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업의 거대 공룡 부킹홀딩스(Booking Holdings)가 그리는 미래 여행의 완성형은 ‘커넥티드 트립(Connected Trip)’이다. 2019년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CEO 글렌 포겔(Glenn Fogel)이 기업의 핵심 장기 비전으로 공식화한 이 개념은 항공, 숙박, 렌터카, 액티비티, 결제까지 여행의 모든 단계를 부킹닷컴에서 끊김 없이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로 연결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였다.
그러나 비전 발표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부킹닷컴이 구축한 서비스들은 여전히 연결되지 못하고 각각의 인프라가 흩어져있는 구조다. 히치하이커는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를 지적해온 부킹닷컴(및 아고다)의 항공권 미제휴 문제의 근본적 발생 원인인 인프라 외주화와 이로 인해 점점 커지고 있는 부킹닷컴의 리스크를 들여다본다.
외주화된 항공 인프라와 ‘방관자’가 되는 법적 약관
2026년 현재 부킹닷컴은 표면적으로는 숙박 중심에서 벗어나 독립형 항공권 판매량을 글로벌 최상위권 OTA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렌터카와 액티비티의 크로스 판매(Cross-selling) 엔진도 가동 중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술과 법률의 깊숙한 이면을 들여다보면, 부킹닷컴의 커넥티드 트립은 공수표에 그치고 있다.
그 첫 번째 원인은 여행의 시작이자 핵심 접착제(Glue) 역할을 해야 할 항공 서비스의 파편화에 있다.
숙박 플랫폼으로 출발한 부킹닷컴은 자체적인 항공 발권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신, 이트라벨리(Etraveli Group) 및 그 산하 브랜드인 고투게이트(Gotogate)에 항공권 이행(Fulfillment) 대부분을 외주화하고 있다. 그 결과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부킹홀딩스 산하의 아고다는 현재 한국에서 해외여행 점유율 1위 여행 앱인데, 여전히 국내 항공사들과 직접 공급 제휴를 맺지 않고 항공권을 제 3의 중개사를 통해 판매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 누락과 피해는 모두 소비자의 몫이다.
부킹홀딩스 역시 이러한 한계를 인지하고 항공 레이어를 완전한 자체 통제하에 두기 위해 2021년 이트라벨리를 약 16억 유로에 인수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독점 우려를 이유로 2023년 인수를 최종 불허하면서, 부킹닷컴의 항공 공급망 수직 계열화 구상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부킹닷컴에서 항공권을 구매할 때 세부 약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결국 고투게이트의 공동 브랜드 약관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다중 서비스 중개 관련 항목을 들여다보면 커넥티드 트립의 비전과는 정반대의 법적 진실이 드러난다. “다양한 여행 상품을 자유롭게 조합하도록 돕겠지만, 항공편이 결항되는 순간 우리는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무고한 제3자(Innocent bystander)가 된다”는 취지의 면책 조항이다. 최저가 알선이라는 명목하에 핵심 운송 인프라를 외부 파트너에 의존하고, 정작 문제 발생 시에는 손을 씻는 구조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머신 모델로의 전환과 패키지 여행 규제라는 법적 시한폭탄
그렇다면 부킹닷컴은 지난 수년간 무엇을 개선해 왔는가. 금융 결제망의 재설계 분야에서는 진전이 있었다. 플랫폼이 단순히 고객의 카드 정보를 호텔에 전달하고 수수료만 챙기던 전통적인 ‘에이전시(Agency) 모델’에서, 플랫폼이 직접 전체 결제 대금을 받아 처리하는 ‘머천트(Merchant) 모델’로의 체질 개선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27%에 불과했던 머신 모델 비중은 최근 70% 수준까지 급증했다. 여러 상품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아 단번에 결제할 수 있는 금융적 기반은 갖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부킹닷컴은 여러 서비스를 하나의 완전한 거래로 묶어 보장하는 ‘진짜 커넥티드 트립’을 출시하지 못할까?
