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에 설립되어 글로벌 유럽 철도 발권의 상징으로 군림해 온 레일 유럽이 2013년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베를린 기반의 테크 플랫폼 오미오 그룹에 인수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얼마전 중국의 대형 온라인 여행사인 동청여행이 지분을 통제하고 있는 후난항공이 창사와 방콕을 잇는 첫 국제선 노선 운항 허가를 받으며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두 뉴스는 디지털 플랫폼이 전통적인 오프라인 운송 자산 위에 올라타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는 공통된 흐름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히치하이커는 여행산업의 주도권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전통적 여행산업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오미오의 레일 유럽 인수, 어떤 의도일까?
이번 달 들어 가장 충격적인 글로벌 여행업계 뉴스가 아닐까 싶은데요. 7월 16일 독일의 교통 예약 플랫폼 오미오(Omio)가 유럽 철도 티켓 유통의 전통적 강자이자 최대 경쟁자였던 레일유럽(Rail Europe)을 전격 인수 합병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양사는 이번 합병을 통해 파편화되어 있던 유럽 철도 인벤토리를 단일 유통 시스템(API)으로 공고히 단일화하여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한층 공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유럽 철도 시장은 국가별로 상이한 철도청의 시스템과 복잡한 발권 규정 탓에 디지털화가 가장 더딘 영역 중 하나로 꼽혀왔습니다. 레일 유럽은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 여행사들과 유통망을 연결하며 이 복잡한 시장의 가교 역할을 해왔지만,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과 고도화된 데이터 기술 대응에는 한계를 보여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오미오 부문은 기차와 버스, 페리, 항공 등 3,000개 이상의 다양한 교통 공급자를 하나의 앱과 API로 묶어내며 소비자 중심의 직관적인 테크 역량을 증명해 냈습니다.
이번 인수합병은 단순히 하나의 여행 테크 기업이 전통 브랜드를 흡수하는 수준을 넘어, 오랜 기간 파편화되어 있던 전통 교통 인프라의 데이터 레이어를 플랫폼 기업이 완전히 통합하고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오미오 측은 오랜 시간 공들여 구축한 통일된 데이터 레이어를 레일 유럽의 방대한 B2B 네트워크와 유통 채널에 이식함으로써 여정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드웨어를 직접 소유하거나 오랜 전통을 가진 기업일지라도, 소비자가 공급자를 실시간으로 매끄럽게 연결하는 테크 프레임워크가 없다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워진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항공사를 소유한 중국 최초의 OTA, 동청여행
같은 시기 아시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OTA의 항공사 지배력 강화는 오미오의 사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수직 계열화의 형태를 띱니다. 오미오 뉴스를 보자마자 얼마전 우연히 읽은 “중국의 동청여행이 후난항공의 지분을 매입했다“는 뉴스가 바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동청여행은 사실 중국 최대의 OTA인 트립닷컴(씨트립)의 주요 지분 투자와 영향력 아래에 있는 기업입니다. 대도시의 비즈니스 고객과 고소득층, 그리고 글로벌 해외여행 시장에 집중하는 트립닷컴의 그늘 아래에 있으면서도, 동청여행은 철저히 차별화된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하며 2억 5천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한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롱(elong)이라는 여행 플랫폼으로 잘 알려져 있죠.
동청여행은 중국 최대 빅테크 기업인 텐센트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국민 메신저인 위챗 생태계 내부를 선점하는 영리한 전략을 취했습니다. 별도의 독립 앱을 다운로드하지 않아도 위챗 내 미니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적으로 기차표와 비행기표를 예매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특히 트립닷컴의 손이 미처 닿지 않던 중국 내 2선, 3선 이하의 중소도시 거주자들을 타깃으로 삼아 가성비 높은 대중교통 발권과 국내선 항공 연계 서비스를 대표 서비스로 안착시켰습니다.
그러한 동청여행이 과거 대다수의 온라인 여행사들이 물리적 자산을 소유하지 않는 ‘에셋 라이트’ 모델을 고수해 온 것과 달리, 후난항공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직접 국제선 노선 개척을 주도하는 모습은 이처럼 탄탄하게 다져온 내수 트래픽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플랫폼이 유통을 넘어 공급망까지 직접 통제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됩니다.
플랫폼이 항공사라는 거대한 물리적 자산을 직접 통제하게 되면, 자사 플랫폼 사용자들의 검색 패턴과 선호도를 기반으로 가장 마진이 높고 수요가 확실한 노선을 직접 기획하고 맞춤형 결합 상품을 설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전통 항공사가 주도하던 공급자 중심의 노선 운행 방식에서 벗어나, 플랫폼의 데이터가 항공기의 이착륙과 글로벌 확장을 결정하는 철저한 수요자 중심의 생태계로 재편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여행 플랫폼의 향후 전략, 멀티모달과 사용자 락인의 결합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전체 여정을 단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완결 지으려는 ‘멀티모달’과 ‘사용자 락인’ 전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여행자들은 비행기표를 끊고 목적지에 도착한 뒤, 다시 기차표나 버스표를 따로 구매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오미오는 철도와 버스, 페리를 연결하는 거대한 지상 교통 네트워크의 통합을 통해 소비자가 첫 검색부터 최종 결제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심리스한 환경을 제공하려 합니다.
동청여행 역시 항공 자산을 직접 움직임으로써 자사 플랫폼 안에서 숙박, 현지 액티비티, 그리고 항공 이동까지 완전히 묶어두는 에코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두 사례 모두 전통적인 운송 기업들이 개별적으로는 결코 제공할 수 없는 ‘통합된 여정의 경험’을 플랫폼이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선제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확장을 추진하는 테크 기업들의 기세 앞에서, 오프라인 운송사들은 플랫폼의 생태계에 플러그인 되는 하위 공급자로 위치가 조정되는 흐름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마치며
물론 플랫폼이 전통적인 운송 산업의 최상단에 올라서는 과정이 언제나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의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마찰이나, 전통 기업들이 지녀온 고유한 브랜드 가치와 현지 전문성이 테크 중심의 획일적인 플랫폼 논리에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외신과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옵니다. 오미오의 레일 유럽 인수 이후 브랜드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나, OTA가 통제하는 항공사가 독자적인 국적기로서의 장기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항공기와 철로라는 물리적 실체를 가진 자보다, 그 실체들을 디지털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쥔 자가 밸류체인의 헤게모니를 가져간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힘든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공급자가 정해둔 노선과 스케줄에 맞춰 여행을 떠나던 시대는 저물고, 플랫폼이 분석한 데이터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