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관광 도시 방콕은 화려한 랜드마크와 미식의 천국이지만, 보행자에게는 그리 친절한 곳이 아닙니다. 연중 이어지는 무더위와 열악한 보도로 인해 ‘걷는 즐거움’보다는 ‘차 안에서의 인내’가 더 익숙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방콕의 MZ세대와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이러한 도시의 물리적 한계를 창의적인 콘텐츠로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바로 방콕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산책 커뮤니티 프로젝트인 ‘워크 원더(walk wander)’입니다.
히치하이커는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방콕 시민들을 다시 걷게 만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비즈니스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지 분석해 보았습니다.
스토리텔러와 데이터가 만나 탄생한 도시 탐험대
2025년 시작된 워크 원더는 단순히 건강을 위해 걷는 동호회가 아닌, 일종의 도시 개선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태국의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더 클라우드(The Cloud)’의 에디터 출신인 니티타 첸팝(Nithita Chenpap)과 포토그래퍼로 알려진 두앙수다 기티와타나논(Duangsuda Kittiwattananon)이 주도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도시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춘 전문 스토리텔러들입니다.
이들의 기획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민간의 감각에 학술적 데이터를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쭐라롱콘 대학교 도시설계개발센터(UddC)의 ‘굿워크 타일랜드(GoodWalk Thailand)’ 팀이 개발한, 실제로 걷기 좋은 경로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책 코스를 큐레이션합니다. 전문가의 ‘데이터’와 크리에이터의 ‘스토리텔링’이 만나, 방콕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정의하는 강력한 체험 IP(지식재산권)가 탄생한 것입니다.
도시의 결핍을 즐거움으로 치환하는 기획, ‘워크-라이프 밸런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방콕의 열악한 보행 인프라를 비판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에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SNS를 통해 ‘워크 라이프 밸런스(Walk-Life Balance)’라는 가치를 전파하며, 걷기를 일종의 ‘도시 놀이’로 격상시켰습니다.
특히 이들이 제작하는 콘텐츠는 매우 세밀하고 감각적입니다. ‘길고양이 관찰 산책’, ‘오래된 간판의 서체 찾기’, ‘특정 색감을 따라 걷기’ 등 걷는 행위에 구체적인 테마를 가미함으로써 참여자들이 도시의 사소한 디테일에 애착을 갖게 만듭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보행 환경 개선이라는 무거운 사회적 과제를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가벼운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성공적으로 번역해낸 사례입니다.
이러한 워크 원더의 메시지는 한국의 러닝 붐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 이미 잘 닦인 한강이나 공원 등의 인프라를 활용해 개인의 성취와 크루의 결속에 집중하는 개인적, 소비적 성향이 짙습니다. 반면 방콕의 워크 원더는 산책을 통해 보행권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공공적 목적성과 생산적인 전환을 추구합니다.
결국 도시의 커뮤니티가 단순한 취미 모임을 넘어 확장성을 가진 모임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문제를 개선하는 주체로 진화했을 때 비로소 고유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커뮤니티의 무한한 확장성과 협업 가능성
이미 워크 원더의 활동은 타 기업이나 커뮤니티와의 유연한 결합을 통해 그 확장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최근 태국의 지식 콘텐츠 플랫폼인 북스케이프(Bookscape)와의 협업은 매우 인상적인 사례입니다. 북스케이프의 ‘오픈 하우스 북 아나토미(Open House: Book Anatomy)’ 행사에서 워크 원더는 도서 《걷기의 경이로움(52 Ways to Walk)》에서 영감을 받은 아리(Ari) 지역 산책 프로그램을 설계해 체험 활동을 리드했습니다.
책 속에 머물던 지식을 실제 도시의 거리로 끌어내어 독자들이 직접 몸으로 체험하게 만든 이 기획은, 커뮤니티 콘텐츠가 어떻게 비즈니스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기업이나 브랜드 입장에서는 자사의 메시지를 워크 원더라는 매력적이면서도 공공의식까지 갖춘 ‘경험 플랫폼’에 태워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델은 향후 로컬 상권 활성화나 교육, 문화 예술 프로젝트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는 강력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마치며: 지역 관광의 미래는 ‘관계의 기획’에 있다
워크 원더 프로젝트는 어떤 커뮤니티가 참여자의 만족이나 유희를 넘어 영향력을 갖추려면, 개인의 즐거움을 도시의 공공적 가치와 연결하는 ‘서사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단순히 인프라를 향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결핍이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석해 콘텐츠로 선보일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확장성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사례는 한국의 지역 관광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새로운 시설을 짓거나 거대한 행사를 여는 것만이 지역 관광의 해답일까요? 이들은 민간 영역에서 이미 존재하는 도시의 골목과 일상을 콘텐츠화하고, 책이나 브랜드의 메시지를 산책이라는 경험으로 치환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결국 지속 가능한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고 무형의 관광 경험을 만드는 것은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진 로컬 관광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방콕의 사례처럼 지역의 결핍을 창의성으로 채우고 지식과 경험을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서사를 기획하는 전문가들이 계속 발굴된다면, 그 지역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매력적인 목적지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