그 배경에는 ‘투어 운영자(Tour Operator)로서의 법적 책임‘이라는 거대한 리스크가 존재한다. 단품 서비스를 중개하는 OTA는 개별 서비스의 운영 실패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반면 유럽연합의 패키지여행 지침(EU Package Travel Directive)과 같은 강력한 법적 프레임워크는 여러 여행 서비스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사업자에게 도미노처럼 발생하는 연쇄 사고의 재무적·운영적 책임을 완전히 흡수하도록 강제한다.
즉, 항공편 결항으로 인해 뒤이어 예약된 호텔, 렌터카, 액티비티가 도미노처럼 취소될 경우, 플랫폼은 대체편 제공은 물론 현지 체류 비용과 보상 의무까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가벼운 자산(Asset-light)과 높은 마진율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입장에서, 전 세계 수백만 건의 연쇄 지연·결항 리스크를 재무제표에 직접 떠안는 것은 기업 가치를 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결국 부킹닷컴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통합이라는 과제를 의도적으로 미루어 온 셈이다.
에이전틱 AI의 대두와 생존을 위협받는 플랫폼
문제는 시장이 더 이상 부킹닷컴의 지연 전략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렌 포겔 CEO는 최근 투자자 인터뷰에서 “여행은 도미노와 같아서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것들도 연쇄적으로 무너진다”며 커넥티드 트립 구축에 시간이 걸림을 재차 강변했다. 그러나 로마가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듯 플랫폼 구축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변명은 거대한 기술적 파도 앞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에이전틱 AI(Agentic AI)’는 기존 OTA들에게 가시적인 생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범용 AI 에이전트와 대화형 검색 엔진은 단순히 여행지를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소비자를 대신해 엔드투엔드(End-to-End) 여정을 기획하고 복잡한 실시간 예약을 직접 수행하는 개인 비서로 진화하고 있다.
만약 부킹닷컴이 여전히 파트너사에 외주를 주며 결항 시 책임조차 지지 않는 파편화된 단품 서비스의 집합체로 남는다면, AI 시대에는 그저 AI가 호출하는 하부의 ‘상품 공급용 하청 DB’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소비자가 AI 비서에게 여행 전체를 위임하는 순간, 브랜드 프리미엄은 사라지고 플랫폼은 단순 풀필먼트 창구로 격하된다.
포커스와이어는 지난 7월 21일 칼럼에서 부킹닷컴이 진정한 의미의 결항 보장과 통합 여정 관리라는 법적·재무적 책임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빅테크의 AI 알고리즘에 안방을 내어줄 것인지 결단해야 하는 둘 중 하나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여행의 복잡한 실시간 중계와 문제 해결을 모두 주도하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립닷컴의 다른 행보: 직접 제휴와 수직 계열화
부킹닷컴이 법적 책임과 외주화의 한계에 갇혀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 거세게 추격 중인 경쟁사 트립닷컴(Trip.com Group)은 전혀 다른 전략으로 항공 및 통합 여정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트립닷컴은 서드파티 중개업체나 외주 파트너사에 의존하는 대신, 전 세계 주요 항공사들과 직접 대리점 계약을 맺고 기술적 연동을 확대하는 직영 공급망 확보에 집중해 왔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차세대 유통 표준인 NDC(New Distribution Capability)를 적극 도입하여, 전 세계 600개 이상의 항공사 및 24개 이상의 주요 국적사와 직접 API를 연결하는 체계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가짜 연락처나 유령 예약을 배제하고, 결항 및 지연 발생 시 항공사의 실시간 운항 정보가 승객에게 즉각 전달되는 자체 CS 인프라를 구축했다.
나아가 스카이스캐너(Skyscanner) 인수를 통해 항공권 검색의 최상단 유입 경로를 내재화하는 한편, AI 기반 여행 비서 ‘트립지니(TripGenie)’를 자체 생태계 내에 이식했다. 외주 파트너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방관자적 모델을 취한 부킹닷컴과 달리, 트립닷컴은 항공권 발권부터 현지 CS, 모바일 중심의 통합 결제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직영 수직 계열화를 완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가짜 최저가와 책임 회피형 중개가 한계에 다다른 지금, 법적 리스크를 피하느라 통합을 미룬 거대 플랫폼과 직접 공급망을 틀어쥐고 AI 시대를 준비한 플랫폼 간의 격차는 글로벌 여행 테크 시장의 주도권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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