저널리스트 45명 이상으로 구성된 글로벌 컨트리뷰터(기고자)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것도 흥미로운 지점인데요, 홍보 회사에 다닐 때 알고 지냈던 여행 에디터들이 팬데믹 때 직장을 잃자, 자신의 미디어에 기고를 권하면서 자연스럽게 필진을 영입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전 세계 현지에 거주하는 검증된 필진이 직접 방문하여 취재한 부티크 호텔 및 도시 가이드는 정보의 정확성과 전문성을 입증합니다. 저널리즘의 품질과 플랫폼의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한 에디토리얼 모델입니다.
4. 창업자의 취향과 현장 경험이 검증한 ‘개인적 럭셔리 스테이’ 리스트
인터뷰에서 창업자 브랜든 버크슨은 HAP의 큐레이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인의 개인적 추천 호텔 목록을 공개했습니다. 디자인과 로컬리티가 뛰어난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의 신상 부티크 호텔 까사 안젤리나(Casa Angelina)를 여러 번 언급했고요. 인도 스타일의 품격 있는 서비스를 보여주는 타지(Taj) 계열 호텔, 그리고 독창적인 독채형 경험을 제공하는 인도의 포스트카드(Postcard) 호텔 등을 최상의 만족을 준 공간으로 언급했습니다.
화려함만 강조하는 정형화된 5성급 체인이 아닌, 독창적인 디자인 스토리와 세심한 서비스가 결합된 독립 공간을 골라내는 그의 정교한 안목은 HAP 미디어 전체의 콘텐츠 퀄리티를 담보하는 강력한 미디어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여러 모로 히치하이커에서도 벤치마킹할 요소가 너무 많은 미디어입니다.
마치며: 취향의 시대와 결을 함께 하는 여행 미디어
호텔스 어보브 파의 성공은 단순한 운이나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닙니다. 호텔 현장(벨보이)에서 시작해 PR 에이전시를 거치며 다져진 창업자의 산업 이해도, 그리고 대중성이 아닌 ‘확실한 취향’을 가진 니치(Niche) 시장에 집중한 정밀한 타겟팅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광범위한 미디어가 힘을 잃어가는 지금, HAP의 사례는 독보적인 컨셉 설정, 오프라인과 온라인 데이터의 감각적인 결합, 그리고 독자 및 필진과의 진정성 있는 관계 형성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미디어 비즈니스를 만드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