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하루는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집중할 수 있는 주의력(Attention) 역시 희소한 자원이다. 정보 폭발 시대를 지나 생성형 AI가 대세로 자리 잡은 지금, 디지털 생태계는 사용자의 한정된 주의력을 선점하기 위한 ‘어텐션 이코노미(Attention Economy, 주의력 경제)’의 전쟁터가 되었다.
과거 여행사의 경쟁 상대가 다른 여행사나 항공사였다면 이제는 숏폼, OTT, 그리고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흡수하는 AI 컴패니언으로 확대되었다. 이용자의 주의력이 화면 속에 갇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현실 공간을 이동하는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의 입지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히치하이커는 어텐션 경제의 급성장 현황과 여행산업의 위기, 글로벌 기업들의 대응 전략을 살펴보고 국내 여행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고자 한다.
24시간 주의력 전쟁과 관계형 AI의 도래
어텐션 이코노미의 핵심은 인간의 주의력을 가장 오래, 강렬하게 끌어들이는 포맷이 시장의 주도권을 쥔다는 점이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대중화 이후 전통적으로 강력한 체류 시간 소모원이었던 게임 산업조차 최근 흔들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게임 이용률은 2022년 74.4%에서 2024~2025년 50.2%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탈한 이용자의 주의력은 어디로 향했을까? 바로 관계형 AI 플랫폼이다. 관계형 AI란 사용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정서적 유대감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개인화된 상호작용 및 스토리 전개로 깊은 몰입감을 제공하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AI 컴패니언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368억 달러(한화 약 50조 원)에서 2026년 480억 달러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연평균 30%가 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제타(Zeta)’, ‘크랙(Crack)’, ‘캐릭터.AI(Character.AI)’ 등 사용자와 정서적 유대를 맺는 대화형 AI 플랫폼들은 가파른 사용자 체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캐릭터.AI의 경우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가 2,000만 명을 상회하며 평균 세션당 체류 시간이 17분이 넘고, 상위 이용자층의 월평균 사용 시간은 기존 게임 이용 시간을 훨씬 웃돌고 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플랫폼 역시 사용자의 일상 시간을 촘촘히 분쇄하며 독점하고 있다.
특히 제타의 경우 최근 10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2026년 상반기 모바일 앱 누적 설치에서 무려 9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참고로 누적 설치 1위는 챗GPT다. 그런데 체류시간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제타가 챗GPT를 제치고 한국인의 챗봇 앱 체류시간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즉 AI와 AI에서 파생된 다양한 서비스들이 우리 일상 시간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행산업이 마주한 위기: ‘검색의 종말’과 시간 점유율의 고갈
이러한 어텐션 경제의 재편은 여행산업에 두 가지 거대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한다.
첫째는 ‘시간 점유율(Share of Time)의 고갈’이다. 여행은 발견 – 검색 – 예약 – 실행 – 추억 공유라는 긴 여정을 필요로 하며, 이는 사용자의 막대한 주의력 소모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를 중심으로 사용자의 여가 시간이 디지털 콘텐츠와 관계형 AI에 점유되면서, 현실 세계를 여행하기로 결심하는데 필요한 주의력의 절대량이 급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경기 침체로 잘파세대의 가용 예산이 줄어드는 것만 걱정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주의력 상실이 여행산업에 장기적으로 더 큰 위기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발견 단계에서부터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동기를 얻는 과정이 원천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검색 창(Search Box)의 종말’과 상류(Upstream) 주도권 상실이다. 스키프트(Skift)의 조사에 따르면 35세 미만 레저 여행객의 30% 이상이 이미 여행 기획 단계에서 AI 비서를 활용하고 있다. 사용자가 이미 매일 상주하고 있는 AI 플랫폼이나 대화형 인터페이스 내에서 여행 의도가 형성되고 의사결정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전통적인 여행 플랫폼으로의 유입(Traffic) 자체가 원천 차단되는 ‘제로 클릭(Zero-Click)’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이다. 과거 사용자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몇 시간씩 블로그와 OTA 웹사이트를 오가며 수십 개의 탭을 열어두던 포털 검색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글로벌 주요 여행기업들은 어텐션 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인 포지셔닝에 나서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른 글로벌 플랫폼들이 전혀 다가가지 못하는 숏폼 체류 주도권 전쟁에 도전하는 플랫폼이 바로 트립닷컴이다.
트립닷컴은 한국에서 최근 모든 여행 플랫폼 앱 중 MAU 1위를 기록하며 업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 통계치를 조사 발표한 모바일 인덱스는 아래와 같은 분석 기사를 내놨다. 참고할 부분이 많은 기사다. 다만 트립닷컴이 어떻게 이런 수치를 기록할 수 있었는지 사용자 입장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변화의 폭은 더 큽니다.
2021년 6월, 트립닷컴의 월간 이용자는 약 19만 5000명이었는데요. 당시 야놀자의 월간 이용자는 약 348만명이었고 두 앱의 격차는 18배에 달했습니다.
