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어트, 힐튼, 하얏트, IHG 등 글로벌 호텔 공룡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장기 체류(Extended Stay)’ 및 ‘브랜드 레지던스’ 사업을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찍었다. 과거 여행업계에서 호텔이 잠시 머무는 ‘단기 숙박 시설’의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일상과 일, 휴식이 결합된 ‘체류 및 거주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소비자의 여행 행태와 라이프스타일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데 있다. 관광명소를 쫓아다니던 ‘체크리스트형 관광’의 시대가 저물고, 한 지역에 머물며 삶을 영위하는 ‘체류형 여행’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히치하이커는 소비자의 변화를 발 빠르게 포착한 글로벌 호텔업계와,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갇혀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국내 여행업계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현 여행·호텔 시장의 지각변동을 깊이 있게 진단해 본다.
PART 1. 글로벌 호텔업계가 바라보는 소비자: ‘투숙객’에서 ‘거주자’로의 전환
1. 공급자 중심의 ‘객실 수 경쟁’에서 소비자 중심의 ‘생활 시간 점유’로
글로벌 호텔 대기업들의 최근 결산 자료와 전략 보고서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 ‘장기 체류(Extended Stay)’다.
호텔 체인들이 장기 체류 브랜드에 사활을 거는 일차적인 이유는 수익 구조의 안정성에 있다. 1박 투숙객 30팀을 매일 새로 유치하는 것보다, 30박을 머무는 장기 체류객 1명을 확보하는 것이 객실 가동률을 극대화하고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객실 청소 주기와 프런트 서비스 등의 인건비가 절감되면서 고정비 비율이 낮아지고, 이는 곧 호텔 개발자와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소비자의 행동 양식 변화에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Remote Work)가 보편화되었고, 미국 등 주요국의 주택 가격 상승과 맞물려 “수주에서 수개월간 타 도시나 해외에 거주하듯 머무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정착했다. 글로벌 호텔들은 이제 단순히 숙박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여행에서 ‘생활 시간’을 점유하는 전략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2. 메리어트·힐튼·하얏트 등 글로벌 거인들의 격전
이러한 흐름은 구체적인 수치와 신규 브랜드 신설로 증명된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에 따르면 미국 내 장기 체류형 호텔의 객실 공급은 지난 10년간 50% 이상 증가했으며, 연평균 성장률(7.1%)은 전체 호텔 시장 성장률(3.2%)의 두 배를 웃돌았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 2023년 장기 체류 전용 미드스케일 브랜드 ‘스튜디오레스(StudioRes)’를 론칭하고 2025년 6월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에 1호점을 개장했다. 2025년 말 기준 개발 파이프라인(계약 및 협상 중)만 85건에 달한다. 메리어트의 미드스케일 3대 브랜드(스튜디오레스, 시티 익스프레스, 포포인츠 플렉스)는 2025년 말 기준 216개 시설, 약 2만 7,000실을 확보하며 연간 50%가 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힐튼(Hilton): 10박 이상의 체류를 겨냥해 객실 내 주방과 세탁 시설을 완비한 ‘리브스마트 스튜디오스(LivSmart Studios)’를 출시해 225건 이상의 협상 건수를 확보했다. 2026년 1월에는 주택 운영사와 손잡고 스튜디오부터 4베드룸까지 제공하는 ‘아파트먼트 컬렉션 바이 힐튼(Apartment Collection by Hilton)’을 발표하며 뉴욕, 워싱턴, 아틀란타 등 주요 도시에서 주거 시장으로의 진출을 공식화했다.
하얏트(Hyatt) 및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IHG): 하얏트 역시 ‘하얏트 스튜디오스(Hyatt Studios)’의 개발 파이프라인을 70여 건 이상 쌓아 올렸으며, IHG 등 타 경쟁사들도 장기 체류형 브랜드를 최우선 확장 과제로 배치했다.

3. 장기 체류의 궁극적 지향점, ‘브랜드 레지던스’
장기 체류형 호텔의 확장은 궁극적으로 ‘브랜드 레지던스(Brand Residence)’라는 초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연결된다. 고급 호텔 브랜드의 이름을 입힌 주거 공간을 매매하거나 장기 임대하는 개념이다. 나이트프랭크 등 글로벌 조사 기관에 따르면 2025년 브랜드 레지던스 시장은 전년 대비 약 20% 성장하며 역대 최속 기록을 경신했다.
