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2월, 한국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인 인플루언서가 한국 여행 패키지를 모객한 뒤 약속한 여행 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잠적해, 방한 여행객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보도되고 X(전 트위터)에도 피해자들이 한글 포스팅으로 널리 알려 한국 활동을 저지하려고 노력하였음에도, 아직까지 국내 언론에서는 보도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현대 여행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소비자 행동 변화를 반영하고 있어서 계속 사건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 여행업이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틈새를 파고든 무허가 여행업자들이 어떻게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히치하이커닷컴은 사건의 개요와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 그리고 이를 통해 드러난 여행업계의 변화와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사건 개요와 현지 언론의 보도
한국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 출신 인플루언서는 평소 한국 콘텐츠를 틱톡에 올려서 한국에 관심이 높은 말레이시아 소비자를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해 보니, 단체여행 식사를 전담하기 위해 서울 명동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말레이시아 할랄 식당까지 운영한 것도 확인했다.(사건 이후 폐점) 틱톡에서는 110만 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신뢰한 팬들을 대상으로 판매한 한국 여행 패키지는 파행에 가까웠다고 한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제공한 여행 상품은 약속된 수준의 서비스와 크게 달랐다. 호텔은 무려 4차례나 바뀌었으며 시내를 벗어나 외곽의 열악한 숙소에 배정되었고, 항공권은 당초 약속한 프리미엄에서 이코노미로 다운그레이드되었다. 일부 관광객은 인천공항에서 몇 시간 동안 발이 묶인 채로 방치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피해 규모는 약 60만 링깃(한화 약 1억 9천만 원)에 달하며, 이 문제를 고발한 SNS 계정에 따르면 한국의 여행 가이드와 운전 기사들도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제보도 게시되어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의 추가 보도에 따르면 해당 인플루언서는 사건 이후 일본으로 도피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한국에서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2월까지 환불을 약속했으나 피해자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현지 경찰에도 신고를 접수한 상황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그가 여전히 한국에 머물고 있어 현지 처벌이 쉽지 않으며, SNS에서 부정적 리뷰를 삭제하며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고 있어 앞으로도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이 국제적으로 보도된 이후에도 그가 태연하게 SNS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추가로 드러난 더 큰 문제는 그가 말레이시아 관광부(MOTAC)에 등록되지 않은 무허가 업체로 모객을 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그러자 정부 당국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불법 여행업자를 단속하기 위한 제도적 규제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행법이 현대 여행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전통적 여행업의 범주를 벗어난, 여행의 ‘기획과 모객’
한국에서도 미등록 업체의 여행 모객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해외여행을 대놓고 모객하는 요가나 미식 등 비여행 업종들의 업체명을 조회해보면 어김없이 여행업 미등록 업체다. 대다수가 통신판매업만으로 가능하다고 착각하거나 불법을 인지하고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무허가 모객을 하는 개인 판매 여행에 왜 수십~수백만원을 선뜻 낼까? 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기존 여행상품보다 훨씬 트렌디하게 디자인된 상품이 실제로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커지는 이유는 전통 여행업과 현대 소비자 간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전통적 여행사가 판매하는 패키지 여행은 성숙기에 접어든 한국의 여행 소비자를 충족시키지 못한지 너무 오래 됐다. 소비자들은 개별화된 여행 경험을 원하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의 관심사를 반영한 여행을 계획하고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 성향을 뒷받침할 여행 서비스가 나오지 않으니, 결국 무허가 여행을 구매하게 만들 위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플루언서나 비여행 업종이 여행사를 끼지 않고 단체 인원을 모객한 뒤(모객 : 참여자를 접수하고 입금을 받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항공권은 각자 구매하고 해외에서 모여 여행하는 일을 하다가 적발되면 어떻게 될까?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관광진흥법’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비여행 업종에서 여행을 모객할 시에는 반드시 여행업 등록을 하거나, 기존 여행사와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는 해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국외 여행에 모두 적용되니 주의해야 한다.
마치며
여행 보증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무허가 업체를 이용하면 해당 판매자가 잠적할 경우 소비자는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소셜미디어에서 모객하는 여행에 참여하고 싶다면, 반드시 대한민국에 등록된 여행사가 모객과 결제를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여행정보센터에서 해당 업체 명을 검색하면, 여행사 등록 여부와 여행 보증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업계는 소비자들이 왜 검증되지 않은 인플루언서 트립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보다 개인화되고 독특한 여행 경험을 원하지만, 전통적인 여행사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업계 스스로가 경쟁력을 가진 상품을 내놓지 않는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은 자신이 신뢰하는 인플루언서나 타 기업이 내놓은 여행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고 그 중 일부는 이 사건처럼 피해를 볼 것이다. 정부 당국에서도 여행업계의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불법 여행업자들의 시장 침투를 막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지하고, 여행업의 정의를 달라진 소비 환경에 맞게 수정하고 진입과 자격요건 등을 재검토 및 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