트립닷컴(Trip.com)은 자사 앱 자체를 ‘콘텐츠 및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와 AI 기반 숏폼 영상 추천 기능인 ‘트립 모먼츠(Trip Moments)’를 내장하여, 예약 목적이 없더라도 이용자가 앱 내에 접속해 숏폼을 시청하며 놀 수 있도록 유도한다. 탐색 및 체류 시간을 앱 내부로 흡수함으로써 어텐션 점유율을 직접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따라서 트립닷컴이 모든 여행 플랫폼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체류해야 할 이유를 주는, 미친 회전율의 사용자 콘텐츠 때문이라고 본다. 대다수 콘텐츠가 중국발 사용자들이 제작한 것인데, 이게 한국어로 모두 번역이 되어 나오기 때문에 알아채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양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이 콘텐츠 물량공세를 그 어떤 여행 앱도 따라오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향후 샤오홍슈 등 중국발 SNS들도 비슷한 전략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해오지 않을까 싶다.
반면에 에어비앤비(Airbnb)는 ‘독점적 오프라인 경험’이라는 역발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2024년 발표한 ‘아이콘(Icons)’ 카테고리를 통해 애니메이션 ‘업(Up)’에 등장하는 집이나 영화·게임 IP를 오프라인에 완벽히 구현해 내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디지털 화면을 통해서만 소모되던 대중문화에 대한 주의력을 오프라인의 실체적인 독점 경험으로 전환하여, 오프라인 여행만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입증한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비용과 기획력을 많이 소모하므로, 지속가능성이나 수익성이 있을 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국내 여행기업들의 향후 전략: 에이전트 통합과 감각적 현장성
그렇다면 글로벌 기업에 비해 자본과 알고리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국내 여행기업 및 지자체, 관광업계는 어텐션 이코노미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
우선, 자사 웹사이트나 앱으로의 유입만을 고집하는 단편적 자사몰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형 IT 플랫폼은 물론, 국내 사용자가 집결해 있는 관계형 AI 및 숏폼 플랫폼의 상류 엔진에 자사의 상품 및 관광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노출시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사용자가 AI 컴패니언과 대화를 나누다 “스트레스 받는데 어디 갈까?”라고 물을 때, 자연스럽게 자사 상품이나 목적지 옵션이 추천되고 예약으로 이어지는 ‘제로 클릭(Zero-Click)’ 유통망 구축이 시급하다.
다음으로, ‘디지털 디톡스’와 ‘오프라인 현장성’을 선명하게 부각해야 한다. 영상으로 인한 자극에 지친 사용자들에게 오프라인 여행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감각의 회복이다. 가상 세계나 화면 속에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오감 만족형 현지 체험’, ‘지역 특유의 정서적 교감’, ‘화면을 끄고 몰입하는 웰니스 리트릿’ 등 오프라인의 희소성을 강조하는 마케팅과 상품 기획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용자의 일상과 여행을 잇는 단절 없는(Seamless) 주의력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여행이 끝난 후 앱이 방치되는 구조를 탈피하여, AI 큐레이션을 활용해 사용자의 일상 속 취향(음악, 음식, 취미 등)에 부합하는 주말 나들이나 차기 여행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일상과 비일상을 아우르는 브랜드 주의력을 유지해야 한다.
마치며
어텐션 이코노미의 거센 물결 속에서 여행산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결국 실체하는 공간에서 숨 쉬고 경험해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 공간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기술적, 심리적 통로는 완전히 재편되고 있는 형국이다. 디지털 스크린과 AI가 사용자의 주의력을 고스란히 독점하고 있는 시대, 여행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주의력이 머무는 AI 생태계 내부로 깊숙이 침투함과 동시에, 화면을 끄고 밖으로 나오게 만들 강력한 오프라인의 실체적 매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 링크 및 출처
- 조선일보: AI 콘텐츠, 게임·OTT·숏폼의 막강한 도전자로… ‘어텐션 경제’ 판도 흔든다 (https://v.daum.net/v/20260819070210119)
- Global Market Insights: AI Companion App Market Size & Share Report (https://www.gminsights.com/ko/industry-analysis/ai-companion-app-market)
- Grand View Research: AI Companion Market Size, Share & Trends Analysis Report 2026-2033 (https://www.grandviewresearch.com/industry-analysis/ai-companion-market-report)
- SQ Magazine: Character AI Statistics 2026: Engagement, Traffic & Creative Trends (https://sqmagazine.co.uk/character-ai-statistics/)
- Concourse Intelligence: AI agents and the end of the search box (https://concourseintel.com/insights/2026-06-04-ai-agents-and-the-end-of-the-search-box)
- eToro Analysis: Booking Holdings: Is AI Killing This Travel Giant? (https://www.etoro.com/au/news-and-analysis/stocks/booking-holdings-is-ai-killing-this-travel-giant-bkng-2026/)
- Watauga Group: Destination Marketing Trends for 2026: Travel Trends and Shifts Shaping DMOs (https://wataugagroup.com/blog/destination-marketing-trends-for-2026-travel-trends-and-shifts-shaping-dmos/)