포시즌스, 리츠칼튼(메리어트), 아만, 월도프 아스토리아(힐튼)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구매자의 상당수가 기존 해당 호텔 브랜드의 충성 고객이다. 예컨대 만다린 오리엔탈의 경우 레지던스 구매자의 약 95%가 기존 호텔 숙박 경험자였다. 호텔 체인 입장에서는 고객을 일회성 투숙객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정주형 거주자로 전환시켜 로열티와 자산 가치를 동시에 극대화하는 셈이다.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에 들어선 ‘아만 레지던스 도쿄’나 한국의 주요 초고층 브랜드 레지던스 열풍은 호텔업계의 경쟁 상대가 이제 타 호텔이 아닌 고급 주거 시장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PART 2. 국내 여행업계의 현실: ‘호황 속 부진’과 구조적 착시
1. 역대급 해외 카드 사용액과 여행사의 실적 악화
글로벌 호텔업계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흡수하며 거대한 체질 개선에 성공한 반면, 한국의 주요 전통 여행사들은 사상 최악의 경영 난항을 겪고 있다.
2026년 7월 발표된 지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내국인의 해외 카드 사용 금액은 61억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였던 직전 분기(61억 1,000만 달러)에 육박했다. 해외로 나간 내국인 출국자 수 역시 1분기 기준 833만 명을 넘어서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인들의 해외여행 열풍과 지출 여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런데 국내 대형 여행사들의 성적표는 기이할 정도로 처참하다.
뉴스1의 7월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모두투어는 2026년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4.4%나 폭락한 28억 원에 그쳤다. 6월 전체 송객 인원은 전년 대비 31.1% 감소했고, 핵심 수익원인 패키지 송객은 28.0% 줄었다. 이에 따라 경영진 보수를 최대 20% 삭감하고 조직을 통폐합하는 등 긴급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교원투어도 주 4일 단축근무를 시행하는 등 전방위적인 비용 절감에 들어갔다.
업계 1위인 하나투어 역시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8.6% 감소한 4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패키지 송출객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수익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2. ‘외부 환경 요인’이라는 핑계와 진짜 원인
여행사들은 이러한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고환율, 유류할증료 부담,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 불확실성’을 첫손에 꼽는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회피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대외 악재가 원인이라면 해외 카드 사용액과 출국자 수가 동시에 줄었어야 한다. 해외여행 지출액은 사상 최고치인데 여행사만 불황이라는 것은, 소비자가 여행에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하나투어의 데이터에서도 개별자유여행(FIT) 이용객은 10% 증가한 반면, 패키지 이용객은 감소했다. 소비자는 에어비앤비, 트립닷컴, 글로벌 호텔 체인 공식 앱 등을 통해 항공과 숙소를 직접 결제하고 있다. 여행사가 중간 유통 마진을 취하던 낡은 패키지 유통 구조가 완전히 와해되고 있는 것이다.
3. ‘관광’에 갇힌 여행사 vs ‘체류’를 파는 글로벌 시장
이러한 불일치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책 <여행의 미래>부터 누차 지적해 왔듯이 한국 여행사들이 정의하는 ‘여행’과 소비자가 원하는 ‘여행’ 사이의 격차 때문이다.
오늘날의 여행자들은 더 이상 단체 버스에 올라타 수십 개 도시의 랜드마크를 찍고 돌아다니는 깃발 부대식 관광을 원하지 않는다. 기사식당 수준의 식사와 강제 선택관광, 쇼핑 센터 방문으로 얼룩진 빡빡한 일정 대신,한 도시나 휴양지에 일정 시간 이상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먹고, 일하고, 쉬는 ‘체류형 경험’을 원한다.
글로벌 호텔 체인들은 소비자의 이 같은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여 주방과 세탁 시설을 갖춘 장기 체류형 브랜드를 늘리고, 현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스스로를 전환했다. 반면 국내 대형 여행사들은 여전히 ‘수수료 떼먹기’식 단체 패키지 유통이라는 20세기형 비즈니스 모델에 안주했다. 소비자의 여행 행태는 ‘체류와 삶’으로 옮겨갔는데, 여행사들은 여전히 ‘이동식 관광’ 상품만 주력으로 밀고 있으니 외면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마치며
글로벌 호텔업계가 장기 체류와 브랜드 레지던스로 영역을 확장하며 소비자의 여행 시간을 점유해 나가는 모습은, 위기에 처한 한국 여행업계에 매우 서늘한 시사점을 던진다. 현재 한국 여행사들이 겪고 있는 ‘호황 속 부진’은 거시경제나 대외 변수 탓이 아니다. 변화된 소비자의 행태를 담아낼 컨텐츠와 플랫폼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도태다. 소비자는 이미 모든 정보를 알고 있으며, 본인이 원하는 체류형 여행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한국 여행사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명소 구경’을 대행해 주는 중간 유통업자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글로벌 호텔업계처럼 소비자의 바뀐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낼 수 있는 체류형 컨텐츠와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 기업으로 업의 본질을 재정의해야 할 시점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업에 소비자의 돈은 더 이상 흘러들어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